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열정 일깨워준 '던파 심포니'

"칼날은 다시 한 번 음악으로 연단된다"
바탕화면에 늘 '던전앤파이터'가 장식돼 있을 정도로 열성 팬인 동료 기자 말에 따르면 요즘 게임 내 분위기가 좋지 않다. 최근 신규 지역 선계 업데이트를 선보였지만 가라앉은 분위기를 확실하게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라고 한다.
이는 오케스트라 공연 예매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른 게임 오케스트라 공연 대비 예매율이 높지 않았다. 보통 인기 게임 오케스트라 공연은 순식간에 매진된다. 조금 늦으면 도리없이 취소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치열하다. 던파 오케스트라는 티켓팅 경쟁 없이 여유롭게 예매할 수 있었다.
게임 음악 공연이라면 자다가도 달려가는 편이라 고민 없이 참석했다. 현장에 관객이 많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17일 롯데콘서트홀 8층에 올라서자마자 기우임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관객들로 대기 공간이 가득했다. 이를 보며 "퇴장할 때 꽤 고생하겠다"는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좌석에 앉아 살펴보니 사이드 좌석 일부를 제외하면 빈 자리는 없었다.
사이드 좌석을 앉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가까이서 연주단과 악기가 보였다. 다만 시선을 우측 아래로 고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 분명 매력도 있지만 다음 음악회를 예매한다면 되도록 정면 좌석을 노릴 계획이다.
던파에는 수많은 명곡들이 있다. 던파에 관심이 없는 게이머들도 OST만큼은 즐겨 들을 정도로다. 그래서 이 음악회에 기대감이 정말 컸다.

정영걸 네오플 미디어실 실장 인사, 던파 세계관 간단 소개와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공연은 총 7가지 테마, 27곡이 준비됐다.
오프닝으로 10년 넘게 들어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곡이 연주됐다. 캐릭터 선택창 음악이다.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인데 오케스트라 합주로 편곡되니까 그 웅장함이 한층 고조됐다.
오프닝 곡에서 가장 인상적인 악기는 실로폰과 플루트 그리고 징이다. 실로폰은 신비로운 느낌을 제공한다. 경쾌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다. 플루트의 경우 중반부에 독주 섹션이 있는데 자연스럽게 눈을 사로잡아 기억에 새겨졌다. 징 소리는 처음에 박수, 바람 소리인 줄 알았다. 특수 장치로 설계됐는지 일반적인 국악 징과는 사뭇 다른 소리라 인상적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주인공인 지휘자도 빼놓을 수 없다. 최영선 지휘자의 음악회는 처음이다. 안두현, 진솔 지휘자의 환상적인 무대가 여전히 머릿 속에 남아있는데 최 지휘자는 두 지휘자와는 또 다른 매력을 자랑했다.
안두현 지휘자는 힘찬 동작 속에서 솟아오르는 압도감, 진솔 지휘자는 우아한 동작 속에서의 아름다움이 매력이라면 최영선 지휘자는 정갈한 동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련미가 돋보였다.
캐릭터 선택창 이후 오케스트라는 세리아의 방, 엘븐가드, 헨돈마이어 순서로 이어졌다. 캐릭터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 것이다. 과거의 추억이 떠오르는 동시에 워낙 익숙해진 BGM들의 뛰어남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던파 BGM은 은은하게 가미된 목소리와 가사가 특징이다. 다른 게임 오케스트라 공연은 편곡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많은데 던파는 합창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위너 오페라 합창단은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곡 특상상 알 수 없는 가사로 부르기 힘든 구간이 많은데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히링 제도, 기억의 도서관 BGM을 끝으로 1부가 종료됐다. 락 베이스의 곡들을 오케스트라로 완벽히 재현한 것에 감탄사를 금치 못했던 시간이었다. 백야, 샐로우 킵 보스, 미망의 탑, 추격 섬멸전 메들리를 매끄럽게 잘 연결한 점도 놀라웠다.
게임 오케스트라 공연은 보통 스크린에 관련 화면을 함께 보여주는데 던파는 세계관 소개, 일부 지역 소개에 잠깐 게임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는 것 외에는 연주자 모습을 스크린으로 보여줬다. 전통 오케스트라에서 보여주는 형식이지만 화면을 보며 추억을 더 깊게 되새길 수 있는 게임 음악 특성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2부는 오큘러스 '진실의 제단'으로 시작했다. 당시 던파를 가장 열심히 즐겼을 때라 잊을 수가 없는 곡이다. 에픽, 신화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선지자 에스라를 얼마나 많이 잡았을까. 음산한 분위기와 이집트 피라미드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 핵심인데 이를 완벽히 소화했다.
