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총보다 강하다…미국 퍼스트레이디의 패션 정치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한 국가 대통령의 배우자 ‘퍼스트레이디’는 해당 국가의 여성을 대표하는 유일한 지위와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당대 여성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퍼스트레이디는 사회 지도층의 여성으로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대내적·대외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패션 스타일로도 대중에게 그 이미지를 전달한다.
그만큼 퍼스트레이디의 패션 스타일과 이미지의 영향력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대중의 관심과 함께 점점 커지고 있고 퍼스트레이디를 주제로 한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도 대거 등장하면서 화제를 몰고 있다. 최근에 필자가 흥미 있게 봤던 CNN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는 미국 역사상 크게 주목받았던 영부인의 삶을 다룬 내용이었다.
미국 최초의 유색 인종 출신 영부인 미셸 오바마부터 재클린 케네디 등 각자 이미지가 확연히 다른 여섯 명의 퍼스트레이디가 어떻게 그 무거운 자리를 지켜내는지에 관한 스토리다.
필자는 개인 이미지 관리(PI : Presidential Identity) 전문가로서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 가치를 각자 어떻게 브랜딩하는지에 집중했고 인격과 가치관을 짐작하게 하는 퍼스트레이디의 패션도 큰 볼거리였다.
재클린 케네디, 피 묻은 샤넬 핑크 투피스로 정치적 메시지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암살되던 1963년 11월 22일, 남편이 직접 골라준 핑크색 샤넬 투피스를 입었던 재클린은 세 개의 탄환이 발사된 그 8초 만에 모든 것을 잃었다.
재클린은 에어포스원에 탑승할 때 남편의 피로 얼룩진 옷을 계속 입고 대통령직을 승계한 린든 존슨 대통령 취임 시 그 차림 그대로 서면서 정치적 암살에 희생된 안타까움을 알리는 강력한 메시지로 활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케네디 대통령 장례식에 기수가 없는 말을 준비하며 블루 코트를 입은 두 자녀의 양손을 잡고 나와 미국 국민에게 연민을 느끼게 했다.
천진한 어린 막내가 운반되는 아버지의 관을 향해 오른손을 머리에 올려 경례하는 모습을 챙기는 재클린의 모습은 세계인의 가슴에 슬픔을 각인시켰다.
이런 모든 것이 재클린의 의도인지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재클린은 퍼스트레이디로서 시대의 정수를 이해하면서 패션을 이용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싶다.
퍼스트레이디의 옷은 총보다 강하다
발리하 에발드는 퍼스트레이디의 의복은 목적을 가진 잠재적 사령기(군대를 지휘할 때 쓰는 깃발)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의 30대 대통령 케빈 쿨리지의 부인 그레이스 쿨리지는 남편의 임기 중에 인터뷰를 하거나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지만 소매 없는 드레스 등 당시만 해도 매우 파격적인 스타일을 즐겨 입으면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지는 등 여성 인권 향상에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미셸 오바마에게 영향력을 미쳤다는 평가가 전해진다.
미국이 쿠바의 피그스만을 침공함으로써 프랑스와의 관계에 외교적 문제가 불거지게 되던 1961년에는 재클린 케네디가 케네디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에 동행하며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인 지방시를 입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 국민과 언론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고 패션을 통해 두 국가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받는다. “옷은 총보다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 바 있는 전기 작가 티나 산티 플래허티의 말처럼 대통령뿐만 아니라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은 비언어적이나 강력하게 정치적 역할을 하면서 ‘패션 정치’로서 외교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변화와 희망의 컬러 정치, 미셸 오바마
퍼스트레이디 패션은 당대의 패션 아이콘으로서 국가 경제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인 동시에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자 시각적으로 매우 효과적인 정치적 도구다.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을 ‘패션 폴리틱스(fashion politics)’라고 표현해 퍼스트레이디가 정치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이자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로서 매우 중요한 전략 중 하나로 활약하는 시대가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44대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는 경선 초반에 검은색 반소매 티에 머리를 하나로 묶고 검은 머리띠를 한 채 지지 연설을 했다가 언론으로부터 ‘화난 흑인 여성’같은 이미지라는 혹평을 들은 후 이미지 브랜딩 전략을 새롭게 펼치면서 눈부시게 발전했다.
헤어스타일을 굵은 웨이브 단발로 정리하고 정장 스타일로 변화한 미셸 오바마의 패션은 버락 오바마의 캠페인 구호였던 ‘변화’와 ‘희망’과 그 맥을 같이했다. 동시에 그녀가 즐겨 입는 강렬한 패션 컬러는 젊은 오바마의 진보적 정치 성향이나 이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불황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고 희망을 주기 위한 의도로 분석됐다.
오바마가 대통령 경선에서 승리를 선언하던 2008년 미셸 오바마가 선택한 보랏빛 드레스는 민주당의 푸른색과 공화당의 붉은색을 섞은 조화를 상징하면서 ‘화합’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한 ABC의 ‘더 뷰’에 출연할 때는 백인과 흑인의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로 흑백으로 가득한 옷을 입었는데 그 옷의 브랜드명도 ‘화이트하우스 블랙마켓’이었다. 이처럼 미셸의 패션 스타일은 시기적절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미국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퍼스트레이디는 미국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1877년 러디퍼드 헤이스 미국 19대 대통령 취임 때 여성 리포터가 그 부인을 퍼스트레이디라고 부른 것이 최초라고 알려졌다. 그 후 1886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미국 22대 대통령이 취임 후 친구의 딸 프랜시스 폴섬과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때 폴섬을 퍼스트레이디라고 부르면서 이 이름이 정착됐다.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호흡하면서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고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명품 즐긴 멜라니아 트럼프, TPO 안 맞다 비판도
검소한 이미지의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16대 대통령과는 다르게 퍼스트레이디 마리 토드 링컨은 고가의 유럽 실크로 만든 드레스를 입는 등 사치스러운 이미지가 있었다.
당시가 남북전쟁 등 국가적으로 힘겨운 시기였기 때문에 그녀의 스타일리시한 패션 감각이 국민의 정서에 반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패션 정치는 시대성을 제대로 반영해야 하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델 출신 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공개 석상마다 크리스털과 시스루 디자인이 돋보이는 은색 샤넬 드레스 등 고가의 명품 의상을 입고 나타나 이슈를 만들며 퍼스트레이디로서의 패션이 시간·장소·상황(TPO)에 어울리지 않거나 지나치게 화려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유일한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는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을 통한 이미지 정치의 파급력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가의 상황을 제대로 고려한 상황에서 시대적인 흐름을 제대로 읽고 상황에 맞되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능력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 가치를 극대화한 이미지 브랜딩 효과는 국가의 이익은 물론 국가 이미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그 힘은 매우 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진정성’이 무시된다면 국민의 배신감은 커지고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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