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보내고 AI도 동원…지자체들, 위기가구 찾기 '전력'
전문가 "사회서비스가 꼭 필요한 분에게 전달되도록 전담 인력 늘려야"
(전국종합=연합뉴스) 전북 전주의 한 빌라에서 40대 여성이 생후 18개월가량 된 아이를 홀로 남기고 숨진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위기가구를 찾아내지 못해 초래된 비통한 현실을 감내하게 됐다.
'송파 세 모녀'(2014년)나 '수원 세 모녀'(2022년) 등 생활고로 비롯된 안타까운 죽음은 매번 사회 구성원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기지만, 유사한 비극은 여전히 되풀이되는 실정이다.
정부는 전기료나 건강보험료 등을 체납한 '위기가구 발굴대상자'를 지자체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비극의 사슬을 끊으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이나 시스템 미비 등으로 여러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이에 지자체별로 위기가구와 접점이 있을 만한 공공·민간 기능을 활용,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발굴하고 도움을 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집배원이 형편 살피도록'…위기 우려 가구에 등기우편 발송
각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우체국 집배원들은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감도 높은 레이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부산 영도구는 지난해 7월부터 영도우체국과 손을 잡고 전국 최초로 복지등기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 사업은 영도구가 두 달에 한 번 보건복지부에서 받는 800여건의 위기가구를 확인하기 위해, 우체국 집배원들을 사회복지공무원처럼 활용하는 제도다.
영도구는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에 위기가구를 100가구씩 선별해 복지 우편물을 담은 등기 우편물을 보낸다.
등기는 집배원이 우편 수신인을 만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집배원이 이때 위기가구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며 기초정보를 수집하고 위기 징후에 대한 체크리스트에 표기해 구청에 알려준다.
체크리스트에는 '집주변에 악취가 나는가', '벌레가 보이는가', '집 앞에 우편물 독촉장 압류 등 우편물이 많이 있는가', '집주변에 쓰레기가 또는 술병이 많이 쌓여있는가' 등이 있다.
구청 공무원은 우체부에게서 이 같은 정보를 받은 뒤, 위기가구를 심층 인터뷰해 실제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를 확인하게 된다.
영도구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간 복지등기를 통해 위기가구 318곳을 발굴했다.
이들에게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지원 54건, 기타 공공서비스 지원 97건, 민간 서비스 연계 등이 215건을 하는 등 복지 서비스를 연결해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특히 위기가구의 경우 채무자나 법원 서류를 받지 않으려고 주소를 제대로 해놓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우체부들의 노력으로 실제 주소지를 알게 된 가구도 32곳을 파악하는 성과를 냈다.
영도구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광주 북구, 강원 속초시, 충북 청주시, 경북 구미시, 경남 김해시 등도 단전·단수나 통신비 체납 등 정보를 토대로 매달 위기 우려 가구를 선정해 등기 우편을 발송, 집배원이 해당 가구의 상태를 파악하는 사업을 시행 중이다.
영도구나 속초시처럼 일부러 복지우편물을 발송하는 정도는 아니라도, 집배원들이 우편물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위기가구를 발견하도록 하는 시도는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집배원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우편물이 쌓이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위기 의심 가구를 지자체에 알리는 시스템이다.
대전 대덕구는 대덕우체국 집배원 54명을, 충북 증평군은 증평우체국 집배원 19명을 명예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위촉해 위기가구를 발견하면 즉시 통보하는 역할을 맡겼다.
인적 안전망을 더욱 넓혀 어려운 이웃을 모니터링하는 시도도 있다.
울산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종사자, 전기·도시가스 검침업종 종사자, 미용사 등 생활서비스업종 종사자를 명예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임명해 운영하고 있다.
시는 올해 상반기에 5천276명의 도움을 받아 6천92건의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 공적 급여를 지급하거나 민간 지원과 연계했다.
울산 남구는 대한미용사회 울산남구지회와 협약을 맺고 미용사 300여 명에게 복지 사각지대 발굴 역할을 당부했다.
전화·SNS·AI까지 동원…종교시설, 우유배달 등 인적 안전망 강화도
전통적 방법인 안부 전화를 비롯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플랫폼과 기술을 활용하는 노력도 있다.
전북 익산시는 카카오톡 신고 채널인 '익산 주민(Zoom-in) 톡'을 통해 위기가구 발견 시 신속히 신고해 빠르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AI 로봇, 전력 사용량 및 통신 데이터 패턴 분석 등 첨단 과학 모니터링시스템도 도입했다.
