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잠잠해지니 '사우디' 변수 급부상…전기료 인상 선회하나
우크라發 에너지 위기 후 '요금 동결' 무게…부채 200조 한전 '적신호'
현 추세로는 한전채 발행도 어려워…요금인상 불가피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가 잠잠해지면서 정부가 4분기 전기요금 동결에 무게를 뒀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의 감산 발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요금 인상 가능성을 열어 둔 분위기다. 총부채가 201조에 달하는 한국전력이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16일 에너지 업계 등에 따르면 한전은 4분기(10~12월) 적용 대상인 요금인상안을 오는 18일 산업부에 제출한다. 매 분기마다 전기요금 결정을 앞두고 한전이 연료비 조정단가를 제출하면, 산업부와 기획재정부가 먼저 논의 후 당정 협의를 거쳐 독립기구인 전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지난해 초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인해 전례 없는 에너지 원자재 위기를 겪었지만, 올해 초부터는 다소 진정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최근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올해 말까지 감산을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석유와 석탄, LNG(액화천연가스) 등을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지난해 못지않은 에너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셈이다. 런던 선물거래소 등에 따르면 현지 시각으로 지난 14일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93.70달러,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90.16달러, 두바이유는 93.45달러 등을 기록하며 모두 90달러 선을 돌파했다.
전력 생산의 주요 원료인 석유 가격이 급등할 경우, 지난해 에너지 위기로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한전이 재차 '역마진'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당초 4분기 전기요금 동결에 무게를 뒀지만, 유가 급등 변수로 인해 최근 들어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7일 대정부질문에서 전기요금 인상 여부에 대해 "가능하다면 전력요금 조정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고, 방문규 산업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 13일 청문회에서 한전 적자와 관련해 "전기요금 조정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했다. 다만 방 후보자는 요금 인상 전에 한전의 재무개선이 우선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앞서 한전 정상화를 위해선 올해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51.6원 인상해야 한다고 정부는 밝힌 바 있다. 1분기에 13.1원, 2분기 8.0원을 각각 인상했지만, 3분기에는 동결했다. 기존 계획대로 진행할 경우에 4분기는 30.5원을 인상해야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론 악화 등을 우려해 3분기부터는 사실상 동결로 가닥을 잡았지만 돌발 변수로 고심에 빠진 모양새다.
지난해 적자만 32조원에 달하는 한전의 누적 적자는 47조원을 초과한 상태다.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전기요금이, 한전이 전력시장에서 사오는 도매 가격보다 낮은 이른바 '역마진' 구조가 지속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조단위 적자가 지속되는 동안에도 한전은 전력구매 비용을 채권 발행을 통해 마련했지만,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채권 발행도 불가능한 처지에 몰릴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지난해 말 여야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 5배까지로 증액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지난 7월 말 기준 발행 잔액이 약 79조원에 육박하면서 오는 2024년 3월 한전 주주총회 이후엔 자칫 발행 잔액이 발행 한도를 초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부터 전기요금을 약 40% 인상하면서 올해 3분기에는 잠시 '역마진'을 탈피하기도 했지만,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인해 4분기부터는 재차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SK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계절적으로 전력 판매량이 증가하는 3분기엔 흑자를 거둘 것으로 보이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유가 급등으로 인해 한전은 내년에 8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된다.
주무부처인 산업부 등 행정부 내부에선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사실상 요금 결정 권한을 쥐고 있는 여당은 신중한 분위기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물가관리 측면에서 총선을 앞두고 요금 인상이라는 게 쉽지 않다"면서도 "아직 정부 측과 공식적으로 전기요금에 대해 논의한 것은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한전 정상화를 위해 조건 없는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올해 초 이미 정부가 연내 51원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이제 와서 물가나 한전 구조조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논리가 안 맞다"며 "4분기 요금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도 "당초 계획만큼은 아니더라도 소폭이라도 인상해야 내년에 감당해야 할 부담을 덜 수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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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정주 기자 sagamor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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