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누가 귀신 잡는 해병의 명예를 더럽히는가
조사 문건 하나로 인해 국방부장관이 교체되고 대통령 탄핵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호우 때 실종자 수색 지원에 나섰다가 순직한 고(故) 채 모 상병 사고 조사와 관련해 문책 범위와 조사기록의 경찰 이첩 여부를 놓고 '외압'이냐 '항명'이냐며, 국방부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간 법정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본말이 전도된 부질없고 과한 일이다.
대단히 안타깝지만 아무리 대비를 잘 한다고 해도 불운이 겹치면 사고가 일어난다. 수색할 때 예상외로 많은 비가 내렸고 하천에 물이 불어났다. 마침 움푹 파인 하천 바닥을 밟아 실족을 하게 된 것이다. 해병대 1사단은 처음에 입수를 전제하지 않고 하천변 수색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 상황에 따라 입수가 필요하자 대대장의 입수 지시가 내려졌고 무릎 깊이까지만 허용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단장 등 지휘관들은 매뉴얼대로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건 조사를 맡은 해병대수사단은 사단장과 여단장 등을 포함해 8명(나중에 국방부 조사본부 재조사로 현장 지휘를 한 대대장 2명에게만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하고 경찰에 이첩한다는 내용으로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해 서명을 받았다. 군사법원법에 의해 군내 사망사고의 수사는 민간 경찰이 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는 수사가 아니라 어찌 보면 참고용 초동조사일 뿐이다.
문제는 이후 불거졌다. 이종섭 국방부장관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을 통해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조사기록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했는데도, 박 단장이 이를 어기고 이첩한 것이다. 명백한 항명이다. 박 대령은 즉시 보직해임되고 군 검찰은 그를 항명 혐의로 입건했다. 국방부장관 승인과 이첩 보류 시까지 약 하루 동안 해병대 조사 결과에 대한 리뷰가 있었던 모양이다.
대통령실에도 보고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불운한 사고에 대해 사단장까지 중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어떻게 군을 지휘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의 질타가 국방부장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문제는 더 악화됐다. 박 대령이 조사 외압설을 제기하며 언론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박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이 과실치사는 과하다며 누구누구를 빼라는 요구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송에 나와 수사보안상 밝힐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유가족에게 조사결과를 설명했다고 했다. 상급자의 승인을 받지도 않은 중간 조사결과를 유가족이라고 해서 설명 받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해병대수사단의 조사는 임의적인 것이고 경찰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게 돼 있다.
방송 인터뷰에서 앵커와 박 대령 모두 이첩 보류 지시를 항명한 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회피했다. 박 대령은 지시를 어기고 이첩한 것을 합리화하려고만 했다. 박 대령은 "이첩 보류 지시가 있고 난 후에도 해병대에서는 대책 회의가 계속 이어졌다"며 "장관의 지시가 명백한 것이라면 왜 그런 회의가 필요했냐"는 말을 한다. 대단히 위험한 아전인수 해석이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인의 말이 아니다. 그가 한 조사는 정식 수사가 아니다. 조사는 독립적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경찰로 이첩할 때는 군의 방침이 개입할 수 있다. 군은 동일체로서 민간이 아니다.
꽃다운 장병의 희생은 어떤 말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불운한 사고에 대해 과한 처벌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 박 대령이 소영웅주의에 젖어 너무 나간 게 아닌가 한다. 그가 일으킨 소란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은 전가의 보도인 '외압설'을 제기하며 국방장관 탄핵과 윤 대통령 탄핵까지 입에 올리고 있다. 이런 경우 으레 하는 수법으로 특검추진도 빼놓지 않고 있다.
세월호가 또 환기된다. 세월호 사고 조사 및 수사는 아홉 차례나 이뤄졌다. 특검수사 등 정말 '세월이 닳을 정도로' 했지만, 불법 선체개조와 불법 과적이 급류를 만나 불행하게 좌초 침몰한 것 외에 드러난 게 없다. 그런데도 온갖 음모론이 난무했다. 지금도 상당수 국민들이 세월호의 진상규명이 미흡하다고 여긴다고 한다. 이런 본말전도 일로 국가 에너지를 언제까지 낭비할 텐가. '이게 나라냐?'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박 대령에게도 묻는다. 누가 진정 귀신 잡는 해병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가.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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