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김태흠 지사의 책 추천을 기대하며
김태흠 충남지사를 좋아한다. 내가 출판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민주주의와 기후변화에 관한 좋은 책을 거듭 추천하는 드문 정치인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 그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개한 여름휴가에 읽을 책 3권 중에는 마이클 샌델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가 포함돼 있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소비자’가 아닌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 되기 위해 모든 이가 자신의 생활 방식과 윤리적 가치를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는 책을 추천하는 유력 정치인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몇년 전에도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책을 추천한 바 있다. 2020년 7월22일, 당시 야당 의원이던 김태흠은 특유의 이글이글한 눈으로 총리와 장관 등에게 여당 소속 선출직 지자체장들의 성폭력 문제를 놓고 사납게 질타했다. 정치인들의 ‘선별적 젠더 감수성’을 비판하며 피해자 보호를 주장하는 그의 말은 단호하고 시원시원했다. 더 많은 의원이 피해자 편을 들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자리에서 김태흠 의원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공저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인용하며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 책은 단연 문제작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정치인은 민주주의를 찬양한다. 그래서 정작 독재자나 포퓰리스트의 위험성을 지닌 이를 알아보기가 더 어렵다. 하버드대 교수이기도 한 저자들은 위험한 정치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전체주의 리트머스 테스트’를 고안했다. 테스트에 포함된 15개 질문 중 ‘단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그 정치인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충남 지역 공공도서관에서 성교육과 성평등 관련 도서를 열람 제한시킨 김 지사의 결정에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이 책의 테스트 문항 중 하나가 ‘시민의 자유권을 억압하는 법률이나 정책을 지지한 적이 있는가’였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다양한 자유를 보장하며, 시민의 자유는 법률에 의해서만 제약된다. 그가 열독하고 추천한 이 책의 저자들은 심지어 시민 자유권을 억압하는 법률에 찬성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사실 시민의 자유를 제한할 때 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법치주의의 기본 전제다. 하지만 질문은 가능하다. 도서관의 청소년 서가만이라도 ‘건전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할 권한이 없다’고 답해야만 한다. 이미 법률에 근거한 유해성 여부 심의 기관인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있고, 그 역할과 권한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는 중이다. 개별 정치인이나 행정가에게는 특정 도서의 유해성을 심의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 매체이용 유해환경 실태조사’에서 초등학생의 성인용 영상물 이용률은 40%에 달했다. 어른들은 이미 청소년을 둘러싼 미디어 환경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선정적인 내용을 보려고 공공도서관에 들르는 청소년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이번에 논란이 된 성교육과 성평등 도서들을 보며 이 책들이 대부분 오늘날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패로 고안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독서가인 김 지사가 청소년을 위한 책을 추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년 서가가 아무래도 조금 낯설다면 사서나 교사, 혹은 이번 논쟁을 불러일으킨 열정적인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도 좋을 것이다. 특정한 책을 서가에서 빼내는 것과 자신이 권하는 책을 넣는 것 중 무엇이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는지는 자명하다.
도서관 서가는 마치 정원과도 같아서 다채로울수록 더욱 아름다워진다. 다양한 책들을 추천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주주의가 조금 더 단단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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