'문의 주인 카론'은 동료 기자의 베스트 픽이다. 듣자마자 소울브링어의 굴욕적 모습이 떠올랐다. 카론의 위엄과 강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후 오케스트라는 안톤, 루크, 프레이 이시스, 시로코, 오즈마, 바칼 BGM을 차례로 선보였다. 로터스는 없었다. 사도 BGM에서 드디어 게임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다. "그래 이 느낌이야"라며 몰입감이 확 살아났다.
가장 좋아하는 레이드 BGM은 '시로코'다. 가장 많이 즐겨서 그런 것도 있지만 몽환적인 분위기를 워낙 좋아한다. 여타 레이드 BGM은 사도의 강험을 표현하기 위해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에 집중했다면 시로코는 설정상 사연이 많은 캐릭터라 그런지 비애와 슬픔이 함께 느껴진다.
BGM도 좋지만 애니메이션 구성도 칭찬 포인트다. 아간조 앞에 나타난 록시, 카잔을 사로잡는 소울브링어, 위기에 처한 동료를 구해주는 크리에이터와 다크나이트, 바칼과 게이볼그의 전투 등 인상적인 장면들을 모두 담았다. 개발진이 어떤 장면으로 유저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구성이다.
- Liberation [Vocal. 달노도]
바칼까지 처치하고 귀환 섹션이 펼쳐졌다. 귀여운 아처의 모습을 보자 반가웠다. 첫 곡은 'Liberation'이다. 송커버 크리에이터이자 가수인 달노도가 보컬에 참여했다. 던파 팬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가수다.
최근 업로드된 마지막 재회 송커버 영상도 자주 듣고 있다. Liberation 곡 자체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는데 라이브로 들으니까 느낌이 또 달랐다. 새롭게 시작하는 활기찬 멜로디가 오케스트라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환기시켰다.
앙코르 곡은 레쉬폰이다. 왜 이 곡을 앙코르 곡에 넣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설명에서는 기존에 선보이지 않았던 신선한 전개가 던전앤파이터 역사상 최고의 곡으로 각인시켰고 현재까지도 부동의 1위인 만큼 앙코르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은은하게 디레지에 레이드가 개발 중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기대감도 들었다.
- 마지막 재회 [Vocal. 요아리, 김민호]
두 번째 앙코르 곡은 '마지막 재회'다. 기자의 베스트 픽이다. 개인적으로 2020년 게임 음악 중 베스트 톱5로 선정했던 적이 있다. 재생 횟수만 1000번을 넘겼을 정도로 좋아한다. 보컬은 원곡 그대로 요아리와 김민호 가수가 맡았다.
이 곡의 특징은 찢어질 듯한 고음 보이스로 재화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다. 애절한 감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만큼 난도가 매우 높다. 이걸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 감격스럽고 소름이 돋았다. 이 곡 하나만으로 본전 뽑았다고 해도 손색 없다.
참고로 '마지막 재회'는 노래방에서 도전할 수 있다. TJ 노래방 기준 85480번이다. 직접 불러보면 이 곡이 얼마나 어려운 지 몸소 느낄 수 있다.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게임이라 그런가. 지금 던파를 즐기진 않고 있지만 긴 시간 떠나있다가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눕는 듯한. 그런 친숙한 공연이었다. 멜로디를 알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메인 악기에 시선이 이동되기도 했다. 오후 6시에 진행되는 2차 공연도 관람하고 싶을 만큼 알찬 시간이었다.
최근 도적 히든 아바타가 출시됐다. 레인저(여), 베가본드, 소드마스터 다음 메인 캐릭터로 육성한 직업이 로그다. 안 그래도 버프 이펙트가 달라지는 구성으로 구매욕이 치솟았는데 오케스트라를 보고 나니 던파를 다시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한층 강해졌다.
오케스트라를 관람한 커플 관객에게 소감을 물었다. 남성 관객은 "라이브로 던파 음악들을 들으니까 너무 좋았다. 여자 친구는 던파를 하지 않는데 따라와줘서 고마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선 자칫 지루할 수 있는데 음악에 빠져들어 다행이었다. 다음에도 또 열리면 좋겠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완벽한 무대를 선사한 오케스트라만큼 게임도 긍정적인 분위기를 되찾아 더 멋진 오프라인 행사를 보여줄 수 있길 기대한다.
■ 던전앤파이터 심포니 현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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