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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매경춘추] 과학이 말하는 방사선

입력 : 
2023-09-17 17:28:28
수정 : 
2023-09-17 23: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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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의 일이다. 울산에 첫 직장을 잡은 나는 효도한답시고 부모님을 모시고 동해안에 있는 유명 온천을 찾아간 적이 있다. 당시 그곳은 '국내 유일의 라돈 탕'이었는데, 많은 이가 국내 최고의 온천으로 평가하는 온천이었다. '라돈이면 방사성 물질인데 자연 방사능이니 몸에 좋은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온천욕 후 왠지 몸이 거뜬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라돈 침대 사건 때문인지 요즈음 그 온천에서 '천연 라돈 탕'으로 마케팅하지는 않는 것 같다.

방사능에 대해서는 그 존재가 알려진 이후 여러 가지 오해와 억측이 있어 왔다. 처음에는 인체에 유해한지 전혀 모르고 신비한 현상으로 여겨졌다. 방사성 물질을 건강에 좋은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처음 방사선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뢴트겐의 조수는 X선에 자기를 비추어 뼈가 나타나는 걸 사람들에게 즐겨 보여주었다고 하는데, 결국 그 조수는 과도한 피폭으로 사망했다. 라듐을 발견한 퀴리 부인도 방사능에 과도하게 노출된 것이 원인이 돼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는 방사선의 폭풍 가운데 떠 있는 섬과 같다.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선 샤워를 맞고 있는데 다행히 지구의 자기장이 방사선을 굴절시켜 지구상의 생명체들에게는 그 효과가 미미하다. 지구의 표면을 이루는 암석에서도 방사선이 나온다.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 방사선 방출량이 많다. 하지만 암석에서 방출되는 자연방사선 피폭 때문에 건강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사능 피폭량은 임계치가 있어, 그 이하라면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방사능이 임계치 이하의 미량일 때에는 피폭량이 두세 배가 되어도 암에 걸릴 확률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방사능의 존재는 과학자에 의해 처음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눈에 직접 보이지 않고 느끼거나 만질 수도 없으니 당연하다. 따라서 방사능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철저히 과학의 영역이다. 방사능의 유해성을 논하는 것 역시 과학의 영역이다. 예컨대 소음은 사람이 직접 느낄 수 있으므로 인체에 유해한 기준을 정한다 해도 예민한 사람은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방사능은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유해성도 심리적 인자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주관적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스마트폰을 가능하게 하는 전자기파도 느낄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곳곳에 중계기가 있어 우리는 전자기파의 홍수 가운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 정도 노출은 건강에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된 논란을 보며 이웃 국가에 불안감을 안겨주는 일본이 얄미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있으니 그 수치를 신뢰해야 한다. 수산물 섭취를 불안해 하거나 소금을 사재기한다면, 방사능 피폭을 늘려주는 주말 등산이나 항공기 여행도 삼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방사능을 판별할 유일한 기준인 과학은 그렇게 말한다.

[이우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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