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칼럼] 매카시즘은 어떻게 무너질까?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오펜하이머’는 1945년 맨해튼 계획이 아니라, 1954년 ‘오펜하이머 사건’을 다룬 영화다. 바로 원자력 분야의 매카시즘이 영화의 주제다. 세계의 파괴자로 자책하고, 군비경쟁을 우려하고, 수소폭탄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오펜하이머를 ‘빨갱이’로 몰았던 매카시즘은 미국 ‘민주주의의 오점’이었다. 오바마 정부를 거쳐 바이든 정부에 와서야 미국은 얼룩을 지우고, 오펜하이머를 복권시켰다. 민주주의의 얼룩이 번져가는 한국에서 미국의 매카시즘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1950년 매카시 상원의원이 국무부의 공산주의자 명단이 ‘내 손안에 있다’고 거짓말을 한 뒤, 워싱턴포스트의 허버트 블록은 매카시즘을 ‘선동, 근거 없는 비방, 인신공격’으로 정의했다. 홍범도 장군의 시련이 바로 대표적인 매카시즘의 사례다. 마치 1950년대의 찰리 채플린을 보는 듯하다. 찰리 채플린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고, 2차 세계대전 연합국이었던 소련 후원 행사에서 연설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렸고, 결국 사실상 추방당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독일과 일본에 맞서기 위해 협력했는데, 냉전 이후의 반공주의로 냉전 이전의 역사에 빨간 색깔을 칠한 사례다.
매카시즘의 특징은 거짓말이다. 중요한 것은 거짓 의혹이 ‘적색 공포’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오펜하이머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사찰하고 정보를 흘리는 정보기관이 대상을 정하고, 진실을 가리지 않는 언론이 키우고, 개인의 출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앞잡이들이 나선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끊임없이 매카시즘이 부활하는 이유가 있다. 권력과 언론, 정치권이 얽혀 있는 ‘거짓말의 카르텔’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바람이 불 때는 숨죽였다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얼룩을 깨끗이 지우는 노력이 그만큼 중요하다.
매카시즘은 어떻게 무너졌을까? 누가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너졌다. 모래 위의 성처럼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리 언론을 장악해도, 국가 기관의 제도적인 폭력을 동원해도, 민주주의가 살아 있으면, 거짓말의 실체가 드러난다. 매카시즘은 정치의 병리 현상이고, 민주주의는 치유의 힘이 있다. 물론 파시즘은 다르다. 파시즘의 특징이 바로 ‘조직화된 거짓말’이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사실 자체를 경멸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조직 논리에 복종하는 악의 상투성을 밝혔다. 폭력으로 거짓말을 조직하는 파시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시민들이 생각을 나누며 오류를 인정하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매카시즘의 가장 큰 약점은 불통이다.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소통 능력이 없고, 대화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추상적인 이념을 맹신하기에 일방적이다. 그래서 언제나 여론의 변화에 둔감하다. 매카시처럼 거짓말에 피로를 느끼던 대중이 돌아섰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몰락의 선을 넘는 이유도 불통의 예정된 결과다. 정치가 사라진 자리는 혐오와 대결만 난무하고, 무너지는 것은 국민의 삶이다.
매카시즘의 가장 큰 후유증은 신뢰의 붕괴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파도가 밀려오는 현실에서 신뢰의 붕괴는 치명적이다. 정부가 너무 자주 거짓말을 하면, 불신의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신뢰 자산을 유지하고 키우는 일이 쉽지 않고, 시간이 필요하다. 언제나 신뢰를 만들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매카시의 결정적 판단 착오는 군대를 빨갱이로 몰았다는 점이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를 이념으로 흔들려 하다가, 결국 거짓말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몰락했다. 육군 청문회에서 조지프 웰치 변호사가 ‘당신은 품위라는 것도 모르나요’라고 물었을 때, 비방과 인신공격은 힘을 잃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한 합리적인 보수도 거리를 두었고, 황색언론도 흥미를 잃었다.
매카시는 대중의 관심이 끊어지자 술만 마시다 48살의 나이로 쓸쓸히 사망했다. 매카시는 죽었지만, 매카시즘은 자주 부활한다. 매카시즘은 민주주의가 약점을 드러낼 때 나타나고, 민주주의가 작동할 때 무너진다. 매카시즘은 단순한 정치적 반동이 아니라, 보수의 분열을 의미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한다. 선거 때문이다.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부정하고 납득이 어려운 궤변으로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기는 어렵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을 보고 실망하지 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언제나 증명했다. 풀들은 항상 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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