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안, 옳은가
[세상읽기]
[세상읽기] 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
사법농단은 판사인 내게 유례없는 충격을 던졌다. 처음에는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판사들과 연구회를 감시·통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더니, 나중에는 그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부과하고 재판 관련하여 정부·국회와 의사를 교환하거나 정보를 제공하거나 법률자문 해주거나 재판을 국정협력 수단으로 일컫거나 심지어 개별 재판에 개입하기까지 했단 사실들이 확인됐다.법관의 독립이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는 사회에서 독재 정권에 종속되어 독립된 재판을 하지 못했던 치욕의 역사를 수많은 재심으로 확인하던 시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문제가 발생했으니 원인을 파악하여 재발을 방지해야 했다. 판사들이 주목한 부분은 ‘일련의 사태가 일부 판사들의 개인적 일탈로 인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과 ‘외관상 독립된 것처럼 보였던 사법이 실제로는 재판과 법적 전문성을 수단 삼아 정부·국회와 밀월관계를 형성하였다는 점’이었다. 독재 정권이 사법행정, 법관 인사 및 재판에 직접 관여하여 판사들을 통제했다면, 사법농단 시절에는 대법원장이 강력한 인사권과 사법행정권으로 판사들을 통제하고 정권은 대법원장과 위헌적인 교류를 시도했다. 정권 입장에서는 사법행정권자의 협조 아래 판사 개개인을 직접 통제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사법을 통제할 수 있었고, 구조에 저항하지 못한 판사들은 위헌적인 사법농단에 휘말렸다. 따라서 재발방지 대책으로는 사법행정권자의 재판 개입 등 월권과 권한남용을 방지하고 개별 판사가 위헌적인 사법행정에 저항할 수 있도록 ‘대법원장의 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분산·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제안되었다.
대법원장의 가장 강력한 인사권 행사 대상이자 판사들이 위헌적인 사법행정에 동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유인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가 꼽혔는데, 2011년 이미 사법관료화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어 폐지가 예정되어 있던 제도였다. ‘법원의 꽃’으로 불렸던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지방법원 판사 중에서 선발되었다. 그들은 대법관 후보 자격을 사실상 독점했고, 근무평정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며, 지방법원장을 전담하여 지방법원 판사들을 관리·감독했다. 이 제도는 판사들 사이의 승진 경쟁을 부추기고 지방법원을 고등법원에 예속시켜 판사 통제를 강화하는 등 사법관료화를 촉진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사법관료화가 빚은 사법농단에 대한 반성적 고려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가 폐지되었다. 고등법원·지방법원 인사를 분리하는 이원화 정책의 일환으로 지방법원 판사에게 지방법원장을 맡기는 제도가 실시되었다.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간의 위계질서를 약화시켜 지방법원 소속 판사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대법원장의 판사 통제를 분산하기 위해서다. 다만,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수가 적어 순번제로 지방법원장을 맡았는데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수가 많아 순번제로 지방법원장을 맡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에 지방법원장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되, 자의적인 인사를 막기 위해 소속 법원 판사들의 의사를 상당 부분 반영하도록 하였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가 폐지되며 고등법원·지방법원 이원화 정책과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실시되자, ‘법원장이 쪼지 않고 승진도 없어지니 판사들이 일을 안 해 미제가 쌓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사법부의 가장 큰 위기는 ‘일 안 하는 판사들’이 되었다. 미제 분포의 악화 원인 분석에서 법조일원화 실시로 인해 판사가 고령화된 점(평일이고 주말이고 밤새울 수 있는 비혼·무자녀의 20대 판사들이 사라졌다), 시대 변화에 따라 ‘전업주부를 배우자로 맞이하고 육아와 가사에서 완전히 배제된 남성 판사’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 점, 산업구조와 기술의 고도화로 인해 사건의 난이도가 높아진 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재판을 열지 못한 시기가 있었던 점 등은 고려되지 않았다. 더하여 판사들은 승진을 위해 재판하고 법원장이 통계를 들이밀어야 일하는 존재가 되었다. ‘일선 판사’로서 모욕감을 느끼지만, 저 지적과 대안이 모두 옳다면 개인의 모욕감 따위야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러니 지적과 대안이 옳은지 진지하게 들여다보자. 우리 사회는 ‘승진을 위해 재판하는 판사’를 원하는가? ‘승진에서 실패한 판사’는 무능력한 판사인가? 판사 통제와 승진 경쟁이 부른 재판독립 침해 위험은 제거되었는가? 무엇보다 현재 판사들은 통제와 승진 경쟁의 부재로 인해 집단으로 태업 중인가? 최근 10년 내 주기적으로 판사들과 법원 공무원들이 과로사해왔다는 점은 어째서 이리 쉽게 잊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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