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육사에 홍범도 흉상 등 20일 만에 전광석화처럼 설치 이유는?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육사 모체 친일파 우글 군사영어학교 잘못” 文에 건의
충무관 내 각종 호국활동상 철거…6인 흉상 중심 대체
육사 “밴플리트, 심일, 강재구, 안중근 4명 외 동상·흉상 추가 설치 신중…文 정부 때 변경”
2018년 3월1일 육군사관학교(육사)에 홍범도 장군 등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20여일 만에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흉상 설치 등은 육사 내부에서 정상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당시 청와대 지시로 졸속으로 추진되는 바람에 공청회를 거치지 않은 것은 물론 내부 회의·논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육사의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 독립영웅 흉상 설치’ 논의가 이토록 졸속으로 이뤄졌을까. 전직 육사 교장 등 육사 내부에서는 그간 정치적 중립을 지켜온 육사에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친일·반일 이분법 논리’를 적용, 육사에 ‘친일 프레임’ 씌우기를 시도한 것을, 졸속 추진 배경으로 지목하고 있다.
◇육사 원조인 군사영어학교에 ‘친일 프레임’ 씌우기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8월14일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 겸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상임대표는 당시 문 대통령을 만나 “육사 모체를 친일파 우글거린 군사영어학교로 하는 건 잘못”으로, 자존심 문제“라며 ”국군의 날도 유엔군이 38선을 넘은 10월1일이 아닌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이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같은 사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그로부터 2주 뒤인 2017년 8월 국방업무보고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도 육사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시한다. 문 정부는 국방백서에 ‘북한=주적’ 개념을 삭제하는가 하면, 대적관·국가관 정립의 핵심 과목이었던 ‘6·25전쟁사’‘북한학’‘전쟁과 전략’등 3개 한국전쟁사 과목을 공통필수에서 전공선택 과목으로 변경한다. 육사 아파트 외벽에 ‘육사’ 마크를 지우는 등 ‘육사 개조운동’을 본격화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육사 내 충분한 의견수렴과 공감대 형성이나 관련 규정에 의한 절차 준수 없이 육사 흉상 이전 이 청와대 지시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고 밝혔다 .
◇文 정부 靑 지시로 충무관 내 기존의 호국 활동실도 밀려나
국방부와 육사에 따르면 2018년 1월 당시 학교장인 김완태 교장은 주요관계자가 모인 회의에서 3월6일로 예정된 육사 74기 졸업 및 임관식 행사 준비에 들어갔다. 청와대 지시로 10년 만에 대통령이 임석하는 2018년 육사 졸업 및 임관식 주제는 독립군ㆍ광복군으로 정해졌으며 그 일환으로 독립군ㆍ광복군 흉상 설치 지시가 하달됐다.
육사 총동창회 관계자는 ”이로 인해 흉상이 현관 중앙에 설치된 육사 충무관 실내에 과거부터 설치돼 있던 각종 호국활동상에 대한 내용을 급하게 바꾸어 흉상 관련 6인 중심으로 역사교육 공간을 조성했다“며 ”대상인물도 최초 5인을 선정ㆍ제작하던 중 독립군ㆍ광복군과 관련 없는 박승환 참령(대한제국 군인)을 추가하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충무관 내부에 흉상을 설치하는 등 여러 난맥상을 여과 없이 보여줘 오늘날 흉상 이전 관련 논쟁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육사 ”학교 설립 기여 밴플리트, 심일, 강재구, 안중근 4명 외 동상·흉상 설치 신중 입장이 문 정부때 변경“
이와관련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육사는 1946년 개교 이래 77년간 학교 설립 기여자인(밴플리트), 6·25전쟁 전사자(심일), 월남파병 순직자(강재구), 전 국민이 공감하는 군인정신의 표상(안중근) 등 4명을 제외하고는 동상 및 흉상 설치에 신중한 입장으로,어떠한 정치적 요소도 개입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때 이같은 원칙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육사는 혼란스러웠던 근ㆍ현대사 과정에서 역사적인 이견, 정쟁과 이념의 갈등이 될 수 있는 인물과 사건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했기 때문“ 이라며 ”개교 후 6·25전쟁 등에서 많은 공적을 세운 동문들을 기념하는 활동마저도 사회적 공감대나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진보냐 보수냐’ 같은 이분법적 정치적 접근을 우려해 이와 관련된 기념물 설립조차 신중했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고 덧붙였다.
