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덮칠 때 호화생활…모로코 국민 눈총받는 세계 5위 부자왕[글로벌스트롱맨]

박종화 2023. 9. 1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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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발생 반나절 지나서 등장, 구조작업 지연돼
핵심기업 지배하며 10조원 자산, 즉위초 개혁 군주 평가
최근 칩거·외유 늘어…격투가 출신 '문고리 권력' 등장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지난 8일 밤 11시(현지시간) 모로코 남서부에 리히터 규모 7.4의 강진이 일어났다. 모로코가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력한 지진의 발생으로 그 피해는 컸다.

17일 현재까지 지진으로 약 3000명이 숨지고 6000명 가까이 다쳤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이번 지진으로 모로코의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2%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이 지진 피해자를 위해 헌혈하고 있다.(사진=AFP)

지진 12시간 만에 모습 드러낸 국왕

지진이 모로코에 덮쳤을 때 국가원수인 모하메드 6세 국왕은 나라 안에 없었다. 당시 그는 프랑스 파리 에펠탑 근처 1600㎡(옛 484평) 규모 대저택에 머물고 있었다.

모하메드 6세는 지진이 일어난지 12시간 후에야 모로코에 모습을 드러냈다. 귀국 이후 그는 부상자를 위문하고 그들을 위해 헌혈함은 물론 또한 지진 복구를 위해 10억디르함(약 13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모하메드 6세가 모로코에 도착할 때까지 재난 대응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 총리와 왕자가 있었지만 총리가 국왕보다 앞장서서 행동할 수 없다는 모로코의 정치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모로코에서 인권운동가로 일하는 푸아드 압델무니는 “국왕의 눈 밖에 날까 봐 사람들이 국왕이 나타날 때까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그간 모하메드 6세에 비판적인 글을 써온 모로코 언론인 오마르 브룩시는 “평범한 모로코 사람들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프랑스 주간지 르 익스프레스에 말했다. 국민들이 죽음의 공포에 떨 동안 왕은 파리에서 호화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전 세계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모하메드 6세가 지진 당시 머물렀던 파리의 주택은 2020년 매입 당시 가격이 최소 8000만유로(약 1100억원)으로 알려졌다.

1999년 즉위 당시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사진=AFP)


◇즉위 초엔 개혁 이끌며 ‘공포정치’ 아버지와 차별화


모하메드 6세가 전 세계적인 부자라는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있었다. 영국 잡지 테틀러는 2019년 모하메드 6세가 전 세계 군주 중 다섯 번째로 부자라고 소개하면서 그의 순자산을 82억달러(약 10조원)로 평가했다. 석유부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 두바이 군주(40억달러·약 5조원)보다도 두 배 이상 많다. 모하메드 6세는 은행과 광물, 에너지 등 모로코 핵심 기업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씀씀이도 커서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모로코를 찾았을 때는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등 10만달러(1억3000만원)에 이르는 선물을 한아름 안겨줬다. 2020년엔 모하메드 6세의 궁정에서 시계 36개를 훔친 청소부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그가 훔친 시계 중 가장 저렴한 게 1만 8000유로(약 2400만원)였다.

모하메드 6세의 씀씀이가 크게 논란이 되지 않은 건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왕가의 권위는 물론 즉위 후 개혁 정치에서 얻은 성과 덕이 크다. 1999년 즉위한 그는 밀경찰과 고문을 이용한 공포정치를 펴왔던 아버지 하산 6세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모하메드 6세는 ‘가난한 이들의 왕’을 자처하며 즉위 후 대규모 인프라 개발을 추진하고 여성 인권을 개선하는 등 개혁 정책을 폈다. 2011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 ‘아랍의 봄’이란 민주화 운동 바람이 불 때도 총리와 의회, 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새 헌법을 마련해 정세를 안정시켰다. 젊은 시절 유럽공동체(EC)에서 인턴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왕의 자유주의적 성향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야스미나 아부조후르 프린스턴대 연구원은 지난 2021년 브루킹스연구소 보고서에서 “지난 20년 동안 모하메드 6세는 긍정적인 사회·정치개혁은 물론 엄청난 외교정책과 인프라 변화를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아부 아자이타르와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사진=아부 아자이타르 인스타그램)


◇정치 흥미 잃은 왕, 모로코 정치 리스크로


최근 들어 모하메드 6세는 정치에 흥미를 잃고 궁정이나 외국에 머무는 일이 늘고 있다. 나라를 대표해 참석해야 할 외교행사에도 불참하기 일쑤다. 특히 격투기 선수 출신 아부 아자이타르가 왕의 ‘문고리 권력’으로 부상했다. 명목상 그는 모하메드 6세의 개인 트레이너지만 왕과 함께 외국을 여행하는 건 물론 관료들이 왕을 만나는 것까지 통제하고 있다.

모로코 온라인 매체 헤스프레스는 아자이타르를 ‘시한폭탄’이라고 비판했다. 모로코 국내 언론이 왕의 측근을 비판한 이례적인 상황을 두고 스페인 엘카노왕립연구소의 하이잠 아미라-페르난데스 수석 연구원은 “권력 엘리트들이 현 시국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설명했다. 니컬러서 펠험 이코노미스트 중동 특파원은 “모하메드 6세는 왕이라는 직업을 싫어하면서도 특권은 점점 좋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번 지진 대응에서도 볼 수 있듯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지닌 국왕이 정치에 뜻을 잃으면 모로코 정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하메드 6세는 2003년 늦둥이 왕자 하산 왕자를 보긴 했지만 아직 어리고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 유럽 전문가는 “모로코의 정부 시스템은 매우 수직적이다. 국왕의 부재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FT에 말했다. 모로코의 전직 관료는 현 상황에 ‘조종사 없는 비행기’라고 토로했다. 펠험은 “모로코 정부는 현재 리더십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불안정한 정세를 안정시킬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전했다.

박종화 (bel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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