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마시지 말라는 ‘타짜’의 와인…2020년 오퍼스 원은 진짜? 가짜? [김기정의 와인클럽]
지난 2주는 일요일을 모두 대전에서 보냈습니다. 3일에는 와인 품평회인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 출품된 3200여종의 와인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으로 참가했고, 10일에는 국가대표 소믈리에 대회를 취재하러 갔습니다. 심사와 대회에 참가한 소믈리에를 비롯해 교육자, 수업업자 등 다양한 와인 업계 관계자들과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의견을 나눌 기회였습니다. 그중 하나는 ‘가짜 와인’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와인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한국 정부가 세계 최고급 와인 ‘로마네 콩티’의 수입을 중단시킨 소식을 들으셨을 겁니다.
또 다른 수입사로 부터 들은 얘기는 도멘 비조(Domain Bizot)의 에세조 와인입니다. 이 와인에서도 지난해 ‘납’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됐다고 합니다. 문제가 된 와인도 병행수입사 제품입니다.
크리스탈와인 관계자는 “도멘 비조의 공식수입사인 크리스탈와인컬렉션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은 식약처의 정식검사를 통과한 제품으로 납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도멘 비조는 지인이 추천해서 꼭 마셔보고 싶었던 와인인데 예상과 달리 파리에서도 워낙 귀해 일반 와인샵에서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출장 마지막날 파리의 ‘르 그랑 피유 에 피스’(Legrand Filles & Fils)라는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서 도멘 비조를 발견하긴 했지만 시간도 없었고 혼자 마시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라 망설임 끝에 깨끗이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탈리아의 한 와인창고에선 ‘짝퉁’ 사시카이아 1995년산이 대량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수퍼 투스칸’으로 불리며 이탈리아의 대표와인으로 자리잡은 사시카이아는 한국 소비자들이 무척 좋아하는 와인입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가짜 와인 제조자들은 한국 소비자들이 와인 맛을 잘 모른다며 한국을 가짜 와인의 주거래처로 삼은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와인 소비가 늘면서 개인이 해외에서 직접 사오는 ‘해외 직구’ 와인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통경로가 불명확하면 가짜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와인 수입업계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그런데 ‘납’이 검출된 로마네 콩티 ‘라 타슈’와 도멘 비조 ‘에세조’를 수입하려던 국내 수입사 2곳(각기 다른 수입사 입니다)은 개인 수입사가 아닌 유명 기업의 수입사입니다. 이렇게 큰 수입사가 확보한 와인이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언뜻 이해가 안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루디 쿠니아완(Rudy Kurniawan)의 이야기를 보면 ‘속이려 들면 속을 수 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쿠니아완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으로 미국서 활동한 유명 와인 사기꾼입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대표 와인 로마네 콩티를 매우 좋아해서 닥터 콩티(Dr. Conti)로 불린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소설같아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신포도’(Sour Graphes)로도 다뤄졌습니다. 한국에서는 ‘타짜의 와인’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네요.
넷플릭스 다큐 ‘타짜의 와인’에서 루디 쿠니아완의 한 고객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쿠니아완이 와인에 눈을 뜨게 된 건 200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오퍼스원 1996년 빈티지를 마시고 나서라고 합니다. 그는 와인 수집가로 먼저 이름을 알립니다. 경매에서 최고 100만달러 어치의 와인을 구입하고, 다른 와인 수집가들과 시음회를 열며 와인을 교환했다고 합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쿠니아완을 ‘지구 최고의 와인 창고’라고 부릅니다.
쿠니아완은 2006년 부터는 자신이 소장한 와인을 팔기 시작합니다. 한 경매에선 선약금으로만 3500만달러를 받습니다. 이 돈으로 그는 LA지역 부촌 벨 에어에 800만 달러짜리 집을 사고, 그의 차고엔 벤틀리와 페라리를 세워 둡니다. 2002년 경매에서 2600달러하던 1945년 빈티지 로마네 콩티가 2011년엔 12만4000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으며 쿠니아완의 명성도 높아집니다. 하지만 사기행각이 길어지면 언젠가 꼬리가 잡히는 법.
유명 와인 생산자인 도멘 퐁소(Domaine Ponsot)의 오너인 로랑 퐁소는 쿠니아완이 내놓은 와인 경매에 자신의 와인들이 많이 출품됐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로랑 퐁소는 경매 안내책자를 살펴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이 와이너리의 첫 빈티지는 1934년인데 1929년 빈티지가 경매에 나온 것이죠. 또 억만장자인 빌 코크는 자신이 산 와인들의 진위 여부를 추적하던 중 2만5000달러에 매입한 매그넘(1.5리터) 사이즈 페트뤼스 1921 빈티지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해에는 페트뤼스가 매그넘 사이즈를 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시되지도 않은 와인들이 경매에 나온 겁니다.
결국 미 연방수사국(FBI)이 2012년 루니 쿠니아완의 집을 급습합니다. 여기서는 가짜 와인 제조에 필요한 빈 병과, 라벨, 제조방법이 적힌 노트들이 나옵니다. 쿠니아완은 2013년 12월 10년형을 선고 받습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와인 사기로 실형을 받은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2020년 11월 석방돼 인도네시아로 추방을 당하는데요. 사실 체포될 당시에도 10년 가까이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고 합니다.
토마스 제퍼슨 재단은 “토마스 제퍼슨이 해당 와인을 구매한 기록이 없다”고 밝힙니다. 또 토마스 제퍼슨은 이니셜로 ‘Th; J’라고 썼다고 합니다. 성과 이름 중간에 세미 콜론을 넣었는데요. 경매에서 낙찰돤 와인에는 세미 콜론 대신 마침표 ‘Th. J’로 표기돼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200년 가까이 된 이 와인은 진짜였어도 ‘식초’로 변했을 겁니다.
지난 4일 런던국제와인거래소(Liv-ex)에 따르면 오퍼스 원은 2020년 빈티지를 해외시장에 풀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저장고에 보관해 두고 있던 2018년 빈티지와 2019년 빈티지를 프랑스 보르도의 네고시앙에 보낸다고 합니다. 오퍼스 원은 미국서 바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유럽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 옵니다. 그래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세금 혜택도 받지 못합니다.
오퍼스 원은 제가 미국 유학생 시설이던 1990년대 말 한 병에 200달러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2019빈티지가 460달러에 팔리고 있습니다. 오퍼스 원 공식 홈페이지 판매가가 그렇고 대한항공 스카이샵에서는 683달러에 팔고 있네요.
국내 수입사들에 런던국제와인거래소의 발표 내용을 확인해보니 오퍼스 원은 2020년 빈티지를 수출용으로는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퍼스 원은 2020년 빈티지를 평년 생산량의 10%정도만 생산해 상당부분은 보관하고 일부를 와이너리 방문 고객들에게만 제공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오퍼스 원 와이너리에서 제공될 와인이 2020년 빈티지 라벨이 붙을지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출시될 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신세계가 인수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쉐이퍼 와이너리도 2020년 빈티지 제품을 생산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세계 L&B 관계자는 “2020년에 나파밸리에 최악의 산불로 인한 화재가 포도나무를 덮쳐서 2020년에 수확한 포도로는 양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결론적으로 올해 출시되는 캘리포니아산 2020년 빈티지 고급 와인들은 라벨과 스토리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산되지도 않은 와인들이 유통된다면 그건 ‘가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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