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문의 검’.. 인간 영웅들이 써가는 오욕칠정의 전설 흥미진진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3. 9. 1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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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작품 소개란에는 ‘한국 설화에서 영감을 받은 판타지 드라마’란 설명이 붙어있다. 여기서 말하는 설화는 마고신화일 것으로 보인다. 모두의 어머니로 묘사된 아사신이 바로 마고로 느껴진다.

우리 민족 최초의 역사서라 할 수 있는 신라 박제상의 부도지(符都誌)는 창세기를 다루며 '오미의 변'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아담과 이브의 '出에덴'에 비견될만한 마고성에서의 축출, 그 실낙원의 발단이 '오미의 변'이었고 이로인해 바야흐로 인간세가 시작된다.

드라마 속 인간세는 투쟁의 역사로 점철된다.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능력을 지닌 ‘파란 피’ 뇌안탈들이 ‘붉은 피’ 인간들에게 사냥 당하고 그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뇌안탈과 인간의 혼혈인 ‘보라 피’ 이그트들은 박해받는다.

뇌안탈을 축출하고 이그트를 핍박하는데 성공한 인간들은 다시 서로 죽고 죽인다. 열손(정석용 분)의 말처럼 바로 ‘짓밟지 않으면 짓밟히는 곳’이 아스달로 대표되는 인간 세상의 본질이 된다.

특히 드라마 속 시대는 “전쟁이 끝나면 단번에 해결될 일.”이라는 타곤(장동건 분)의 말처럼 약탈경제가 한창이다. 그렇게 종족이 갈라져 싸우다 보니 그를 통해 인간들 사이에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생긴다.

타곤과 탄야(신세경)의 대화는 그 갈등을 대변한다. “나도 세끼를 먹는데 노예도 세끼를 먹어. 작은 특권이나마 누렸던 사람에겐 평등이란 폭력이야.”(타곤) “누군가를 무시하는 힘으로 살아가려면 물론 그렇겠죠.”(탄야) “그게 질서고 균형야. 균형을 깨지마. 아스달은 나날이 번영하고 있어.”(타곤) “번영의 반대쪽에 떼사리촌이 있고 개마골이 있어요.”(탄야) “떼사리촌은 죄인들이고 개마골은 그런 신분들이야.”(타곤) “떼사리촌은 당신의 권력을 위한 희생자들이고 개마골은.. 그 어떤 신분도 그렇게 살아야 될 이유는 없어요.”(탄야)

갈등은 대척점에 선 타곤과 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추억을 공유했고 뜻을 같이 하며 사랑하는 사이인 탄야와 은섬(이준기 분) 사이에도 존재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못된 욕심과 아우성으로 가득 차 있어. 아사신은, 흰늑대 할머니는 실패했어.”(탄야) “아니 욕심과 욕망 때문에 실패한 게 아냐. 그걸 뒤집으면 간절한 바람과 희망야. 배신과 의심뿐인 아고족이 왜 나를 이나이신기로 삼았는지 알아? 지치고 지쳐서 자신들도 희망을 갖고 싶으니까. 난 아고족의 이기적인 욕심도, 못된 욕망도 신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이나이신기가 됐어.”(은섬) “그래서? 그들의 못된 바람대로 뺏고 뻿기고 싸우고 피를 뿌리고 복종시키기 위해서 때리고 죽이고 그렇게 할 거야?”(탄야) “많은 사람들이 죽겠지. 그게 전쟁을 주관하는 이나이신기의 길이야.”(은섬)

이 시대 속 인간의 이기심은 필요에 따라 신의 존재마저 부정한다. 대신전 감옥에 유폐된 방계아사씨의 수장 아사사칸(손숙 분)은 타곤을 불러 말한다.

“우리 선조들이 아라문을 죽였어. 너희 새녘족도 가세했지. 그는 아이루즈란 신을 세우고 아스달에 뇌안탈을 들이려 했다. 우리가 그를 살려둘 수 있겠느냐? 아라문을 찌르고 베면서 우리는 공포에 질렸다. 보랏빛 피. 그는 이그트였다.”고 비사를 밝혔다.

이어 “이 아스달은 천년동안 우리 흰산족과 너희 새녘족이 만들어온 땅이다. 아라문 따위에 사로잡히지 마라. 아이루즈에 기대지도 마라. 200년 전만해도 이 땅에 그런 신은 없었다. 애초에 아이루즈는 아라문이 데려온 신일 뿐이야.”

아사사칸이 부러 타곤에게 당부할 필요도 없었다. 타곤은 당장만이 중요할 뿐. 이미 아라문이든 아이루즈든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타곤은 납치된 아들 아록을 구하기 위해 혼자 몸으로 떼사리촌의 무리와 부딪히고 칼에 찔려 보라색 피를 노출한다. 타곤을 걱정해 전장에 뛰어든 태알하(김옥빈 분) 역시 부상을 입고, 필요에 따라 가세한 은섬 역시 부상을 입는다. 그들 모두가 보라피를 흘리며 자신들이 이그트임을 군사들에게 노출하고 말았다.

모두가 난감한 그 순간 탄야가 등장한다. 그녀는 신의 뜻에 따라 아라문 해슬라의 무덤을 찾았고 살해당하고 포계당한 아라문 해슬라의 관을 만났다며 “아라문의 성스러운 시신에서 보랏빛을 보았다. 해슬라의 아라문께선 이그트로 오셨느니라. 이제 아라문의 권능과 본연을 도로 찾으니 가장 신성한 아라문의 보라 피를 영원한 축복의 증거로 하사하시었다.”고 선포한다.

200년 전의 아라문해슬라는 뇌안탈까지를 동류로 포용하려 했다. 그 200년 후 탄야는 핍박받던 이그트를 해방시켰다.

한민족의 마고신화는 사해동포주의를 표방한다. 오미의 변(五味之變)이란 백소씨(白巢氏)의 일족인 지소씨(支巢氏)가 지유(地乳) 대신 포도를 먹고 다른 사람에게도 먹게 한 사건이다. 마고성의 선인들은 5미(味)의 맛에 취하고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천성을 잃게 되면서 마고성에서 쫓겨난다.

이때 가장 연장자인 황궁씨는 근본으로 돌아가겠다는 복본(復本)의 서약을 하고 북문을 나서 천산주로, 청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동문을 나서 운해주로, 백소씨는 서문을 나서 월식주로 행하고 흑소씨는 남문을 나서 성생주로 나아가니 인류가 모두 한 근원임을 명시한다. 환웅의 건국이념이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이 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아사신의 후예는 핏줄이나 신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사신의 뜻으로 이어지는 것이니라.”는 탄야의 설법은 그로부터 비롯된 차별없는 평등한 세상을 선포한 모양새다.

하지만 황궁씨의 ‘복본의 서’나 탄야의 평등사상이 인간세에 자리잡기는 쉽지 않다. “옳은 곳으로 가는 길은 옳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차 있어.”란 은섬의 말도, “세상은 옳은 일들 투성이야. 옳은 일이 옳은 일을 가로막아.”란 탄야의 말도 다 옳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닥치는대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다.

이미 신으로부터 멀어진 인간들의 이야기 ‘아라문의 검’. 인간의 영웅들이 써가는 오욕칠정의 전설이 많이 재미있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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