예를들어 2013년, 12·12 당시 신군부 총탄에 쓰러진 고(故 )김오랑 중령 추모비 건립 추진이 논란이 됐을 당시 ”전투에 참가하거나 전투에 준하는 임무수행 간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희생정신으로 전 국민과 육사 동문들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건립된 추모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육사 내 의견 표명으로 추모비 건립은 성사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美 교관등 군사영어학교 모체 육사 약8만명 장교 양성…6·25전쟁 승리에 기여
육사는 해방 후 미 군정에 의해 1945년 12월 개교한 군사영어학교가 모체다. 이후 국군의 모체인 남조선국방경비대 및 제1연대가 창설됐고, 육사의 전신인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가 설립됐다.
미군 교관 등에 의해 양성된 국방경비대 등 한국군 병력은 간부·병사 포함해 6·25 직전인 1949년 6월 8개 사단 약 9만5000명으로, 북한의 6·25 남침에 맞선 핵심 전력으로 유엔군의 도움으로 북한의 침략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아쉽게도 한국광복군은 중국에서 한반도로 진군할 기회를 놓쳤으며, 고국으로 돌아올 시기가 늦춰졌다. 더구나 광복군은 일본군·만주군 출신 장교에 비해 숫자가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아 미 군정이 만든 남조선경비사관학교 등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북한의 인민군 공군을 비롯한 초기 내각에 만주군·일본군 출신 경력자들이 대한민국 내각·군에 비해 오히려 많았던 데서 입증된다. 한국광복군 주력인 제2지대장 출신으로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지낸 철기 이범석이 과거 일본군·만주군 출신 장교들을 설득해 국군 창군에 협조하도록 했고, 이들의 참여로 국군이 틀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윤명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을 비롯한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일제시대에 군인·공무원으로 기용된 무관·문관을 모두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린 것은, 36년간의 일제강점기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데다, 6·25전쟁 국난을 맞아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호국영웅까지 친일부역자로 매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몰역사적·시대착오적 시각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는 철기 이범석 장관 등 광복군 주역들이 만주군·일본군 출신 장교들을 용서하고 창군 주역으로 끌어들인 창군 정신과도 배치된다. 광복군·독립군 출신과 민주군·일본군 출신이 함께 손을 맞잡았기에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었다.
◇”육사 교육은 특정 시점 선열들 정신 계승에 한정짓지 말아야“
육사 관계자는 ” 육사의 교육과정은 우리 역사의 과거 특정시점 선열들의 정신만이 육사가 계승해야 할 것으로 한정 짓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육사는 삼국시대의 화랑정신, 고려의 상무정신, 조선 및 대한제국의 의병정신, 독립군ㆍ광복군의 독립정신 등 국가 안위를 위해 등장했던 모든 정신을 계승ㆍ내면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는 생도대 각 중대의 명칭, 교내 각종 건물의 명칭에서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육사의 뿌리는 독립군·광복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다른 육사 관계자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독립군ㆍ광복군 흉상은 설치 당시에도 이념과 역사적 관점에서 많은 이견이 있었다“며 ”흉상 설치 후 위치 등에 대해 여러 동문들과 학교 방문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 독립군·광복군 흉상 이전은 정쟁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는 육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당위성을 갖는 실천적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육사 교장을 지낸 예비역 소장은 ”만약 동상ㆍ흉상의 설치가 대상인물의 정신 계승 여부를 가리는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한다면 ‘모든 위인들의 동상ㆍ흉상이 육사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반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며 ”독립군ㆍ광복군 흉상 이전을 ‘그분들의 정신을 뿌리째 들어내 버리는 것’이라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육사 관계자는 ”실체가 있는 동상ㆍ흉상 건립만이 ‘국가보위에 헌신한 인물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육사는 이러한 모든 역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교육하는 취지에서 장기간의 논의와 숙고를 거쳐 흉상을 이전하고 국난극복역사 학습공간을 조성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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