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단계 진입한 북·러관계···김정은의 다음 행보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대면 외교 재개
조만간 중국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 가능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박6일 간 방러 일정으로 북·러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러시아 극초음속미사일과 전략폭격기·대잠호위함을 두루 둘러보면서 그간 전략자산 전개와 연합훈련 강화로 북핵 위협에 대응해 온 한·미에 응수했다. 북·러는 군사 및 경제협력으로 밀착해 북·중·러 3각 구도를 다지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이 ‘북·중·러’라는 틀에 깊숙이 들어갈지는 미지수이다. 이들 세 나라의 대응과 한·미, 한·미·일의 맞대응이 이어진다면 ‘신냉전’ 대립 구도는 더 깊어질 수 있다.

북·러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성사된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각자 필요한 지원을 이끌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사협력을 상징하는 아무르주 보스토니치 우주기지로 김 위원장을 초청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기술 개발을 돕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북·러 관계를 대외 정책 1순위로 놓겠다고 화답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대해서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포탄 등을 북한으로부터 지원받고,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에 필요한 러시아의 첨단 기술과 원유·식량 지원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 후 러시아 군사 시설을 연달아 방문한 것도 이 같은 의혹을 증폭시킨다. 북·러 간 무기 거래가 현실이 되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유엔의 제재가 사실상 무너질 수 도 있다.

이번 김 위원장의 행보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방미 당시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를 방문하고, 지난 7월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에 승선하는 등 한·미 동맹을 강조한 행보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있다.

북·러 간 무기거래 가능성에 대해 미국은 “거대한 실수(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과가 있을 것(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이라며 강하게 경고했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경고를 의식한 듯 북·러 정상회담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5시간 이상 함께 했지만 기자회견은 물론 공동선언문 발표도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과 군사협력이 유엔 대북 제재 틀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17일 기자와 통화에서 “북·러 간 군사 협력이 어느 수준까지 갈 수 있을지가 중요한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유엔 제재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면서 “대외적으로는 북·러 간 무기 거래를 부인하거나 군사협력 내용을 제한적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군사 협력 외에 문화·교육·농업 등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분야 협력은 가속화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방러 기간 중 발레 공연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관람했고 연해주 측과 발레단의 북한 공연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북한과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교류로 우군의 존재를 과시할 수 있다”면서 “또 북·러가 밀착하면 중국을 자극해 끌어들일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대면 외교 활동을 중단했던 김 위원장이 이번 방러를 계기로 본격적 외교 행보에 나설지도 관심사다. 김 위원장이 북한 선수단이 참여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9월23일~10월8일)을 계기로 방중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 경제의 90%를 책임지는 중국으로서는 북·러 밀착으로 대중 영향력이 감소하는 상황을 원치 않을 수 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를 지렛대로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시계추 외교’로 양측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 이어 시진핑 주석과의 연쇄 회담을 성사시킨다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한·미·일에 대항하는 북·중·러 결속을 과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을 포함한 서방이 ‘국제 왕따’ ‘불량 국가’로 분류하는 북·러와 거리를 두고 싶어하기 때문에 느슨한 연대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북·러 간 군사협력의 강도, 북·중·러의 밀착 정도에 따라 한·미·일의 대응 수위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제78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에 참석하는 윤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연설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평가를 말할 예정”이라며 “미국·일본 및 다른 파트너들과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