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폐플라스틱이 원유로… SK, 울산에 도시유전 만든다

연간 32만톤 폐플라스틱 처리 시설
열분해 등 화학적 재활용 기술 방점
최태원 “플라스틱 100% 재생 목표”

13일 울산 남구 SK이노베이션 정유화학 복합단지 ‘울산콤플렉스(CLX)’에서 차로 10분쯤을 달리자 ‘SK지오센트릭 울산 ARC(Advanced Recycling Cluster)’ 부지가 보였다. 현장에선 대형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오가면서 막판 터 닦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첫 삽을 뜨기 전이지만 대부분의 원료를 확보했고, 글로벌 고객사 선주문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울산 ARC는 SK이노베이션 화학사업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이 약 1조8000억원을 투입해 조성하는 세계 첫 플라스틱 재활용 복합단지다. 축구장 22개를 합친 크기의 울산 ARC에서 연간 처리할 수 있는 폐플라스틱은 총 32만톤(t)이다. 이는 500ml 생수병으로 따지면 약 213억개에 해당한다. SK지오센트릭은 여기서 처리한 폐플라스틱을 석유화학제품을 만드는 원유(열분해유) 등으로 재활용할 예정이다.

폐플라스틱을 다시 쓰는 방법은 크게 기계적(물리적), 화학적 재활용으로 나뉜다. 폐플라스틱을 단순 분쇄, 세척하는 기계적 재활용과 달리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을 분해해 나프타, 열분해유 등 원료를 회수하기 때문에 품질이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재활용 횟수에도 제한이 없어 관련 시설은 이른바 ‘도시 유전(油田)’으로도 불린다. 울산 ARC 기공식은 10월 말이나 11월 초, 상업 가동은 2025년 말로 예정됐다.

13일 울산 남구 미포국가산업단지 부곡용연지구에서 SK지오센트릭이 조성 중인 울산ARC 부지. /SK지오센트릭 제공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울산 ARC의 핵심은 화학적 재활용 3대 기술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는 데 있다”며 “열분해,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해중합을 모두 적용한 복합 재활용단지는 ARC가 최초”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의 클러스터로 구축해 운영 설비나 시스템의 실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에서의 상징적인 역할이 기대된다”고 했다.

SK지오센트릭은 3대 기술 중에서도 특히 열분해에 공을 들이고 있다. 회사는 자체 개발한 후처리 기술을 통해 열분해로 얻은 열분해유의 품질과 활용도를 모두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후처리 공정을 거쳐 부산물을 제거한 열분해유는 석유화학제품 원료로 쓰일 수 있다. 기존 열분해유는 부산물이 많이 섞여 있어 저품질의 경유, 보일러 기름 이외 석유화학 공정에는 활용하기 어려웠다.

폐플라스틱을 화학적 재활용하는 것은 단순 소각과 비교해 탄소 저감 효과도 크다. 글로벌 화학기업 바스프(BASF)에 따르면 열분해 방식 폐플라스틱 재활용은 단순 소각 대비 최대 61.5% 탄소를 저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플라스틱 1톤을 열분해유로 재활용하면 소각 시보다 탄소 배출량을 최대 2.7톤 줄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SK지오센트릭 울산ARC의 열분해 및 후처리 공정 개요. /SK지오센트릭 제공

SK지오센트릭은 국내에서 연간 처리용량인 폐플라스틱 32만톤의 90% 정도는 이미 확보한 상태다. 폐플라스틱에 대한 수요 증가로 구체적인 공급처를 밝히진 않았다. 회사는 본격적인 사업에 나서기 전부터 열분해유 등 폐플라스틱 재활용 소재에 대한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아왔다. 현재까지 연간 처리량 15~20% 규모에 대한 계약이 끝났고, 추가 계약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 관련 규제를 도입하면서 시장 전망은 밝은 편이다.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포장재에 재활용 소재를 30% 이상 반드시 사용하도록 법제화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州)를 중심으로 2030년까지 재생 원료를 50% 이상 사용할 것을 의무화하는 추세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규모가 2050년 6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앞으로는 누가 깨끗한 쓰레기를 얼마나 싸게, 많이 확보하는지가 관건”이라며 “제품 판매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수익성을 위해서는 원료 단가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공장 지어질 때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원료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해외보다는 가급적 국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로 충당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SK그룹은 울산 ARC를 비롯한 친환경 부문 투자에 힘을 쏟는 상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4일 기자들과 만나 “기후변화로 탄소 감축은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플라스틱은 100% 재생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나가는 게 목표고, (울산 ARC로) 첫걸음을 떼는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그룹 내 계열사를 모두 합친 그린, 에너지 전환 관련 투자가 울산에만 8조원 규모로 예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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