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언 레코드와 언론자유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이정국 | 문화팀장
‘더 매리언 카운티 레코드’(매리언 레코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 모를 것이다. 나도 뉴스를 보기 전까진 몰랐다. 미국 중부 캔자스주에 있는 인구 1만1천여명의 작은 자치구 매리언 카운티에서 발행되는 지역 주간 신문의 이름이다. 발행 부수 4천부에 기자 7명, 매리언 카운티 주민이 아니라면 아는 게 신기할 정도로 작은 신문사가 갑자기 미국 언론계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역 경찰이 이 신문사와 기자들의 집을 지난달 압수수색하면서부터다.
경찰은 신문이 지역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사업가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사업가는 주류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시의회로부터 승인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승인이 거부될 수 있는 음주운전 전력을 한 시의원이 폭로했고, 경찰은 시의원이 해당 정보를 신문사에 불법적으로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매리언 레코드 발행인 에릭 마이어는 “(시의원이 아닌) 한 제보자로부터 정보를 받았지만, 개인정보가 담겨 있는 내용이라 기사화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며 “정보를 불법 취득·공유하지 않았다. 압수수색은 게슈타포 전술”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작은 마을에서나 일어날 법한 해프닝으로 보이지만 뉴스의 중심이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신문이 매리언 카운티 경찰서장과 연루된 각종 의혹에 대한 취재를 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서장의 성추문 의혹에 관한 것도 포함돼 있었다. 이쯤 되면 ‘아’라는 낮은 탄식이 나올 만하다. 지역 경찰서장이 자신의 의혹을 취재하는 지역 신문사를 압수수색한 것이다.
경찰서장을 향한 취재와, 경찰의 압수수색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경찰은 당연히 “수사의 정당성이 입증될 것이다”라며 보복 수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보복 수사를 통한 언론 통제라는 쪽으로 기사를 내고 있다. 지난달 19일 뉴욕타임스는 이번 압수수색을 두고 “미국 언론계에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문 일”이라고 평가했다. 시엔엔(CNN)은 같은 달 17일 “뉴스 취재에 대한 공격이다. 미국의 가장 뛰어난 가치 중 하나인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기자 칼럼을 내보냈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력 일간지들도 합세했다. 미국 언론계는 이번 사건을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보고 있다.
존재조차 알기 힘든 작은 지역 언론사의 압수수색에 언론 모두가 일치단결해 비판 기사를 내는 미국을 보면서 현재 한국 언론의 상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4일 검찰은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을 보도한 뉴스타파와 제이티비시(JTBC) 회사와, 기자들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하필 뉴스타파가 검찰 특수활동비 검증 보도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앞서 5월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문화방송(MBC) 본사와 기자를 경찰이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진보성향 언론과 미디어 비평지에서만 언론자유 침해를 우려하는 기사와 사설 등을 실었을 뿐, 보수 언론들은 압수수색 소식만을 짤막하게 보도하고 입을 닫았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취재 선진화 방안이 나오자 언론자유 침해를 우려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을 때와는 딴판이다. 언론사 압수수색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지금의 상황이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보는 것일까.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은 곧 언론의 자유와 연결된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지난 5월 발표한 ‘2023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180개국 중 47위였다. 지난해보다 4단계 하락한 순위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만에 생긴 일이다.
윤 대통령은 연설문 등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눈에 띄게 자주 사용할 정도로 자유의 가치를 신봉하는 국가 지도자다. 하지만 헌법에서도 보장한 언론의 자유는 ‘윤석열의 자유’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정권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때다.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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