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격기, 일본 왕복도 가능”…김정은, 美 보란듯 러 무기 시찰

러 방문 막바지에 전략무기 순례 지속
극초음속미사일 ‘킨잘’ 만져보며 관심
러 국방, 金에 전략폭격기 설명하면서
한미일 겨냥 “모스크바서 日왕복가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에서 첫 번째)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에서 첫 번째)이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 비행장을 시찰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전용 항공기의 전술적, 기술적 제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항공무장장비를 살펴봤다. [사진제공=러시아 국방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방문 막바지에 전략폭격기와 극초음속미사일 등 러시아측 전략무기를 시찰하며 북러 군사협력 퍼포먼스를 펼쳤다. 강도와 빈도를 더해가는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한미일 연합훈련을 염두에 둔 북러 양측의 시위성 행보로 풀이된다.

17일 북한 관영매체는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편으로 전날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 도착해 군비행장과 태평양함대 기지 등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북측은 관련 기사에서 이번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북러관계 발전에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러 양측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16일 블라디보스토크의 크네비치 군용비행장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함께 러시아 항공우주군의 주요 장비들을 살펴봤다.

스푸트니크통신 등 현지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투폴레프(Tu) 160·95MS·22M3 등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략폭격기들을 둘러봤다고 전했다. 이들 항공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핵추진잠수함과 더불어 러시아의 대표적인 핵무기 투발수단이다.

쇼이구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전략폭격기 중 하나에 대해 “모스크바에서 일본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측 국방수장이 유엔군사령부 후방기지 역할을 하는 미군기지가 위치한 일본을 잠재적 핵타격 대상으로 언급한 셈이다. 이는 주한·주일미군을 물론 강화되는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해 경고성 메시지를 내려는 북러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도 읽힌다.

러시아 항공우주군 소속 미그(MiG)-31 전투기에 탑재된 공대지 극초음속미사일 ‘킨잘’을 직접 만져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러시아 국방부 제공·AFP=연합뉴스]

이날 쇼이구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미그(MiG)-31 전투기에 탑재된 공대지 극초음속미사일 ‘킨잘(Kh-47M2)’도 선보였다.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은 킨잘을 직접 만져보며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북한도 한미 연합전력의 요격을 회피하기 위해 개발 중인 극초음속미사일의 원형을 직접 마주한 것이다.

이 같은 행동은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방문해 미국측 B-52H 전략폭격기의 핵무기 장착 부분을 직접 살펴봤던 모습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김 위원장은 태평양함대 기지에서는 마셜 샤포시니코프 호위함에 승선해 해당 함정의 해상작전능력과 주요 무장장비에 대한 설명을 돋고 지휘통제실과 조타실 등을 방문했다. 이 함정 1980년대 건조돼 태평양함대에 배치된 대잠수함 호위함으로 현대화 사업을 통해 500kt(킬로톤)급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첨단 미사일 체계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러 국방과 무기 거래 논의했을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함대를 방문해 마셜 샤포시니코프 호위함에 올라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측은 이날 김 위원장이 쇼이구 장관과 국제정세에 대한 입장을 공유하고 군사 분야에서의 전략·전술적 협조와 교류 강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양측은 이날에서 비공개 기조로 국제사회가 비난하는 무기 거래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논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북러정상회담과 김 위원장의 러시아 극동지역 무기순례가 양국 간 첨단 군사기술·무기체계 협력으로 이어질지를 두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를 계기로 러시아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정찰위성과 핵잠 개발 및 해군과 공군 현대화에 적극 협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반면 정부 고위당국자는 북러정상회담 다음 날인 1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포탄 공급 이외의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첨단군사기술 지원도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은 교육·과학 관련 일정을 마친 뒤 북러 국경지역의 하산역을 거쳐 평양으로 되돌아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