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금과옥조로 맹신하지 않는 ‘동의보감’[알아두면 쓸모 있는 한의과학]

기자 2023. 9. 1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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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여름철이면 즐겨 찾아가는 어느 메밀국수 전문점 벽면에는 메밀의 ‘효능’이 커다랗게 적혀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비장과 위장에 1년 쌓인 체기가 있어도 메밀을 먹으면 내려가고 메밀잎으로 나물을 만들어 먹으면 귀와 눈이 밝아진다고 합니다”라고 말이다.

눈앞에 놓인 메밀국수가 ‘맛만 좋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이렇게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문구이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동의보감에는 위 내용과 함께 메밀은 피부병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구절도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식점에서 이런 부정적인 정보까지 벽에 적어 놓았다가는 손님들이 모두 달아날 것이다.

한약 제품의 광고에서도 동의보감이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광고에서는 한약 경옥고가 동의보감에 나오는 4000개의 처방 중 첫 번째 처방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동의보감을 인용한 마케팅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대개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한의약 산업에서도 동의보감이 금과옥조로 여겨질 것 같지만, 현대의 한의사들은 동의보감을 맹신하지 않는다. 동의보감이 소중한 전통 지식임에는 분명하지만, 과학적으로는 틀린 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옥고의 주재료이기도 한 ‘복령’이라는 한약재가 있는데, 동의보감에는 ‘소나무 진이 땅에 들어가 1000년이 지나면 복령이 된다’는 고대 신비주의 사상에서 비롯한 설명이 버젓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의학자인 서유구가 그의 저서 <임원경제지>에서 “옛날에 어떤 황당한 사람이 소나무가 복령으로 변한다고 했으니 우스운 일이다”라고 반박했다.

복령은 죽은 소나무 뿌리에 자라는 부생성 균류로, 구멍장이버섯과에 속하는 버섯의 일종이다. 이뇨 작용이 있고, 소화 기능을 건강하게 하며, 정신 불안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한약 처방에 아주 많이 쓰이는 약재이다.

보통 복령은 소나무 뿌리 곁에 공 모양으로 덩어리를 이뤄 자라는데, 간혹 소나무 뿌리를 감싸며 자라는 것도 있다. 이를 ‘복신’이라고 하는데, 특히 인지기능 개선에 효과적인 ‘총명탕’의 주재료로 복신이 사용된다.

복령은 사용량이 매우 많은 약재이다 보니 과거에는 가짜 복령이 유통되기도 했다. 좋은 복령은 순백색의 가루가 뭉쳐진 듯한 모양이라서 밀가루나 전분을 섞어 진짜 복령처럼 보이는 변조품을 만들 수 있었다. 더군다나 복신은 복령보다 귀하고 비싸므로, 복령 덩어리에 구멍을 뚫고 소나무 뿌리를 박아서 만든 가짜 복신이 중국 시장에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위·변조품은 수입 및 제조 단계에서 여러 차례의 의약품 품질검사 과정을 통해 모두 배제되므로 의료기관이나 약국에서 처방·조제되는 복령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된다. 의료기관과 약국에서는 반드시 의약품 품질검사를 거쳐 제약회사에서 제조된 한약재만을 쓰도록 약사법에서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등에서 농산물로 판매되는 약재는 약사법의 관리범위 밖에 있어 품질검사를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정에서 임의로 약재를 구매해 한약으로 만들어 복용하는 것은 위·변조품을 만날 우려를 만들 뿐만 아니라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므로 반드시 삼가야 한다.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장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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