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때문에 3명 죽고, 파산 직전”…회사 망하게 할뻔한 재벌 2세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3. 9. 17.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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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94] 영화 ‘에비에이터’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를 연속으로 리뷰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살펴볼 그의 영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에비에이터’입니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기업 사장이 된 하워드 휴즈는 세계적 톱스타를 두루 만났다. 여러 여성을 동시에 만나며 그들에게 아픔을 주기도 했으며, 때로 데이트폭력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사진은 ‘에비에이터’에서 캐서린 햅번을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당신 회사 오너의 10대 아들이 사장으로 부임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가 회사 본업과는 상관없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후 회사 재정 상태가 엉망이 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신사업을 개척한다며 난데없이 비행기 제작에 매달린다. 시사 프로그램에 제보할 만한 악덕 기업주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워드 휴즈는 19세의 어린 나이에 대기업 사장이 된다. 그는 영화와 비행기 제작에 매달리며 회사 재정을 위태롭게 한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그러나 그렇게 만든 영화가 전국적으로 히트한다. 또, 비행기는 세상에서 제일 빠른 레이스 기록을 달성한다. 코미디로 만들기에도 다소 엉성한 서사인데, 사실 이건 실화다. 아버지의 대기업을 물려받은 후 영화와 비행기 제작 사업으로 뻗어나갔던 미국인 하워드 휴즈의 이야기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에비에이터’(2004)는 이토록 예측 불가능했던 재벌 2세의 젊은 시절을 조명함으로써 강박의 양면성을 살펴본다.

실제 하워드 휴즈의 모습. 190cm가 넘는 장신에 잘생긴 얼굴, 명석한 두뇌로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촬영 도중 사람 세 명이 죽었는데 “계속 하자”
영화는 ‘지옥의 천사들’을 제작할 당시의 하워드 휴즈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1924년, 아버지를 여의며 그는 휴즈 공구회사라는 거대 기업을 물려받게 된다. 휴즈가 불과 19살 때 이야기다. 젊은 오너는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대작을 만들겠다며 영화 ‘지옥의 천사들’ 프로젝트에 착수하지만, 수 년 동안 매듭짓지 못한다.
영화는 그가 MGM 관계자에게 카메라를 2대만 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는 장면을 담는다. MGM 측은 휴즈가 이미 카메라를 24대나 확보했기 때문에 추가로 카메라가 필요 없을 것이라 얘기하며 “예금이나 하라”고 조언한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바로 휴즈가 완벽한 장면을 강조하며 작업을 뒤엎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무성영화 ‘지옥의 천사들’을 완성했으나, 유성영화 시대가 열리자 휴즈는 상당수 장면을 유성영화로 재촬영하기 위해 개봉을 미루기도 한다.
영화 공개일에 그는 세상의 주목을 받는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제1차 세계 대전 전투기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을 찍다가 실제 조종사 3명이 죽는 비극이 발생한다. 회사 재정은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영화를 평생 완성할 수 있을까’란 조롱이 쏟아졌다. 그러나 3년 만에 완성된 작품은 ‘비행 전투 영화의 최고봉’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제작자로서 그의 평판까지 바꾼다. 완벽주의로 민폐를 끼쳤지만, 영화사에 오래 남을 걸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캐릭터는 하워드 휴즈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아이언맨으로 분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토니 스타크 연기에 참고하기 위해 일론 머스크를 만나면서, 우리가 아는 아이언맨엔 하워드 휴즈와 일론 머스크의 모습이 섞이게 됐다. [사진 제공=CJ ENM]
쓸쓸한 말년을 보낸 세계 최고의 파일럿
휴즈는 비행기 영화를 만드는 걸 넘어서 실제 비행기를 제작하는 사업으로 확장한다. 완벽주의자인 휴즈는 천의무봉의 비행기를 원했다. 조립한 부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곡선을 구현하고 싶어 했다. 이 때문에 기존 항공기 제작사에 비행기를 발주하는 대신 직접 항공 엔지니어를 영입하고, 회사에는 항공기 사업부까지 갖췄다.
그는 비행기를 몰던 도중 수 차례 사고를 당했고, 이는 그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영향을 미쳤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무리한 도전이라는 지적이 나올 때쯤 그는 또 세상을 놀라게 한다. 자기 비행기를 타고 시속 563km로 날라 세계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또한 그는 비행기를 타고 91시간만에 세계 일주에 성공하며 비행사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는다.

반면, 그는 도전 도중 머리를 심하게 다치고, 전신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 대인기피증과 결벽증이 심해져 쓸쓸한 노년을 보내다 삶을 마감하게 된다.

완벽한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추후엔 군에서 그에게 비행기를 발주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망가져버린 스스로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영화는 휴즈의 명암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비춘다. 마치 그렇게 다루는 것만이 이 사람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말이다. 직원과 동업자를 이토록 괴롭게 하는 오너가 있을까 싶을 때쯤, 그로 인해 회사의 위상이 한층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반대로 그처럼 완벽한 사람이 있기에 세상이 발전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쯤 그의 기행을 비추며 흥분을 식힌다. 특히, 그에게 트로피처럼 활용되고, 도청까지 당했던 연인들 입장을 담는다.

휴즈의 어두운 부분을 다룰 때 마틴 스코세이지는 폭로나 고발보다는 연민의 태도를 취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를 가련하게 여기는 시선이 두드러진다. 항공업에서 존경받는 사업가가 됐지만 한편으로 그는 모르는 사람을 보면 혹시 스파이일까 봐 두려워할 정도로 망상이 심해졌다.

불편한 심기로 영화 장면을 검토하는 하워드 휴즈.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사실 그 또한 자기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휴즈가 거울을 보며 “미래의 길”이란 말을 되풀이하는 장면은 그가 무의미한 말을 반복할 정도로 미쳐버렸음을 암시한다기보다는, 스스로의 정신 질환을 알고서도 중심을 다잡으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환영을 보는데, 어린 시절 엄마에게 영화와 비행기를 제작하겠다고 자신의 꿈을 밝히던 장면이다. 중년이 된 그는 화상을 입고,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 어린 시절의 자신과는 많이 달라져버렸지만, ‘미래의 길’을 열겠단 꿈만큼은 지켜가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에비에이터’는 이 지점에서 재벌이나 천재가 아닌 보통 관객도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나이가 먹으면 몸이든, 정신이든, 인간관계든 어릴 때와 다르게 망가졌음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부분은 너무 심하게 훼손돼 더 나빠질 일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듯하다. 망가진 채로 거기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결함이 생겨버린 스스로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선택은 관객 몫일 것이다.

‘에비에이터’ 포스터.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씨네프레소’는 OTT에서 볼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를 리뷰하는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 구독 버튼을 누르면 더 많은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영화 연작 리뷰 마지막 편으로 ‘아이리시맨’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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