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대가들의 잇단 ‘미 주식 시장 급락’ 경고…“2008년 금융 위기 전과 비슷한 분위기”

2023. 9. 1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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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미국 주식 시장은 대통령 선거 직전 해 9월이면 약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예상을 뒤엎고 미 증시는 상승세가 지속되는 분위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올 들어서만 18% 상승했다. 나스닥지수는 올해 36% 정도 뛰었다. 경기 침체 우려에도 인플레이션이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며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 종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데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기술주가 상승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시장에는 오히려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월가의 투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미 증시가 위험한 흐름을 보일 수 있다”며 경계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얼마 전 “지난여름 예상을 뛰어넘는 상승 랠리 이후 투자자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을 랠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주식 시장 폭락’에 베팅한 ‘빅 쇼트’ 주인공

마이클 버리 시온자산운용 대표/사진=연합뉴스



월가의 투자 대가들도 ‘미 주식 시장 급락’에 대해 잇달아 경고를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2008년 금융 위기 직전 미 주식 시장의 붕괴를 예측하며 유명세를 탔던 마이클 버리 시온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다. 영화 ‘빅 쇼트’의 모델인 그는 포트폴리오의 90%를 ‘주식 시장 하락’에 베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CNN 등 외신은 버리 CEO가 소유한 시온자산운용이 올 2분기 S&P500지수와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하는 펀드에 각각 8억6600만 달러, 7억3900만 달러씩 총 16억5000만 달러 상당의 풋옵션을 매수했다고 밝혔다. 풋옵션은 옵션 매수자에게 기초 자산을 정해진 행사 가격에 만기일 이전 아무 때나 매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시장에서 하락장이 예상될 때 수익을 창출하는 파생 상품의 일종이다. 미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시장 가격보다 높은 ‘정해진 행사 가격’에 주식을 매도함으로써 차익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트폴리오의 약 90%를 미국 증시 붕괴에 ‘올인’한 셈이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해 1조원 이상 벌며 ‘헤지펀드의 전설’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도 하락에 베팅했다. 소로스펀드 역시 S&P500지수와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의 풋옵션 보유 비율을 높였다. 1분기 말 두 ETF 풋옵션 1억8800만 달러어치 상당을 소유하고 있었던 소로스펀드는 2분기 말 기준으로 이 보유 금액을 5억4900만 달러까지 약 3배 이상 늘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도 주식 폭락장을 대비하는 듯한 모습이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처분하고 현금 보유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가 지난 8월 발표한 2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올 2분기 매수한 주식보다 매도한 주식이 더 많았다. 모두 130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매각했지만 매입한 금액은 50억 달러 미만에 그쳤다. 이에 따라 벅셔해서웨이의 현금과 채권 보유 비율은 13% 증가해 약 1470억 달러까지 늘었다. 사상 최대 수준이다. 버핏 회장은 과거에도 폭락장에 대비해 현금 보유 비율을 높인 적이 여러 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그랬다. 

버핏 회장과 버리 CEO 등은 월가에서 상징성이 매우 큰 인물이다. 시장이 불안한 상승세를 이어 가는 와중에 ‘주식 시장 하락’에 베팅한 두 사람의 움직임에 월가의 투자 전문가들이 특히 주목하는 이유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 사진=연합뉴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워런 버핏과 마이클 버리, 두 사람 모두 주식 시장이 폭락하길 조용히 기다리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기요사키 작가는 “버리는 시장을 공매도하고 있고 버핏은 현금을 쌓아 두고 있다”며 “나는 이 사람들이 시장이 붕괴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현재 많은 돈이 비축돼 있다”고 덧붙였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 고문을 지낸 경제학자인 스티브 행크 존스홉킨스대 교수도 “마이클 버리와 워런 버핏이 모두 향후 미국 주가가 하락하는 데 베팅하고 있다”며 이 두 사람의 투자 전략에 대해 ‘괜찮은 움직임(good move)’이라고 진단했다. 지금과 같은 시장 상황에서 월가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경고다.


과열된 주식 시장, 어게인 2008년?

사실 버리 CEO가 올 들어 ‘주식 시장 붕괴’를 경고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1월 말 ‘팔아라(sell)’는 트윗을 남겼던 적이 있다. 1월 한 달여 만에 나스닥지수가 10.7% 상승하는 등 거의 20년 만에 최고의 상승세로 한 해를 시작하던 때였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주식 시장에 대한 경고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미 증시는 뜨거웠고 버리 CEO는 두 달여 만인 3월 ‘내가 팔라고 말했던 것은 틀렸다’는 트윗을 다시 남겼다. 그럼에도 현재 그의 투자 전략은 “주식 시장이 과열돼 있다는 신호가 분명한 만큼 언젠가는 결국 주식 시장 폭락이 올 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해 짜여지고 있다.  

미 지방 은행 위기의 여파와 국제 신용 평가사 피치의 미국 신용 등급 강등, 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 또한 그가 주식 시장 폭락을 예견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시온자산운용은 최근 퍼스트리퍼블릭은행과 웨스턴얼라이언스 등 미국 지역 은행과 알리바바·징둥닷컴 등 중국 주식도 일부 처분했다. 

버핏 회장은 지난 4월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열린 벅셔해서웨이 주주 총회에서 “미국 경제의 골디락스가 끝나가고 있다”며 “폭넓은 경기 하강 때문에 벅셔해서웨이 사업체 대부분의 올해 실적이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만간 미 증시 거품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다.

미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8월 2일 ‘버핏지수’가 170%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버핏지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식 시장 시가 총액 비율을 나타낸 것으로, 그 나라의 경제 생산 능력 대비 주식 가격 정도를 나타낸다. 버핏 회장이 2001년 경제 전문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특정 시점의 밸류에이션을 가장 잘 측정할 수 있는 최고의 척도”라고 평가하며 ‘버핏지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통 버핏지수가 70~80%면 증시가 저평가됐다고 평가하는 반면 100%를 넘어서면 증시가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2000년 닷컴 버블 당시 버핏지수는 150% 정도였고 2008년 금융 위기 직전에도 137%까지 올랐었다.

다만 버핏 회장이 현금성 자산 대부분을 장기채보다 단기채 중심으로 사들이고 있는 데다 주택 시장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버핏 회장은 D.R. 호튼과 레나 등 주택 건설 업체들의 주식을 매입했는데 신규 주택 경기는 미국 경기선행지수의 구성 요소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미 경제를 낙관하고 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미국 헤지펀드 운용사인 유니버사인베스트먼트 설립자이자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마크 스피츠나겔은 올해 초 “인류 역사상 최악의 부채 버블로 미국 증시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유니버사인베스트먼트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 1분기 ‘블랙스완 펀드’로 4144%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주목받은 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 Fed가 기준금리를 제로(0)로 낮추고 채권을 과도하게 매입하면서 부채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고 결국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스피츠나겔 CIO는 “시장이 큰 위험을 간과하며 현재 주가가 과대 평가돼 있다”며 “전 세계 국가의 부채 급증으로 역사적인 대공황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로젠버그리서치 설립자인 경제학자 데이비드 로젠버그도 지난 7월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최근의 랠리는 1929년 대공황,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과 비슷하다”며 “시장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를 보냈다. 실제 1987년 1월 다우지수는 13거래일 연속 오르는 등 증시가 약 28% 급등했지만 10월 19일 블랙 먼데이 하루 사이 22% 폭락했다. 그는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면서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이 흔들릴 수 있고 이로 인해 기업들의 실적이 침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흔 객원기자 luna.jh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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