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사기꾼, 떨고 있나”…드디어 ‘현대차’ 진출, 정말 속지 않을까 [세상만車]
5년미만 ‘인증 중고차’ 판매에 주력
10대중 9대, 기존 중고차업계 판매
‘정보 비대칭’ 문제 해결에도 나서야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적게 가지고 있는 측은 물건을 거래할 때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 이는 거래 불신으로 이어진다. 결국에는 시장이 황폐화되고 붕괴된다.
인간은 때로는 합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으로 행동한다며 심리학과 경제학의 접경 부분을 파고든 행동경제학과 정보경제학에서도 자주 다룹니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이라는 유행어를 만든 영화 ‘내부자들’은 정보 비대칭을 권력자들이 철저히 악용한 사례입니다.
일반인들이 정보 비대칭으로 불리한 의사결정을 내려 손해를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주식시장입니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너무 피해가 심각해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도 종종 활용하는 정보 비대칭 시장이 있습니다.
‘중고차 유통’입니다. 정보 비대칭 때문에 사기·범죄 행위가 빈번하기 발생하기 쉬운 곳이죠.
중고차·정비 전문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는 차량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중고차 사기꾼에게 허위매물 피해를 당하고 무사고차를 사려다가 오히려 사고차를 비싼 값에 속아 구입합니다.
주행거리를 조작한 차, 침수·사고 흔적을 감춘 차를 피하려다 사기꾼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출고된 지 1년밖에 안된 벤츠 차량을 ‘싼값’에 준다는 말에 속아 폐차 직전인 침수차를 속아 사는 피해가 발생합니다. 중고차 사기꾼에게 협박·강매를 당한 뒤 억울한 마음에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도 있습니다.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시장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찝찝하지만 신차보다 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영화 ‘베테랑’,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중고차 사기꾼들에게 한 방 먹이는 장면에 관객과 시청자들이 ‘통쾌함’을 느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보 비대칭 탓이라고 볼 수 있죠.
한국소비자원은 지난해 4월 중고차 구매경험이 있는 성인 501명과 중고차 사업자 1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설문결과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으로 ‘허위·미끼 매물’을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허위·미끼 매물은 정보 비대칭 때문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중고차 사기 행각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소비자(79.8%·복수응답)보다 사업자(98.1%)의 응답률이 높았습니다. 중고차 업계도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소비자들은 ‘불투명한 가격 정보’(71.7%),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 기록부에 대한 낮은 신뢰도’(59.1%)도 문제가 많다고 답변했습니다.
사업자들은 ‘불투명한 가격정보’(70.5%)와 ‘매물 비교 정보 부족’(56.2%)을 지적했죠. 모두 정보 비대칭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중고차를 사본 경험이 있는 소비자 중 피해를 봤다는 응답은 12.8%로 나왔습니다. 피해 유형은 ‘사고 이력 미고지’(40.6%), ‘차량 연식 상이’(31.3%), ‘허위·미끼 매물’(29.7%) 순이었습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승용차 기준 신차 등록대수는 78만3653대, 중고차 실 거래대수(개인거래·매도·알선)는 101만2418대로 나왔습니다.
정보를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하듯이 정보를 많이 확보한 중고차 딜러들도 신차 시장보다 규모가 커진 중고차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자동차 경매장, 중고차 기업, 중고차 사이트 등이 잇달아 진출했어도 딜러들은 주도권을 지켰습니다.
품질·보증 시스템, 사고이력 고지 등으로 중고차 유통을 기존보다는 좀 더 투명하게 만들었지만 기득권을 가진 딜러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고 협력하는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죠.
2005년 BMW가 물꼬를 튼 뒤 벤츠, 아우디, 포르쉐, 폭스바겐, 렉서스, 볼보 등 20여개 수입차 브랜드들이 잇달아 중고차 시장에 진출했지만 전체 시장 규모로 보면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습니다.
딜러들과 직접 경쟁하는 수입차 브랜드의 인증 중고차는 주로 출고된 지 6년 이내 무사고·단순 수리 차량으로 대수가 한정됐기 때문이죠.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와 수입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 중고차 실거래대수는 33만6419대입니다. 수입 중고차에 진출한 20여개 브랜드 중 벤츠와 BMW가 사실상 양강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지난해 벤츠 중고차는 8만2000대 가량 판매됐습니다. 이중 인증 중고차는 8500여대 수준입니다. 10% 수준이죠. BMW도 7만7000여대 중 1만여대만 인증 중고차입니다. 14% 정도 됩니다.
3위인 아우디 인증 중고차 판매대수는 4000여대, 폭스바겐은 1500여대, 볼보는 1000대 미만입니다. 전체 수입 중고차 시장 규모로 따져보면 인증 중고차는 10% 미만에 불과합니다.
2013년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는 중소기업·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던 중고차 매매업 보호기간이 2019년 2월 만료됐습니다.
