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집담회 "이곳은 바닥없는 시장, 노조로 모여야"

김예리 기자 2023. 9. 1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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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담회]
작가노조준비위 주최…각기 분야 작가들 모여
"시장 쥐고 관행 만들어온 출판사·문단 권력"
"작가 단체 많지만 출판사와 대응하지 않아"
노조로 모여야 노동환경 바꿀 수 있다는 진단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20년이 돼가는데 원고료가 변하지 않는다. 그걸 또 어디 가서 논의할 누군가도 없다.”

“작가들의 상황은 점점 나빠지는데 출판사들은 계속 커지고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최저선'을 만드는 일.”

작가노조 준비위원회가 14일 저녁 서울 중구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장르는 달라도, 우리는 모두 집필노동자입니다' 집담회를 열었다. 시, 소설, SF소설, 르포, 인문사회, 번역 등 다른 장르 작가들은 집필노동의 '최저선'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희음(시), 이수경(소설), 황모과(SF소설), 은유(르포), 박권일(인문사회), 이유진(번역) 작가와 사회를 맡은 안명희 작가·편집자가 참가했다.

글 쓰는 노동 시장은 '최저선 없는 시장'이다. 소설을 쓰는 이수경 작가는 출판사와 마주하며 '집필노동자'라는 정체성을 회의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로 원고지(200자) 80매 분량 단편소설을 쓴다. 그걸 쓰려면 빠르면 한 달, 길면 석 달이 걸린다. 그런데 발표하고 받는 원고료는 적게는 40만 원, 아주 많게는 100만 원이다. 평균 두세 달 정도 걸린 일이 그 정도의 교환가치”라고 했다.

“'자연사박물관'(소설집)은 5쇄, 4000여 부 찍었다. 3년 간 뼈를 갈아서 내가 받은 수입은 500만 원이다. 작년 내내 정말 다른 것 하나 못하고 돌아다니며 취재하고, 자료 수집하고 틀어박혀 써서 올해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많이 팔려서 몇 달 만에 4000부가 나갔다. 그에 대한 인세는 600만 원이다. 1년 내내 일한 값이다.“

바닥 없는 집필노동 환경…작가가 낸 이윤 어디로 가나

르포를 쓰는 은유 작가는 “노조가 확실히 있어야 하는데 동료를 어디서 만나고 뭐부터 설계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껴왔다”고 했다.

“단행본 쓰고, 좋아하는 르포 일을 계속하면서 글 내는 지면이 달라졌다. 2005년부터 했고 지금이 2023년이니 20년이 돼가는데 원고료는 변하지 않고 있다. 한겨레와 경향에 칼럼을 기고하는데, 모두 20만 원 이하다. 칼럼 하나를 쓰기 위해서 일주일에서 열흘은 마음을 졸이고, 자료를 찾고 책을 읽고 머리를 싸매야 하는데, 낮은 봉급으로 일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든다. 그걸 또 어디 가서 논의할 사람이 없다.”

▲르포를 쓰는 은유 작가. 작가노조 준비위원회가 14일 저녁 서울 중구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장르는 달라도, 우리는 모두 집필노동자입니다' 집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바닥 없는 집필노동 환경은 문단권력, 등단 시스템과도 뗄 수 없다. 시인인 희음 작가는 “문단 내 계급 문제를 말하고 싶다”고 운을 뗐다. “초대를 받아 어느 자리에 갔는데, 내게 '저 분(작가) 인사 드려 A급이야' '저분은 B급이지만 알아두면 좋아' 라는 식으로 말씀하는 것이다. 당시에 뭣 모르고 인사했는데, 각성하게 된 뒤 그것이 얼마나 모두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지, 그리고 우리를 분열시키는지를 알게 됐다.”

작가들은 '계급'에 따라 문예지 청탁과 고료 지급 과정을 다르게 겪는다. 희음 작가는 “(같은 문예지도) 소위 A급 작가에겐 정확한 원고료와 지급 기간을 제시한다. 그조차 빼먹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게 아닌 경우 작가는 얼마를 받는지 물을 수도 없는 취약한 상황”이라며 “원고를 내고 몇 달이 지나도 고료를 받지 못할 때, '언제 주느냐'는 한 마디를 하기까지 낙인 찍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현 상황에선 작가가 혼자 출판사를 상대로 생계를 건 싸움을 하는 수밖에 없다. SF소설을 쓰는 황모과 작가는 “2020년 출판사와 처음 계약할 즈음 문체부에서 표준계약서가 나왔다는 얘길 들었다. 그런 게 올 줄 기대했는데, 전혀 다른 게 오더라”라고 했다. “처음엔 '내가 신입이라 그런가?' 했다. 이제 4년차 들어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출판사는 싸우는 사람만 표준계약서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준다.”

출판사 관행이 기준으로…이제 작가가 착취 대상

▲박권일 작가. 작가노조 준비위원회가 14일 저녁 서울 중구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장르는 달라도, 우리는 모두 집필노동자입니다' 집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박권일 작가는 글 쓰는 노동 시장은 '최상위 1%만 살아남는' 시장이라고 했다.

