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민간 주도, 270만가구 공급' 포기했나
공급보다 '규제 일관' 민심 떠나
尹정부 '민간 주도' 강조해도
실행력 떨어져 집값 다시 불안
추석 前 세심한 공급대책 내야
"주택 정책 패러다임을 과감히 전환하겠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공급 대책인 '8·16 공급 대책'이 나올 때만 해도 기대감이 컸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집값이 급등하자 세금과 규제로 수요를 최대한 억제하는 주택 정책을 펼쳤다. 그래도 집값이 오르자 통계를 조작하는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 것으로 감사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집값 상승의 배경을 '가진 자들의 투기 심리'로 보다 보니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부동산 시장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자 대책도 꼬이고 결국 여론을 우려해 통계 조작까지 손을 댄 것이다.
주택은 소득 수준이나 가족 수에 상관없이 누구나 필요한 '필수재'라는 점을 간과했다. 세입자는 내 집을 갖고 싶고, 낡은 집에 살면 새집에 살고 싶다. 신규 택지를 마련하고 재건축을 통해 일정 수준의 새집을 공급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민간 주도로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윤 정부의 '8·16 공급 대책'은 방향이 옳았다. 당시 대책을 돌아보면 재건축 부담금을 낮추고 심의 절차를 간소화해 5년간 50만가구를 서울에 신규 공급하기로 했다. 민간 개발사업에 용적률과 세제 혜택을 공공개발 수준으로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와 함께 수도권과 주거 수요가 높은 지방에 15만가구의 신규 택지도 발굴하고, 청년·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50만가구의 '청년원가·역세권 첫집'을 공급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대책 발표 1년 만에 주택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올 들어 7월까지 전국 민간 주택 누적 착공 실적은 10만2299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민간뿐만 아니라 공공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사업 승인을 받아놓고 착공하지 못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분양 주택이 상반기에만 5만7000가구에 달한다. 이 중 1만 2000여 가구는 사업 승인을 받은 지 3년이 지났다고 한다.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도 국회에서 꽉 막혔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와 실거주 의무 폐지, 1기 신도시 특별법은 국회 소위를 통과하지 못해 언제 시행될지 가늠도 안 되고 있다.
올해도 10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주택 공급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쉽지 않을 듯하다.
특히 절반으로 줄어든 착공 실적은 2~3년 후 고스란히 입주 물량이 된다. 그때 입주 물량 부족으로 집값이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은 추측이 아니라 '팩트'다. 주택 정책을 재점검해 당초 계획대로 공급에 속도를 내고, 아파트 공급 급감에 대한 대안으로 오피스텔과 다세대 등 비아파트 공급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이 때문에 정부가 추석 연휴 이전에 발표 예정인 공급 대책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공공택지의 전매제한을 일시 완화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보다 활성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 미온책으로는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간 건설업체들은 공사비 상승으로 사업성이 떨어져 신규 수주를 자제하고 있다. 전세사기 여파로 서민들의 주요 주거 수단인 다세대·빌라 신축도 뚝 끊겼다. 오피스텔과 생활형숙박시설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 급증으로 또다시 주택 수요를 부추길 수 있는 대책은 조심스럽다. 철근누락 사태 이후 조직개편 논의가 진행 중인 LH가 공공주택 공급에 더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번 대책이 임기응변이 아닌 주택 공급 과정의 각 단계를 세심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문 정부의 집값 급등에 대한 정책 실패가 정권을 넘겨주게 된 주요 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집값 불안은 다른 어떤 경제적 상황보다 유권자들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권 후반기에 집값이 요동치면 민심도 떠나간다.
[서찬동 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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