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자원'으로...SK 변화의 첫걸음 '울산ARC'가보니

울산=김도현 기자 2023. 9. 1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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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폐플라스틱 재활용 복합단지 울산ARC 현장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 /사진=김도현 기자


SK이노베이션 정유화학 복합단지 울산콤플렉스(울산CLX)에서는 석유제품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 제품을 안전하게 저장·운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압을 견디는 각종 탱크 시설을 잇는 파이프가 촘촘하게 짜여있을 뿐이다. 파이프 길이만 60만km. 지구에서 달까지 한 번 왕복하고도 달까지 한 번 더 달에 이르는 길이다. 하루에 정제하는 원유량만 스타벅스 톨사이즈 3억8000만잔에 해당하는 84만 배럴이다.

이처럼 지난 반세기 국내 석유 및 석유화학 제품 공급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이곳 울산CLX가 변화를 준비한다. SK지오센트릭이 세계 최초 재활용 복합공장 구축을 준비 중이다. 탄소감축과 플라스틱 쓰레기 해결에 나서며 울산CLX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겠다는 의지다. 머지않은 미래에 재활용 방법이 없어 매각·소각됐던 우리 주변의 쓰레기가 울산CLX에서 미래에너지 자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지난 13일 SK지오센트릭이 추진하는 세계 첫 폐플라스틱 재활용 복합단지 울산ARC(Advanced Recycling Cluster) 부지를 찾았다. 낮은 산을 깎아 조성하는 이곳은 1년 넘게 평탄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SK지오센트릭은 내달 착공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이곳 부지는 국제규격 축구장 22개 넓이와 맞먹는 21만5000㎡ 규모다. 총 1조8000억원이 투입된다. ARC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매년 500㎖ 생수병 213억개 분량의 폐플라스틱이 재활용된다.

SK지오센트릭은 울산ARC에서 '화학적 재활용'을 선보인다. 물리적 재활용은 투명 페트(PET)병 등 제한된 쓰레기만 잘게 쪼개는 방법으로만 재활용할 수 있어 반복적인 재활용이 어렵다.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의 오염도·색상과 상관없이 폐플라스틱 대부분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로 물리적 재활용의 한계를 극복한 기술로 평가된다. 울산ARC는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인 열분해,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해중합을 한 곳에서 구현하게 된다.

화학적재활용은 급증하는 쓰레기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다. SK지오센트릭이 지속가능성을 염두 해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는 이유다. 오는 2026년부터 수도권, 2030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생활 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된다. 앞으로 모든 생활폐기물은 재활용되거나 소각돼야 한다. 국제사회도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에 주목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바젤협약은 '폐플라스틱 기술지침서'를 채택해 화학적 재활용에 대한 가이드를 마련하는 등 이를 유효한 재활용 수단으로 인정한 바 있다.

축구장 22개 넓이와 맞먹는 21만5000㎡ 규모의 SK지오센트릭 울산ARC(Advanced Recycling Cluster) 부지 /사진=김도현 기자


SK지오센트릭은 열분해유 활용 확대를 위한 차별적인 기술(후처리)을 독자 개발 중이다. 열분해유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비닐, 라면봉지 등을 녹인 기름이다. 지금까지는 여러 부산물이 들어있어 품질이 다소 낮은 경유나 보일러 연료로만 활용할 수 있었다. 부산물을 빼 순도를 높이는 후처리를 거쳐야 석유화학공정에 원유 대신 투입할 수 있었지만, SK지오센트릭은 독자 개발한 후처리기술로 즉각적인 투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대전 유성구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에 실증설비(Scale-up pilot Plant)를 갖췄다. 선행연구를 거친 실증설비는 추후 울산ARC 열분해 공장과 함께 지어진다.

울산ARC에서는 이 열분해 후처리유 중 일부를 울산CLX 나프타분해설비에 투입한다. 이 설비는 원유에서 추출한 납사를 투입해 석유화학 제품을 만드는 설비다. 원유에서 추출한 납사를 대신해 쓰레기가 화학제품 원료로 쓰이는 '순환경제'가 완성되는 것으로, 일상에서 버린 쓰레기가 다시 화학제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SK지오센트릭 자체 연구에 따르면 플라스틱 쓰레기 1톤을 열분해유로 재활용할 경우 소각할 때보다 탄소 배출량을 최대 2.7톤가량 줄일 수 있다.

문제는 법적 근거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서는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해 만든 열분해유를 석유 정제 공정에 원료로 투입할 수 없게 돼 있다. 석유대체연료에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열분해유는 포함돼 있지 않다. 현재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SK지오센트릭의 열분해유 투입에 대한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승인하는 등 규제 정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현행 석유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상임위 심사를 앞뒀다. '석유에서 유래한 것을 재활용'했다면 석유 이외의 원료로 인정하고, 석유정제업자가 이 원료를 투입해 제품을 생산하도록 허가하는 내용이 골자다.

현장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는 "폐플라스틱이 자원이 되고 돈이 되는 시대가 오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면서 "SK지오센트릭은 선제적 협력망 구축을 통해 국내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 80~90%를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튿날 울산포럼 직후 기자들과 만난 최태원 SK 회장은 "SK그룹 계열사 전체가 울산에 추진하는 친환경 투자만 8조원에 이른다"며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한 플라스틱 100% 재생이 SK그룹의 목표며 SK지오센트릭의 울산ARC 등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김도현 기자 ok_k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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