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역대 최장 외국 체류…우주·군사 행보에 집중
北은 무기 제공, 러시아는 첨단기술 지원…군사협력 속도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대 최장 외국 방문으로 기록될 이번 러시아 방문 일정은 우주 및 군사 분야 행보에 집중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 13일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고, 이후에도 전투기를 생산하는 '유리 가가린' 공장을 비롯해 크네비치 군 비행장, 태평양함대 기지 등 해·공군 부대를 방문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를 계기로 북러 군사협력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북한은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탄약과 미사일 등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러시아는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확보 및 해·공군 현대화를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4년 5개월 만에 북러 정상회담…군사 협력 강화 확인
김 위원장이 탑승한 전용 열차는 지난 10일 오후 평양에서 출발해 12일 새벽 러시아 하산역에 도착했다.
당시만 해도 10∼13일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블라디보스토크가 북러 정상회담 장소로 지목됐다. 푸틴 대통령도 12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탑승한 전용열차는 우스리스크역에서 남쪽인 블라디보스토크가 아닌 북쪽인 하바롭스크주로 향했다.
13일 새벽 하바롭스크역을 통과한 김정은 전용열차는 북동쪽으로 향했고, 당일 오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4년 5개월 만에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군사 협력 강화 의지를 확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등 첨단 기술 발전을 돕겠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김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으로 서방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시작 전 '러시아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이 때문에 이곳에 왔다. 북한 지도자는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들은 우주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방명록에 "첫 우주정복자들을 낳은 로씨야(러시아)의 영광은 불멸할 것이다"라고 적은 뒤 푸틴 대통령과 함께 최신 로켓 '안가라' 조립·시험동과 '소유즈2' 우주로켓 발사 시설을 시찰하는 등 러시아의 우주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북러 정상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됐고 종료 후 기자회견도 없었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을 제공하고 러시아는 북한의 정찰위성 확보에 필요한 기술을 지원한다는 합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군사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와 첨단 군사 기술 지원을 희망하는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성사됐기 때문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대(對)러시아 무기 제공에 대해 "공식화시키지 않겠지만 그런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며 "정찰위성을 비롯해 러시아의 고난도 기술 지원과 북한의 포탄 등 무기 제공 우선적인 북러 군사 협력의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전투기 생산공장에 이어 해·공군 기지 방문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후에도 러시아의 극동 도시를 시찰하면서 전투기를 생산하는 '유리 가가린' 공장과 전략폭격기가 배치된 크네비치 군 비행장, 전략핵잠수함이 정박하는 태평양함대 기지 등을 방문했다.
그는 지난 15일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 있는 유리 가가린 항공기 공장을 방문해 러시아 주력 전투기와 민간 항공기 생산 공정을 살펴봤다.
유리 가가린 공장은 수호이(Su)-27, Su-30, Su-33 등 옛 소련제 전투기와 2000년대에 개발된 4.5세대 다목적 전투기 Su-35, 2020년 실전 배치된 첨단 5세대 다목적 전투기 Su-57 등과 함께 민간 항공기도 생산하는 곳이다.
김 위원장의 유라 가가린 공장 방문은 북한의 육해공 전력 중에서 가장 뒤떨어진 공군력 강화를 모색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는 16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크네비치 군 비행장을 방문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이곳에서 김 위원장에게 미그(Mig)-31 전투기에 장착된 극초음속 미사일인 Kh-47 킨잘 미사일 시스템을 선보였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장거리 전략 폭격기 3대도 가까이서 관찰했다.
그는 이어 전략핵잠수함과 각종 수상함 등 최신 장비를 갖춘 러시아 태평양함대 기지를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마셜 샤포시니코프 대잠호위함에 탑승해 이 함정의 해상작전능력과 주요 무장장비, 전투 성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종합지휘실과 조타실 등을 시찰했다.
최근 해군력 육성을 강조해온 김 위원장의 태평양함대 방문은 낙후한 북한 해군의 현대화를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러시아를 방문해 17일 오후 혹은 18일에 귀국 길에 오를 것으로 보여 최소 5박6일 동안 러시아에 머무는 셈이다. 역대 최장 외국 방문 기록이다.
2018년 이후 시작된 김 위원장의 7차례 외국 방문 기간을 보면 짧게는 1박2일 길어도 4박5일 현지 체류하는 데 그쳤다.
2018년 2, 3차 북중 정상회담 때 중국 현지 체류 기간이 각각 1박2일로 가장 짧았고, 2019년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베트남 체류 기간이 4박5일로 가장 길었다.
"한미일 vs 북중러 대결구도 고착화"
김 위원장의 이번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북러 군사 협력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러시아로서는 북한의 탄약을 확보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고립에서 탈피를 위한 든든한 우군을 획득했다"며 "북한으로서는 인공위성 기술 확보를 통해 자신의 정찰위성 개발의 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과 핵잠수함 설계 등 분야에서도 러시아와의 전방위적 기술 협력을 확대하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도 "냉전 시대에 소련은 북한에 재래식 무기 분야에선 지원했지만, 전략무기 분야에선 협력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김정은의 이번 방러를 계기로 러시아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정찰위성과 핵잠수함 개발 및 해군과 공군 현대화를 위해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실장은 "김정은의 이번 방러를 통해 북러 관계는 냉전 시대의 동맹을 넘어서는 전면적, 전략적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평가했다.
북러 군사 협력에 중국마저 가세하면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 교수는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를 계기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굳어지는 흐름"이라고 평가했다.
양 총장도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응한 북중러의 대응 구도가 강화됨으로써 종국적으로 신냉전 체제가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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