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언론자유 핵 ‘비닉권’
1972년 6월17일, 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는 전화를 받았다. 워터게이트 호텔에 침입한 혐의로 체포된 5명을 취재하라는 지시였다. 미국 정계를 뒤흔든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시작이었다.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고위 관리’ 제보에 따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꾀하던 비밀공작반이 민주당 선거회의를 도청했다는 보도를 한다. 거짓말까지 한 닉슨은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은 감시견으로서 언론의 존재이유를 보여줬다. 하지만 가장 큰 기여자는 ‘딥 스로트’라 불리는 내부고발자였다. 제보자가 없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닉슨 대통령 재선 후 정부와 수사기관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취재원을 밝히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끝까지 함구했다. 그의 신상이 밝혀진 것은 33년이 지난 2005년이었다.
취재원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저널리즘 원칙이다. 미국 많은 주에는 ‘방패법’이라는 취재원 보호법이 있다. 독일은 취재원을 밝히기 위한 압수수색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엔 ‘취재원 비닉권’을 명시한 법률은 없다. 비닉권은 기자가 취재원 신원 등을 외부에 밝히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과거 언론기본법에 조항이 있었지만 법 폐지와 함께 사라졌다. 법률엔 없다곤 해도 취재원 보호는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자유의 기본 규범이다. 국내에서도 취재원 신원을 밝히지 않은 사례는 많다. 검찰의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 사건 수사 때가 비근한 예다. 당시 청와대가 해당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기자는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검찰이 신학림·김만배씨 ‘허위 인터뷰’ 의혹을 수사하면서 뉴스타파·JTBC 보도 경위를 확인한다고 한다. 그 경위엔 취재원 확인도 포함된다니, ‘설마’ 하던 조치들이 진행되는 현실이 섬뜩하다. 그만큼 ‘공익 제보-취재원 익명 보도-국민 알권리 보호’라는 언론자유의 중요한 축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워싱턴포스트가 기밀 문서를 폭로한 사건을 다룬 영화 <더 포스트>에서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은 말한다. “우리는 항상 옳을 수 없어요. 완벽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계속 쓰는 거죠.” 권력을 무섭게 하고 귀찮게 하는 언론의 감시·견제는 계속돼야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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