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워싱턴의 ‘이가 긴’ 사람들

박영준 2023. 9. 1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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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바이든 나이·건강 대선 변수
77세 트럼프 건강 과시하며 공세
롬니, 고령 이유 상원 불출마 선언
“이제 새로운 세대 리더 필요” 일갈

커린 잔피에어 미 백악관 대변인은 6일 백악관 정례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테스트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끊임없이 말해야 했다.

“제가 말했듯이 대통령은 월요일에도 음성을 받았고, 화요일에도 음성, 오늘도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식이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세어 보니 ‘음성(negative)’이라는 단어만 열아홉번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이틀 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바이든 대통령도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7일부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인도를 방문하고, 연이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라 코로나19에 확진될 경우 외교 일정 전체가 어그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약 40분간 진행된 브리핑의 절반 가까이가 코로나19 관련 질의로 채워진 것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코앞이었지만 ‘북한’이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브리핑에 등장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와 베트남을 방문한 5일간의 외교 일정을 비교적 잘 마무리했다. 인도와 중동, 유럽 경제권을 연결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을 구축하며 대중국 견제 수위를 끌어올렸고, 베트남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 등도 성과로 평가됐다.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은 5일간의 빡빡한 외교 일정을 소화해낸 것을 성과에 끼워 넣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바이든은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나이와 체력에 대한 의문에 직면했고, 해외에서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그가 여전히 세계를 누비는 정치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전후로 미국 정치권과 언론이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와 건강 문제에 얼마나 높은 우선순위를 매기고 있는지 새삼 느꼈다.

대선을 1년 정도 앞둔 워싱턴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이 대선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변이 없다면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매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은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이 이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와 건강에 관련한 공세는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80세인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해 77세 트럼프 전 대통령이 건강을 과시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인사들도 저마다 젊음과 건강을 부각하느라 여념이 없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자신이 대학 시절 야구부 주장 출신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고교 시절 미식축구 선수였다는 팀 스콧 하원의원은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영상을 올렸다. 기업가 출신의 38세 비벡 라마스와미는 지지자들과 테니스를 쳤다.

워싱턴의 나이 논란은 의회에서도 계속된다. 올해 83세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이 최근 2024년 선거에 출마한다며 20선 도전을 선언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은 한 달 사이 기자회견에서 두 번이나 멍하니 얼어붙어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재소환했다.

지난 15일 워싱턴에서 가장 주목받은 뉴스는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의 선거 불출마 선언이었다.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과 영상에서 롬니 상원의원은 당당했다. “솔직히 말해 이제는 새로운 세대의 리더가 필요한 때”라는 그의 발표는 워싱턴을 뜨겁게 달궜다. 롬니 상원의원의 기자회견은 최근 워싱턴의 어떤 기자회견보다 활기찼다.

그는 “나는 이미 이가 길다. 나 같은 사람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말의 나이를 이로 가늠하는 관행에서 유래한 ‘이가 길다(long of tooth)’는 표현은 나이가 많다는 뜻이다. 롬니 상원의원은 “사람들이 웃을 때, 당신이 머물기 원할 때 떠나야 한다. 사람들이 ‘왜 아직도 어슬렁거리고 있는 거지’ 하고 물을 때 그곳에 있고 싶지 않다”고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 롬니 상원의원의 일갈은 시작에 불과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워싱턴의 이가 긴 사람들을 향한 퇴장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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