마라톤 쓰레기 어쩌나…놀랄만한 대안이 나왔다 [지구, 뭐래?]

2023. 9. 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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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제17회 선사마라톤대회 제2급수대에서 수거함에 다회용컵을 버리는 참가자들. 주소현 기자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한 모금 마시고 휙’

길가에 내다 버려도 용인되는 쓰레기가 있다. 바로 마라톤 도중에 마신 음료 컵이다. 무거운 몸을 이끄는 바쁜 걸음을 멈춰 세우면서까지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한번 쓰고 바로 버리는 일회용 쓰레기라는 점이다. 특히 마라톤에서는 단시간에 대량으로 발생한다. 수천 명의 참가자가 한입 먹고 내려놓는 쓰레기가 수천 개씩 쏟아지는 셈이다.

지난 17일 서울 구리암사대교에서 청담대교 사이의 한강공원에서 열린 제17회 선사마라톤대회 급수대 근처에 종이컵 쓰레기들이 떨어져 있다. [와이퍼스 제공]
지난 17일 열린 제17회 선사마라톤대회 급수대 근처에 종이컵 쓰레기들이 떨어져 있다. [와이퍼스 제공]

지난 17일 열린 선사마라톤대회. 이날엔 전혀 다른 두 풍경이 펼쳐졌다.

한편엔 기존 마라톤대회처럼 일회용 쓰레기가 길거리에 쌓여 있는 모습. 그리고 다른 한편엔 다회용컵이 간이풀장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모습이다. 같은 마라톤 대회임에도 두 거점의 풍경은 이렇게 달랐다.

플로깅하는 환경단체 ‘와이퍼스’는 이날 선서마라톤대회에서 국내 마라톤 중에서는 처음으로 일부 구간에 한해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건강에 좋은 동시에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 끝에 도전한 새로운 실험이다. 마라톤을 즐기면서 일회용품 쓰레기를 줄여보려는 노력과 마음이 모였다.

서울 강동구에서 열린 제17회 선사마라톤대회는 암사동 선사주거지 광장에서 출발해 한강을 따라 구리암사대교부터 청담대교까지 돌아오는 하프 코스(21.0975㎞), 10㎞ 코스, 5㎞ 코스 등 3개 부문으로 이뤄졌다. 참가 인원은 3000여명.

이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급수대는 총 5개 설치됐다. 이중 하프코스 참가자 683명과 10㎞ 코스 참가자 1766명이 함께 왕복하는 구간의 제2·3 급수대에서 종이컵을 다회용 플라스틱 컵으로 대체했다.

다회용컵의 관건은 수거다. 종이컵은 참가자들이 들고 마시다 언제 어디서든 버려도 되지만(?) 다회용컵을 다시 쓰기 위해서는 참가자들이 지정된 장소에 모아줘야 한다.

마라톤 경기에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다회용컵 사용과 수거를 유도하기 위해 와이퍼스는 아예 수거함으로 어린 아이들이 물을 받아 노는 풀장을 마련했다.

지난 17일 제17회 선사마라톤대회 제2급수대에서 수거함에 다회용컵을 버리는 참가자들. 주소현 기자

“사용하신 컵은 이쪽으로 버려주세요”라고 외치는 봉사자들의 요청에 따라 마라톤 참가자들은 길이 3m, 너비 2m에 깊이 0.75m의 푸른 색상의 커다란 수거함에 다회용 컵을 차곡차곡 쌓았다.

와이퍼스에 따르면 이날 준비된 다회용 플라스틱 컵 4400여 개는 모두 사용한 뒤 수거됐다. 몇초 사용되고 바로 버려질 뻔한 종이컵 쓰레기 4400개를 줄인 셈이다.

같은 날 같은 인원이 참가한 대회지만 다회용 컵 사용 여부에 따라 나온 쓰레기는 최대 20배 차이 났다. 다회용 컵을 사용한 제2·3 급수대에서 이날 나온 쓰레기는 10ℓ짜리 쓰레기 봉투 하나를 채울 정도였으나, 종이컵을 사용한 제1·4·5 급수대에서는 150~200ℓ씩 쓰레기가 나왔다.

지난 17일 제17회 선사마라톤대회 제2급수대에서 수거함에 다회용컵을 버리는 참가자들. 주소현 기자

다회용 컵 급수대가 가져온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낀 건 마라톤 참가자들이다. 사전에 공지되지 않았던 깜짝 시도는 완주 후 모인 참가자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였다. 처음 만난 낯선 컵을 기념품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참가자가 있을 정도였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이모(40) 씨는 “종이컵을 사용한 제1급수대 근처에는 종이컵이 길가에 쌓여 있었는데 다회용컵은 버릴 공간을 크게 마련해줘 주변이 깔끔했다”고 말했다.

마라톤에 처음 참가했다는 김모(44) 씨도 “초보자 입장에서 종이컵은 꽉 쥘 수 없어 불안했는데 다회용 컵은 단단해서 오히려 편했다”고 했다.

지난 17일 열린 제17회 선사마라톤대회 급수대에서 다회용 컵에 담긴 음료를 마시는 참가자들. [와이퍼스 제공]

와이퍼스가 경기 후 참가자 17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급수대를 이용했다고 밝힌 147명 중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이 53.1%, ‘만족한다’ 29.3%로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불만족한다는 의견은 3.3%로 소수였다.

세부 답변도 ‘종이컵이 낭비되지 않아 좋다’, ‘일회용품을 버리기 아까웠다’, ‘쓰레기가 없어 마음이 편안했다’ 등 환경오염 및 낭비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뤘다.

지난 17일 열린 제17회 선사마라톤대회에서 출발하는 참가자들. 주소현 기자

종이컵보다 단단한 플라스틱 컵이라도 한번만 쓰인다면 다회용 컵이라고 할 수 없다. 사용한 컵을 다시 사용할 때 비로소 다회용 컵이 된다. 이날 사용된 4400여개의 다회용 컵은 SK텔레콤의 다회용컵 사회문화 확산 프로젝트 ‘해피해빗’에서 대여됐다. 수거 후 세척 및 소독해 향후 재사용할 계획이다.

다회용 컵을 도입할 마라톤도 이르면 연내 추가될 예정이다. 와이퍼스는 10~11월 중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서 다회용 컵 급수대 설치를 논의 중이다.

황승용 와이퍼스 대표는 “2~3개의 마라톤 대회 주최 측과 막판 조율 중”이라며 “3만 명 이상 참가하는 대회의 경우 1개 급수대만 다회용 컵으로 바꿔도 1만5000개 이상의 종이컵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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