중고차업계는 같은 해 11월 적합업종 재지정을 요구했지만 지난해까지 결정이 미뤄지더니 지정이 해지됐습니다. 대기업 진출을 가능해졌습니다.
국내 신차 주도권을 가진 현대차그룹은 시범 운영을 거쳐 다음 달부터 중고차 판매에 나섭니다.
국내 중고차 거래대수 10대 중 7대 이상도 현대차·기아 차종으로 알려졌습니다. 파괴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차·기아는 수입차 브랜드처럼 ‘명품 중고차’라 부르는 인증 중고차를 판매합니다. 5년 10만km 이내 자사 브랜드 중고차 중 200여개 항목의 품질 검사를 통과한 차량만 선보입니다.
판매대상 범위를 벗어난 차량은 경매 등의 공정한 방법을 통해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할 계획이죠.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인증중고차 사업에 진출한 상태입니다. 현대차는 6년·8만마일(12만9000km) 이내 중고차를 대상으로 173개 항목의 품질 검사를 진행합니다.
제네시스는 5년·6만마일(9만7000km) 이내 중고차를 대상으로 191개 항목을 검사한 뒤 판매합니다.
현대차는 내년 4월30일까지 국내 중고차 시장 점유율을 2.9%, 같은 해 5월1일부터 2025년 4월30일까지 4.1% 이내로 자체 제한합니다. 기아도 각각 2.1%, 2.9% 수준으로 맞춥니다.
실제로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교통문화운동본부 등 6개 시민단체들은 중고차 업계의 반발로 대기업 진출이 지지부진했던 지난 2021년에 ‘중고차 시장 완전 개방 촉구 서명운동’까지 벌였습니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서명 참여자가 1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죠.
소비자주권시민연대가 지난해 3월 개최한 ‘소비자가 본 자동차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과 소비자 후생’ 토론회에서도 대기업 진출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셌습니다.
당시 주제발표를 맡은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허위·미끼 매물, 성능상태 점검 불일치, 과도한 알선수수료, 수리 및 교환·환불 시스템 미정착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완성차업체에 중고차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은영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대표도 “소비자의 80.5%가 국내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낙후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대기업 진출을 통해 소비자가 보호받고 선택권을 보장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기업이 진출하면 중고차 사기가 사라지고 중고차 시장도 투명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지금도 완성차 업체 진출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대세입니다.
왜 그럴까요. 현대차·기아가 제시한 중고차 시장 점유율은 2025년 4월 기준으로 7% 수준입니다. 100대 중 7대에 불과합니다.
수입 중고차 시장에서 알 수 있듯이 KG모빌리티, 렌터카회사 등이 진출하더라도 대기업 시장 점유율은 10% 이내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이상 점유율을 늘리려면 품질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상당 기간 100대 중 90대는 여전히 기존 중고차 유통 시스템을 통해 거래된다는 뜻입니다.
대기업 진출이 중고차 시장 투명화보다는 신차 판매 촉진을 위한 마케팅 차원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대다수 수입차 브랜드들은 ‘돈 되고 말썽없는’ 중고차로 수익성을 높이고 중고차 가치를 높여 신차 판매에 도움을 얻기 위해 인증 중고차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이를 위해 기존 차량을 반납하고 재구매하면 할인·보증 혜택을 주는 보상 판매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죠.
현대차·기아도 수입차 브랜드처럼 중고차 가치와 고객 충성도를 높여 신차 판매를 촉진하는 마케팅 수단으로만 인증 중고차를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대차·기아가 중고차 유통 선진화를 위한 강력한 ‘메기’가 되려면 소비자 피해를 일으키는 정보 비대칭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이미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3월7일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신뢰 제고,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상생을 목표로 하는 ‘고객 중심 중고차사업 방향’을 공개했습니다.
크게 구분하면 인증 중고차 도입, 정보 비대칭 해결, 중고차 업계와 상생 세가지입니다. 핵심은 ‘정보 비대칭 해결’입니다.
현대차는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가칭 중고차 연구소)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토교통부와 보험개발원 등과 협의, 정부·기관이 각각 보유한 차량이력 정보에 현대차가 보유한 정보까지 결합해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소비자는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을 통해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정보 ▲적정가격 산정 ▲허위·미끼 매물 스크리닝 ▲중고차 가치지수 ▲실거래 대수 통계 ▲모델별 시세 추이 ▲모델별 판매순위 등의 중고차시장 지표와 ▲트렌드 리포트 등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구매하려는 중고차의 사고유무와 보험수리 이력, 침수차 여부, 결함 및 리콜내역, 제원 및 옵션 정보 등 차량의 현재 성능·상태와 이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현대차·기아가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면 소비자 피해는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고차 업계의 반발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소비자들은 현대차그룹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더 이상 사기피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고 판매 개시를 기다리고 있다”며 “기대와 호응에 진정 부응하려면 중고차 사기 피해의 원인인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임 대표는 아울러 “중고차 업계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고 사기행각에 대한 강력한 처벌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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