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서 무르익는 박순태 감독과 동티모르의 꿈 “월드컵으로 가는 팀이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월드컵으로 가는 팀이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선 남들과 다른 길이 두렵지 않는 몽상가다운 기백이 흘러 나왔다.
동티모르에서 제2의 <맨발의 꿈>을 찍고 있는 박순태 감독이다. 모교인 대구대에서 17년간 지휘봉을 잡았던 그는 올해 2월 동티모르 축구대표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최근 강원도 평창으로 전지훈련에 나선 박 감독은 기자와 통화에서 “동티모르 축구를 개척한 김신환 감독님과 P급 라이선스 교육을 같이 받은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고 떠올렸다.
김신환 감독은 2002년부터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대표팀을 지도해 잘 알려진 인물로 동티모르 아이들의 애환을 담은 2010년 개봉작 <맨발의 꿈>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 감독이 키워낸 선수들이 어느덧 성인 무대의 주축으로 올라서면서 박 감독과 함께 월드컵이라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박 감독은 “처음엔 재능 기부로 선택한 길이 이젠 해볼 만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동티모르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최약체 수준인 192위. 2026년 북중미 월드컵부터 아시아에 배정된 본선 티켓이 8.5장(종전 4.5장)으로 늘었다지만 동티모르가 쉽게 노릴 수준은 아니다.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부터 시작해 최종예선까지 바늘 귀 같은 구멍을 뚫어야 한다.
박 감독도 이 사실을 잘 알지만 동티모르에서 보낸 반 년 사이 첫 발은 잘 뗐다고 자부하고 있다.
동티모르는 지난 5월 23세 이하 선수들이 참가하는 동남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FIFA 랭킹 135위 필리핀을 3-0으로 무너뜨리며 화제를 모았다. 동티모르가 2021년 12월 필리핀과 A매치에서 0-7로 완패한 터라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당시를 떠올린 박 감독은 “딱 한 경기를 이겼을 뿐”이라면서도 “두 달 훈련에서 나온 결과로는 나쁘지 않았다. 동티모르 축구도 가능성이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박 감독이 찾아낸 가능성은 패싱 게임이다. 동티모르 선수들의 평균 신장(160㎝)이 작다보니 상대와 몸 싸움은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민첩성을 살리면서 빈 틈을 노리는 축구를 펼쳐야 한다. 박 감독은 “현지에선 ‘달라졌다’ ‘좋아졌다’는 호평을 받는다. 달라진 내용만큼 달라진 결과를 얻는 게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
박 감독과 동티모르 선수들은 10월 8일까지 예정된 평창 전지훈련이 터닝 포인트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FIFA의 재정적인 보조와 함께 평창에서 요식업을 하고 있는 대구대 시절 옛 제자들의 도움으로 한 달 가량의 훈련이 시작됐다. 박 감독은 “심봉섭 평창군 축구협회장님의 도움으로 훈련장이 마련됐고,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 힘을 모아 선수들의 끼니부터 대원제약이 제공한 의약품, 싸늘해진 날씨를 막아줄 트레이닝복까지 챙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월드컵에서 사고 아닌 사고로 보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0월 12일과 17일 대만 가오슝에서 열리는 대만(153위)과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을 대비하는 전지훈련이기 때문이다.
동티모르는 FIFA 규정에 맞는 홈구장도 없어 2경기 모두 대만 원정으로 치르지만, 다음 단계로 올라서고 싶다는 마음가짐은 결코 상대에게 밀리지 않는다. 동티모르가 월드컵 2차예선에 오른다면 D조에서 기다리고 있는 오만과 키르기스스탄, 말레이시아와 함께 11월부터 맞붙게 된다.
박 감독은 “당장 현실만 말한다면 대만과 1차예선에서 우리가 이긴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그래도 축구공이 둥글다는 말을 믿는다. 반드시 2차예선에 올라 말레이시아의 김판곤 감독님과 함께 한국인 지도자 맞대결도 해보고 싶다. 우리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고 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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