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등 3개국, ‘우크라산 곡물 수입’ 관련 EU 결정에 반기···EU 분열상 노출?

선명수 기자 2023. 9. 17. 16: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 전쟁 후 주변국 육로에 수출 의존
동유럽 주변국, 자국 곡물시장 타격에 반발
EU ‘우크라산 곡물 수입 금지령’ 해제에도
자국 농업 보호 위해 수입 금지 조치 연장
지난 8월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 지역에서 밀 수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동유럽 5개국의 곡물시장 보호를 위해 적용했던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그러나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3개국은 자국 농민 보호를 위해 자체적으로 수입 금지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EU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로이터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EU는 16일(현지시간)부터 우크라이산 곡물에 대한 동유럽 5개국의 직접 수입 금지령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부터 불가리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 5개 회원국에 이 같은 조치를 적용한 지 4개월 만이다.

세계 최대 곡물 생산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 이후 주변국에 곡물 수출 운송을 의존해 왔다. EU는 러시아의 봉쇄로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길이 막히자, 내륙 운송을 통한 수출을 지원했다.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동유럽 EU 회원국의 육로인 이른바 ‘EU 연대회랑(Solidarity Lanes)’을 통해 아프리카와 중동으로 수출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당초 계획과 달리 운송 과정에서 값싼 우크라이산 곡물이 동유럽 국가들에 유입되며 이들 국가들의 국내 곡물가격이 폭락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에 EU는 지난 5월 이들 5개국이 직접 수입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허용했다. 동유럽 국가들이 자국 농업계 보호를 위해 개별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비해 EU 차원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해당 조치 시행 후 5개국의 시장 왜곡 현상이 사라졌다며 한시적으로 유지했던 수입 금지령을 연장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EU의 진정한 통합과 신뢰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EU 결정에도 폴란드와 헝가리, 슬로바키아는 자체적으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을 계속 금지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EU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입 금지 조치를 연장할 것이며, 이는 폴란드 농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도 “아프리카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중앙유럽 시장에 넘쳐나고 있는데도 EU 관료들은 농민들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면서 “문제를 우리 손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슬로바키아 정부도 국내 시장 보호를 위해 수입 금지 조치를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불가리아는 EU 결정에 따라 수입 금지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루마니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대한 유럽 차원의 대책이 없다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우크라이나가 수출 급증에 대한 대책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다만 루마니아 정부 역시 자국 농민들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60% 이상이 다뉴브강을 통해 루마니아 영토를 통과하고 있으며, 농민들은 금지 조치 연장을 요구해 왔다.

폴란드 등 3개국이 자체적인 규제 조치에 나섰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국가가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운송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원자재 중개업체 마렉스의 수석 농업분석가인 테리 라일리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곡물이 최종 종착지에 제대로 운송됐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한, 3개국의 조치가 우크라이나의 수출 능력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흑해 수출 차질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3개국의 이번 결정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EU 회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싸고 점차 심화되고 있는 ‘EU 내 분열상’을 드러낸다고 로이터통신은 평가했다. CNN도 “3개국이 EU의 결정을 무시하고 수입 금지를 연장한 것은 EU 지도부의 분노와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각국에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에 대한 일방적인 조치를 자제하고 EU의 새로운 합의에 협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3개국의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해 “그들이 EU의 규칙을 위반하는 경우 우크라이나는 문명화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