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시골잡지 ‘툭’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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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부터 3일까지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대한민국 독서대전'에 부스를 하나 제공받아 책 판매자로 참여했다.
기온이 한없이 치솟은 불볕더위 속, 그늘 한 점 없는 광장에서 판매해야 할 책들을 늘어놓는 일만으로도 온몸은 땀에 범벅이 되었다.
괴산에서 일산까지 가서 독서대전에 참여한 이유는 하나다.
글을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이들인 만큼 이렇게 잊혀져가는 지역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해보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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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백창화 |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9월1일부터 3일까지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대한민국 독서대전’에 부스를 하나 제공받아 책 판매자로 참여했다. 기온이 한없이 치솟은 불볕더위 속, 그늘 한 점 없는 광장에서 판매해야 할 책들을 늘어놓는 일만으로도 온몸은 땀에 범벅이 되었다. 얼굴은 벌겋게 타올랐고 일사병 걸린 사람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지만 사흘 동안 꼬박 광장을 지켰다.
괴산에서 일산까지 가서 독서대전에 참여한 이유는 하나다. 비영리 출판물인 괴산로컬잡지 ‘툭’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괴산에 귀촌하여 인생 후반전을 꾸린 이들 가운데 책으로 생업을 삼고 있는 출판쟁이들이 서로의 고단함이나 토로해볼까 해서 모인 게 3년 전이다. 한결같이 도시에선 미처 보이지 않았던 지역의 아름다움이 보였다고 했고, 자꾸만 단절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글을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이들인 만큼 이렇게 잊혀져가는 지역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해서 인구 3만7천의 농촌 마을에, 지자체의 지원 한 푼 없이 십시일반 민간의 노력으로 로컬잡지가 만들어졌다.
책 속에서 아가들은 새로이 태어나고, 소녀들은 까르르 웃고, 청년들은 사랑을 꽃피운다. 책 속에는 새벽을 깨우는 농부의 굵은 땀방울이 있고 열일곱에 꽃가마 타고 시집 와 평생 산골을 떠나본 적 없는 할머니의 고된 살림이 있다. 도시인들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고군분투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의 삶이 있다. 책 속에는 ‘지방 소멸’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지지 않는 소중한 역사가 있다.
최근 일 년 동안 괴산에서만 나는 네 번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모두 괴산으로 이주해 이곳에서 만나 연애하고 결혼에 이른 청년들의 청첩이다. 결혼식장은 내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괴산의 청년들로 가득했다. 농촌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들이 몇 달 동안 고심을 거듭하며 직접 만든 축가를 불러주었다.
“부디부디 잘 살아다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고달픔도 끝이 난다, 금슬 좋게 행복하게 살아라. 밤에도 좋고 낮에도 좋아, 그것이 바로 정답이여.”
흰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입술연지를 바른 할머니 중창단이 마음을 실어 축하의 노래를 불러 주었던 이날의 결혼식은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웠나. 마을 어르신들의 축복 아래 청년들은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도시와 다르지 않은 숱한 고민들 속에 육아를 해나간다. ‘지역 소멸’이라는 무정한 단어는 결코 이렇게 계속되는 지역의 삶을 담지 못한다. 지역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로컬 미디어가 필요한 이유다.
힘든 여름이었고, 편집장을 맡은 이는 괴산댐 물이 넘치는 수해로 편집 중이던 노트북을 들고 대피해야 했고, 사진관 바닥에 물이 들어와 잡지에 수록될 사진과 자료들이 유실되기도 했다. 책이 나온 후에는 창고도 없이 시골 책방에 쌓아둔 천오백부를 겨울이 오기 전에 모두 소진해야 하는 현실이 남았다. 책을 팔아야 지역에서 책문화축제도 열고, 다음 해에 또 잡지를 출간할 수 있다.
석양의 아름다움보다 광장의 뜨거움이 더욱 강렬했던 일산 호수공원에서의 3박4일 출장을 마치고 괴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휘청이는 그림자가 질문 하나를 던진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다행히도 답안지를 적을 힘은 남아있어 마음은 저절로 답을 써내려간다. ‘낭만 때문에’라고. 막막한 현실을 이겨내는 힘은 때로 ‘낭만’이라는 이름의 비현실로부터 온다. 잡지를 펴내며 첫 장에 썼듯이 시골 생활에서 느끼는 우리들의 낭만이란 작고 평범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세 계절을 거치며 우리들의 낭만을 듬뿍 담아낸 시골 잡지가 또다른 누군가의 낭만으로 자리하길 바라며 오늘도 작은 책방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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