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서 만든 '완벽한 인공배아'… 정자도 난자도 필요없다
이스라엘 바이츠만연구소
배아줄기세포로 수정시켜
14일째 배아 모델 만들어
영양 공급하는 태반을 비롯
난황막·융모막도 형성 확인
유산·불임·난임연구에 도움
정자·난자 수정한 인간배아
2주이상 배양 전세계서 금지
인공배아도 윤리문제 커질듯
"정자와 난자, 자궁 없이 줄기세포만으로 완벽한 구조를 가진 인간 배아를 만들었다."
야코브 한나 이스라엘 바이츠만연구소 분자유전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 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이같이 밝혔다. 14일 차 인간 배아와 구조 및 형태가 완벽히 동일한 합성 인간 배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배아는 아기를 뜻하는 '태아'로 변하기 직전인 임신 8주까지의 개체를 일컫는다. 완벽한 구조의 합성 인간 배아를 만들었다는 것은 먼 미래에 신체의 모든 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로 생명을 탄생시킬 수도 있음을 뜻한다.
지난 6월 영국 연구팀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 영국 케임브리지대 신경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국제줄기세포학회(ISSCR) 연례 회의에서 최대 14일까지 발달하는 합성 인간 배아를 제시했다. 이 배아는 실제 인간 배아와 유사하게 태반과 탯줄을 생산하는 세포를 형성했다.
최근 실제 배아를 똑 닮은 합성 인공 배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배아들은 인간의 초기 발달 과정과 불임·난임·조기 유산의 원인 규명, 임신 중 사용되는 약물의 안전성 확인 등 여러 측면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인공 배아가 실제 인간으로 발달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과학이 '신의 영역'인 생명 잉태에 다가갔다는 점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논란도 나온다. 과학계에서는 빠른 인공 배아 기술 발전 속도에 발맞춰 윤리적 규제 논의를 시작해 관련 법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류는 인체 현상 이해에 몰두하고 있다. 인간 조직을 연구해 암과 기타 질병에 대한 더 나은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 큰 이유다. 그러나 실제 인간 조직을 갖고 연구하는 '체내 연구'는 화학적·물리적 환경에서의 엄격한 제어, 비용 등 측면에서 이점을 갖지 못한다. 이에 따라 인공적으로 우리 몸 밖에서 인간 조직을 배양해 연구하는 '체외 실험'에 주목이 쏠리지만, 이 역시도 연구하고자 하는 유기체의 세포 조건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특히 생명 탄생의 근원인 배아를 연구하는 것은 어려웠다. 체내 연구를 수행하려고 해도 배아의 너무 작은 크기, 자궁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용이하지 않은 접근성, 원하는 배아 시기와 위치에 대한 유전자 조작의 어려움, 배아의 매우 빠른 분열·분화 속도 등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또 윤리적 문제로 배아를 채취하는 데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배아는 유산이나 낙태 때 채취한 배아들이었다.
결국 과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배아에 대한 체외 실험이었으나, 앞서 언급한 대로 실제 배아와 동일하고 정교한 형태의 배아 모델 제작에는 실패해왔다. 세포 분열과 증식을 거듭하며 세포층을 빠르게 형성하는 단계를 완벽히 재현하는 것이 기술적 난제로 꼽혀왔다.
이스라엘과 영국 연구팀은 이 난제를 뛰어 넘었다. 각각 완벽에 가까운 합성 인공 배아를 만들었다. 이들은 "실험실에서 배양된 줄기세포로 완벽한 합성 인간 배아 모델을 만들었다"며 "모델은 태반과 융모막 등을 형성하는 세포같이 배아 발달에 필수적인 여러 세포 유형을 재현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합성 인간 배아 모델을 만든 원리는 비슷하다. 성인 피부세포에서 파생된 줄기세포의 분화 시계를 더 거꾸로 돌려 어떤 종류의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는 완벽한 초기 상태로 재프로그래밍했다. 이 상태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 배아가 자궁에 착상할 무렵인 수정 7일째에 해당한다. 그런 다음 화학물질을 첨가해 줄기세포를 인간 배아 초기 발달 단계에서 발견되는 배반엽 세포, 영양막 세포 등 4가지 유형의 세포로 합성했다.