이와 함께 한국전력공사·SK텔레콤과 손잡고 전력 사용량 및 통신데이터를 분석해 평소와 다른 이상 패턴 감지 시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복지담당자에게 알려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기 가평군은 위기가구를 발굴하고자 SNS 채널을 활용한 '복지톡'을 운영한다.
복지톡은 동네에서 어려운 이웃을 발견하면 주민 누구나 제보하거나 상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군은 이장, 명예 사회복지공무원, 지역사회보장협의회 위원 등 약 390명의 인적 안전망이 복지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전남 해남군은 위기 우려 가구에 안부 전화를 해 건강 상태 등을 파악하는 '사랑의 1분 통화'를 시행 중이다.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고난도 사례관리 대상자, 고독사 위기가구, 장애인 가구 총 2천539명을 대상으로 해남형 공공일자리를 활용해 사랑의 1분 통화를 하고 있다.
주 1회 이상 안부 전화를 해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있으며, 부재중인 대상자는 가정을 직접 찾는다.
안부 살피기를 통해 쌀이 부족한 대상자에게 백미를 전달하거나, 욕창이 생겼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던 대상자를 위해 보건지소와 연계해 응급조치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성과를 올렸다.
통신이나 정보통신(IT) 기술을 동원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애정을 갖고 감시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소홀할 수는 없다.
광주 북구는 기독교·천주교·불교·원불교 등 4대 종단과 함께 관내 위기가구를 발굴하고 있다.
4대 종단은 교회, 성당, 사찰, 교당 등 종교시설과 신도 네트워크를 통해 위기가구를 발굴하고 복지제도를 홍보한다.
북구는 제보 체계를 구축하고, 제보자 포상 등 체계적인 위기가정 발굴 시스템을 갖춘다.
4대 종단이 제보한 위기가구에 긴급복지, 공공·민간서비스 등 다양한 맞춤형 지원을 할 예정이다.
강원 동해시는 취약계층 어르신 고독사 예방과 안부 확인을 위한 우유 배달사업을 벌이고 있다.
동해시니어클럽 공공이불빨래방 참여 인력이 주 3회, 오전과 오후 조로 나눠 구역별로 멸균우유 2∼3개씩 대상자 가구를 방문해 배달하고 있다.
배달 시 우유가 쌓여있는 가정의 경우 인적 사항을 시에 보고하면 각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이 대상자의 안부를 세심히 살피고 있다.
현재 지역 내 만 65세 이상 취약 독거 어르신 50가구를 지원하고 있다.
한 수혜자는 "우유로 건강을 챙길 수 있고 혼자 살면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많았는데, 누군가 나의 안부를 챙겨주는데 위안과 안심이 생겼다"는 소감을 전했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났던 경기 수원시는 새로운 복지 사업인 '새빛돌봄' 사업을 올해 7월부터 관내 8개 동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새빛돌봄은 마을공동체가 중심이 돼 돌봄이 필요한 이웃을 발굴하고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원시 복지사업이다.
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이나 통장 등 마을을 잘 알고 있는 주민들로 선정된 새빛돌보미 130명이 두달여의 시범 운영 기간 마을을 돌아다니며 돌봄이 필요한 이웃 840명을 찾았다.
이후 이들을 상대로 수원시가 상담을 진행한 뒤 방문가사, 동행지원, 심리상담, 일시보호 등의 복지서비스를 650건 제공했다.
수원시는 2025년까지 44개 모든 동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익산시는 지역을 잘 아는 이웃으로 구성된 '우리 마을 행복 지킴이' 2천400명을 고위험 가구 안부 확인 등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투입하고 있다.
29개 읍면동 주민인 이들은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소외이웃을 찾아낸다.
다만 각종 공공·민간 기능을 활용하는 선에 그칠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도록 전담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록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의 복지사업과 예산은 늘어나고 있지만 현장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복지가 실현되지 못하는, 흔히 말하는 '깔때기 현상'이 더 심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사회서비스가 꼭 필요한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전담 인력을 늘려야 한다"며 "사회 경직성이 강화될 것이 우려돼 공무원을 추가 채용하기 어렵다면 공무직이나 공공근로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소연 정종호 장덕종 김도윤 이상학 김형우 고성식 백도인 최종호 차근호 이강일 신민재 허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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