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따라 ‘거리’ 변했던 78년 북·러관계…북 “새 전성기”
러, 2000년대 ‘친남’서 ‘등거리 외교’ 전환 후 유례없는 밀착
전문가 “북한, 러시아 안보리 지위 흔들 만큼 중요 존재 아냐”
북·러관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를 뚫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고 갈 발판을 마련했다. 북·러는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며 탈냉전 이후 유례없이 밀착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조·러(북·러) 두 나라 관계 발전의 역사에 친선 단결과 협조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고 있는 시기”라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3일 정상회담 만찬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기억한다고 언급했으며 “새로운 친구 두 명보다 옛 친구 한 명이 더 좋다”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했다.
양국은 냉전 시대 전통적 우방국이었지만 협력 일변도 관계만은 아니었다. 양국은 지난 78년 동안 전략적 목표에 따라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련은 1940~1950년대 북한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에 개입하며 북한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45년 8월 한반도에 진주한 소련군은 연해주 극동전선군 산하 88독립보병여단 대위였던 김일성을 내세워 친소 정권을 수립했다. 소련은 1950년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허락하고 무기를 제공했다. 북한의 핵개발도 1950년대 구소련과의 핵 연구 협정에서 출발했다. 북한 최초의 원자로인 IRT-2000 연구용 핵반응로를 제공한 것도 소련이었다.
북한은 1960~1980년대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며 실리를 챙겼다. 스탈린의 뒤를 이은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는 1956년 자본주의 진영과의 평화공존 제창과 스탈린 격하 운동을 펼쳤다. 중국 공산당 내에서 절대권력을 구축하려던 마오쩌둥은 이에 반발했다. 국경 분쟁과 공산진영 내 패권경쟁까지 맞물려 1960년대 중·소 갈등이 이어졌다.
북한은 중·소 분쟁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며 중·소 양국과 모두 안보 조항이 포함된 우호조약을 맺었다. 북한이 등거리 외교를 펼친 이유는 중국으로부터의 안보·경제 지원 외에도 “소련의 과학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핵 기술의 핵심을 이전받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1964년 자체 핵개발에 성공한 중국도 북한으로의 핵 기술 이전은 거부했다. 북한은 1966년을 기점으로 중·소 양국과 거리를 두는 외교노선을 공식화해 중·소 양국으로부터 자율성을 보이는 이른바 ‘주체 외교’로 전환했다.
북·러관계는 소련의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과 한국 북방정책, 소련 붕괴 등을 거치며 소원해졌다. 1990년대 중반 러시아는 경제협력을 매개로 한국과 밀착하면서 북한과의 군사협력에 힘을 뺐다. 러시아는 북한과 1961년 맺은 ‘조·소우호조약’ 파기를 1995년 선언했다. 이후 2000년 9월 러시아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조·러우호선린협력조약’을 맺었지만 이 조약에는 조·소우호조약에 있었던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제외됐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대 러시아의 ‘친남소북’ 외교를 남북한에 대한 ‘등거리 외교’로 전환했다. 한국과의 밀착이 러시아의 역내 발언권을 떨어뜨린다는 판단에서였다. 러시아는 남북대화 촉진, 한반도 긴장완화,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비핵화 등의 원칙을 유지했다.
정상회담을 통해 북·러 양자 관계는 새로운 전환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러시아는 전쟁으로 세계질서 새판 짜기에 나섰으며 ‘장기 소모전’을 염두에 두고 안정적인 군수지원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은 이번 전쟁을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고도화하면서 철저한 국제적 고립에 직면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기회로 삼았다”고 했다.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다만 러시아에 북한은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흔들 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라면서 “안보리 제재를 최대한 우회하며 북한과 어떻게 협력할까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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