이렇게 만든 4가지 유형의 세포 120개를 뒤섞은 후 변화를 관찰했다. 그러면 세포들이 인간 배아와 유사한 구조로 조립되기 시작한다. 연구팀은 "적절한 비율로 혼합하고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세포가 알아서 여정을 시작한다"며 "정말 놀라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자라난 인간 배아는 14일째가 되자 세포 약 2500개로 증식했다. 크기도 0.01㎜에서 0.5㎜로 자라났다. 뇌와 피부, 근골격계, 소화순환계의 초기 구조가 모두 형성됐다. 실제 배아 형태와 동일하다. 인간 배아 배양액을 임신 진단키트에 떨어뜨려 양성 반응도 얻었다. 그만큼 실제 배아와 동일한 형태의 합성 인간 배아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빠른 기술 발전 속도다. 불과 5년 전인 2018년 쥐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쥐 배아와 거의 같은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가 주목을 받았다. 쥐를 포함해 원숭이 등 동물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인공 배아 연구가 인간 단계에까지 성큼 다가온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연구는 정자나 난자, 자궁 없이 줄기세포만 이용했다. 그간 정자와 난자를 합성하는 방식으로 인간 배아를 만들어왔으나, 더 손쉽고 간단하게 실제에 가까운 인간 배아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영국 두 연구팀의 합성 인공 배아에는 공통점이 있다. 수정 후 14일까지만 성장시켰다는 점이다. 수정 후 14일을 초과한 인간 배아를 체외에서 배양할 수 없다는 ISSCR의 권고를 따랐다. 14일은 줄 모양의 '원시선'이 나타나는 시기다. 또 배아가 더는 쌍둥이로 분열할 수 없는 때다. 인간이란 한 개체로 자라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본다.
국내 생명윤리법을 포함해 여러 국가의 생명윤리 관련 법을 살펴보면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 배아가 14일 이상 발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영국 연구팀은 개발한 합성 인공 배아가 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법을 저촉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유전자를 조절해 뇌나 신경계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배양 기간을 14일 이후로 늘린다고 해서 실제 인간까지 자랄 가능성도 희박하다. 14일 이상 배양할 수 있게 되면 더 많은 생명 탄생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2021년 ISSCR은 인간 배아를 14일 이상 배양하는 것을 가능케 해야 한다는 의제를 각국에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합성 인간 배아가 현실화하면서 불임이나 난임을 치료하고, 조기 유산의 원인을 밝히는 새로운 기원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정자와 난자는 수정 후 자궁벽에 착상한다. 이후 세포가 분열과 증식을 거듭하며 개별 조직으로 분화하는데, 이 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다. 블랙박스처럼 감춰져 있던 수정 후 배아 형성 과정을 합성 인간 배아로 연구할 수 있다. 일부 배아는 발달하지 못하는 등 임신 중 30%는 첫 주에 실패한다. 합성 인간 배아로 유산의 원인을 밝힐 수 있다.
신약 효과도 따져볼 수 있다. 태아에게 끼칠 영향 때문에 임신한 여성은 신약 임상시험에서 제외된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때도 임신 여성에 대한 임상은 진행되지 않았다. 합성 인간 배아를 통해 신약이 아기에게 어떤 효능이나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 합성 인간 배아를 사전에 조절해 뇌나 신경계가 형성되지 않도록 조치한 뒤 장기 이식용으로도 배양할 수 있다. 2005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아일랜드'에 등장하는 장기 이식용 복제인간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단 영화처럼 복제인간이 의식을 갖거나 하나의 인간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장기 이식용 세포가 자라는 것이다.
가팔라지는 과학적 진보와 함께 윤리적 논란도 대두된다. 크리스토피 갤리체트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영국 사이언스미디어센터에 "합성 인간 배아를 만드는 것은 이제 과학자 손에 달려 있다"며 "합성 인간 배아 연구를 위해 윤리적, 그리고 규제적 의미를 논의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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