“젊었을 때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미드가 유행했다. 주인공 캐리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한 달에 한 편인가, 칼럼을 가끔 쓴다. 다른 일은 안 한다. 그런데 지미 츄(고가 구두 브랜드) 이런 구두를 막 사 신는다. 검색해보니 엄청난 가격이더라. 어떻게 그 원고료를 받는 게 가능하지? 미국 유명 잡지 원고료를 알아봤다. 노벨상급인 사람들은 칼럼 한 편에 수백만 원이다. 다만 미국이 웃긴 곳인 게, 허핑턴포스트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원고료를 안 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필자가 원고를 써 주거나 다른 데 쓴 원고를 가져와서 싣고, 대신 우린 너를 유명하게 해 주겠다는 거다. 남의 것을 무단 전재하다시피 하며 매체 파워를 쌓았고, (창립자) 아리아나 허핑턴은 나중에 이 매체를 엄청난 돈을 받고 판다.”

박 작가는 “최상위권 0.1%는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모으는 대신 나머지 99.9%는 정말 입에 피죽도 못 대는 정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그런 시장에서 우리가 적어도 글 쓰고 강연하는 만큼 최소한의 비용을 어떻게 보장받고, 사람답게 존중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부분이 여기 모여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안명희 편집자·작가는 출판사가 이 같은 시장 조건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우리에겐 출판사라는 명확한 교섭 대상이 있다. 시장을 쥐고 흔드는 건 출판사다. 작가로부터 원고가 들어와서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책을 만들고, 인쇄소를 거쳐 서점으로 간다. 전 과정을 포괄하는 건 출판사이며, 전 과정에서 이윤을 가장 많이 얻는 것도 출판사다.” 그는 “처음엔 출판 노동자들이 착취 대상이었다면 현재 가장 많은 이윤이 나오는 건 작가들”이라며 “출판사는 분명히 관행이라는 이름의 기준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따라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출판사가 그은 기준선은 점점 낮아지는 한편, 책임을 물을 구조는 점점 교묘해진다. “책을 내고서 4, 5쇄로 넘어가는 텀이 길어졌다. 인세 나올 때가 됐는데 하고 연락하니 '다음 쇄가 팔리면 드리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는 거다. 예전에 어린이책 작가들이 겪는 관행으로 알고 있었다. 시장 안에서도 더 나쁜 상황이 인문사회 분야까지 퍼진 것이다.” 그는 “웹툰과 웹소설에서 나타나는 (작가 처우) 문제점이 SF소설에서도 나타난다. 플랫폼이 완벽하게 들어오고, 중간업체가 안착했다”고 했다.

“작가단체 많지만, 노조가 아니면 안 된다”

참가자들은 집필노동의 최저 기준을 만드는 수단이 노조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저작권위원회에서 활동한다고 밝힌 A씨는 “작가단체들이 이런 불공정함에 대한 생각을 안했을까”라며 “결국 지위가 동등하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표준계약서도 몰라서 못 쓰지 않는다. 그런데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활동하며 느낀 건 작가단체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노조가 아닌 연대나 단체로는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과거 언론사 기자로 일하다가 현재 활동가와 작가 일을 병행하는 한 참가자는 “지금의 글쓰기 노동 시장은 '유명해지기 전까지 부당함을 감내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연말에 얼룩소가 생기며 글값 논쟁이 있었다. 나도 청탁을 받았다. 여러 비판을 받음에도 돈을 준다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며 “작가노조가 생긴다면 기대하는 점은 이름 없는 작가도 적은 돈이라도 받고 쓸 수 있는 환경이 생기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2016년부터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운동을 한 오빛나리 작가는 작가가 '흩어져 있는 직종'이라는 데 의문을 제기했다. “다들 작가들이 고립돼 있다는데 그런 것 치곤 작가단체가 너무 많지 않나? 상도 되게 많고 지역별로도 문인 모임이 꼭 있다. 지역 어르신들이다. 조직들은 있는데 탈정치화돼 있다”며 “2016년 문단 미투 당시 노조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필요성을 느꼈지만 협상력이 있는 작가도 아니고, (모임이) 정치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고 했다.

▲소희 작가.작가노조 준비위원회가 14일 저녁 서울 중구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장르는 달라도, 우리는 모두 집필노동자입니다' 집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안 편집자는 노조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이 규모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웹툰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자지회가 있듯, '조합원 수가 몇 명이 되면 힘을 발현할 수 있어'가 아니라, 노조로 발언할 때 사회적 주목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예술노동자)는 불안정 노동자로 많이 표현되는데, 기업 내 노동은 사실상 거의 없어지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조직화 사례를 보면 '뭉쳐서 발언하니 사회적 주목도가 생기더라'라고 말한다. 작가도 노조라는 이름으로 모일 때 발언력을 가지고, 협상력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 다양한 예인들이 노조로 모여 사용자를 불러내 교섭하고 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영화비디오법에 표준 보수를 명시해, 노·사·정이 모여 기준이 되는 보수를 정한다. 방송연기자노동조합은 조직률이 60%로, 파업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최저 출연료 산정을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플랫폼과 교섭하기 위해 '진짜 사장'이란 화두가 떠오르고 있다.

노조 과제는 파업권 문제다. 현행 예술인권리보장법이 규정한 '예술인조합'은 노동3권 가운데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정의 확대가 예술노동자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다. 안 편집자는 “노동법상 사용자단체 정의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와중”이라고 설명했다.

소희 작가는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그림노동자들의 파업을 언급했다. “2003~2004년에 인상적인 걸 봤다. 프랑스 몽마르뜨 공원에 있는 그림을 그리는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한 것이다. 앞치마 입고 거기에 연필 꽂은 노동자 사진이었다. 몽마르뜨에서 1~2시간 일하고 정부로부터 생활비 지원을 받아 예술 활동을 하는데, 그 급여를 삭감하니 총파업을 하러 나온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너희들 그림 안 그리면 그만이지' 할 수 있지만, 예술노동자가 저렇게 싸울 수 있구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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