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폐플라스틱으로 기름 만드는 '도시 유전'…울산ARC 내달 첫삽

김기훈 2023. 9. 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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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지오센트릭, 내달 울산CLX에 폐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 착공
3대 화학적 재활용 공정 도입…"연간 32만t 규모 폐플라스틱 처리"
울산 ARC 부지 (울산=연합뉴스) 13일 울산 남구 SK지오센트릭 울산ARC 부지에서 이 회사 구성원이 2025년 준공할 세계 첫 플라스틱 재활용 복합 공장인 울산ARC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2023.9.17 [SK이노베이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대한민국 에너지·석유화학 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는 울산 남구의 SK 울산 콤플렉스(CLX).

울산CLX 공장 입구에서 약 7분가량 버스를 타고 이동하자 21만5천㎡ 규모의 드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본래 있던 야산을 깎아 땅을 반반하게 고르는 정지(整地) 작업이 한창이었다.

덤프트럭과 굴착기가 쉴 새 없이 오가며 공장을 세울 터를 닦느라 분주했다.

지금은 공사 소음만이 가득한 공터지만, 이곳에는 SK이노베이션의 미래 먹거리인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담당할 대규모 생산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열분해·해중합·고순도 PP 추출 3대 공정 도입…물리적 재활용 한계 극복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3일 울산CLX에서 기자단 현장 방문 행사를 열고, 세계 최초 폐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인 '울산ARC(Advanced Recycling Cluster)' 추진 계획 등을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의 화학사업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다음 달 부지 정지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울산ARC를 착공할 예정이다.

2025년 말 준공이 목표며, 사업비는 1조8천억원이 투입된다.

울산ARC가 가동되면 매년 약 32만t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게 된다. 이는 500mL생수병 약 213억개에 해당하는 규모다.

울산 ARC 부지 (울산=연합뉴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3일 울산CLX에서 기자단 현장 방문 행사를 열고, 세계 최초 폐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인 울산ARC 추진 계획 등을 설명했다. 사진은 부지 정지 작업이 진행 중인 부지 모습. 2023.9.17 [SK이노베이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날 현장에서 만난 SK지오센트릭의 김기현 PM은 "울산ARC 프로젝트에는 총 3개 공정과 1개의 유틸리티 공급 시설이 들어오게 된다"며 "기존 물리적 방식으로는 재활용이 불가능했던 재질도 모두 재활용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플라스틱 재활용 방법은 크게 물리적(기계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으로 나뉜다.

물리적 재활용은 선별·세척·파쇄 등 물리적 가공을 통해 다른 제품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공정 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또 투명 페트(PET)병 등 제한된 재질만 재활용이 가능하며,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재활용이 어렵다.

반면 화학적 재활용을 활용하면 플라스틱의 오염도나 성상, 색상과 상관없이 대부분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다.

울산ARC에 적용되는 3개 화학적 재활용 공정은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고온으로 가열해 인공 원유를 만드는 열분해, 폐플라스틱을 용매에 녹여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순수한 폴리프로필렌(PP)을 뽑아내는 고순도 PP 추출, 플라스틱 제품을 분해해 원래의 기초 원료 물질로 되돌리는 해중합 기술이다.

3개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한 곳에서 구현하는 복합 재활용단지는 울산ARC가 최초라고 회사 측은 강조했다.

울산 ARC 개요도 [SK이노베이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자체 개발 후처리 기술로 '열분해' 확대…쓰레기가 화학제품으로 탄생

SK지오센트릭은 글로벌 선도기업과의 협력 체계도 구축했다.

3개 공정 중 고순도 PP 추출 공정은 미국의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와 합작으로, 해중합 공정은 캐나다의 루프와 합작으로 진행한다.

열분해 및 후처리 공정은 자체 개발한 기술이 적용된다고 SK지오센트릭은 강조했다.

특히 SK지오센트릭은 열분해유 활용 확대를 위해 후처리 기술을 독자 개발 중이다.

열분해유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비닐, 라면 봉지 등을 녹인 기름을 말한다.

한 마디로 '쓰레기로 만든 기름'인 셈이다.

열분해유에는 황화합물, 탄소 등이 섞여 있는데, 불순물을 제거하는 후처리 과정을 거치면 이를 석유화학 공정에 원유 대신 투입할 수 있다.

SK지오센트릭은 열분해유 후처리 기술을 독자 개발하고, 대전 유성구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에 실증설비도 갖췄다.

추후 울산ARC에서는 열분해 후처리유 중 일부를 울산CLX 나프타 분해 설비에 투입할 계획이다.

쓰레기에서 뽑아낸 기름이 화학제품 원료로 사용되는 '도시 유전(油田)'이 탄생하는 셈이다.

탄소감축 효과도 기대된다.

환경부 인증을 받은 탄소감축량 측정방법론에 따르면 플라스틱 쓰레기 1t을 열분해유로 재활용할 경우 소각할 때보다 탄소 배출량을 최대 2.7t가량 줄일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열분해 공정을 통해 생산된 열분해유 [SK이노베이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태원 "플라스틱 100% 재생 활용 목표…울산ARC가 첫걸음"

정부도 열분해유 도입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환경부는 2026년까지 폐플라스틱의 열분해 재활용 비중을 10%까지 늘릴 계획이다. 기존 목표(2030년)보다 4년을 앞당긴 것이다.

하지만 순환경제의 핵심인 열분해유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도 필요하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따르면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해 만든 열분해유를 석유 정제 공정에 원료로 투입할 수 없다.

석유대체연료에 열분해유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2021년 SK지오센트릭의 열분해유 투입에 대한 규제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승인하는 등 규제 정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규제 개선을 위한 석유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상임위 심사를 앞두고 있다.

열분해·후처리 공정 개요도 [SK이노베이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 전망도 밝다.

컨설팅 기업 매켄지는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 규모가 2050년 6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SK지오센트릭은 울산ARC를 통해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미래 먹거리를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최태원 SK회장은 지난 14일 울산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열린 '2023 울산포럼'에서 취재진과 만나 "생태계 보호를 위해 플라스틱은 앞으로 100% 재생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끌고 나가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또 울산ARC가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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