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사랑의 순서
나는 오리라 하였고 당신은 거위라 하였습니다
모양은 같은데 짝이 안 맞는 양말처럼
당신은 엇비슷하게 걸어갑니다
나는 공복이라 하였고 당신은 기근이라 하였습니다
당신은 성북동이라 하였고 나는 종암동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일치합니다
노인들이 바둑 두는 호숫가에 다시 와 생각합니다
흰 머리카락을 고르듯 무심히 당신을 뽑아냅니다
은행알을 으깨며 유모차가 지나갑니다
눈물 없이 우는 기분입니다
괜찮습니다, 아직은 괜찮아요 은행알도 초록인걸요
떼로 몰려드는 잉어의 벌린 입을 보세요
씨 없는 가시덩굴이 기어이 벽을 타고 오릅니다
(신미나 1978~)
내가 본 ‘오리’와 당신이 본 오리가 다른 이유는 당신이 ‘거위’를 봤기 때문이다. 거위를 알아버린 눈은, 오리를 못 볼 수도 있다.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공복’이라 말할 때 당신이 ‘기근’이라 하는 것은, 서로 마음 안에 쌓인 슬픔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손금도 다르고, 물 위에 찍힌 달을 보는 눈길도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만났고, 다르기 때문에 헤어졌다. 서로의 심장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야 내가 당신이었다는 것을 안다. 나의 말은 당신에게 거짓말이 되기도 하고, 당신의 거짓말은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물망처럼 이어진 나와 당신을 제대로 보는 일, 그것은 서로의 삶 곁으로 다가가는 일이다. 서로 찢어진 생활의 그물을 함께 깁는 일이다. 우리에게 사랑의 순서는 무엇일까? 세상 모든 순서의 맨 앞에 사랑이 올 수는 없을까? ‘눈물 없이 우는’ 사람들에게 가시 없는 나뭇가지 하나 내어 주는 일. 그런 일에 순서가 없기를!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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