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제’ 시행 현장 살펴보니…AI로 업무효율 ‘업’, 워라밸 만족도도 ‘업’ [이슈 속으로]

이지민 2023. 9. 1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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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교육 전문 휴넷 챗GPT 도입
업무 시간 ‘20분의 1’로 확 줄여
우아한 형제들 다양한 협업툴로
구성원 커뮤니케이션 강화 주목
직장인 “시간 여유 생겼다” 호평
짧은 해외여행·자녀돌봄 등 활용
젊은층 ‘일·가정 균형’ 중요시 추세
‘주4일제’ 도입 요구 점점 커질 듯
IT·서비스업 분야서 도입 추세
대기업도 생산직은 해당 안돼
카카오 등 중도 철회한 기업도
‘업무 처리 효율성이 더 오른다.’ VS ‘실근로시간 감소해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 4일제를 둘러싼 찬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기점으로 제도 논의에 속도가 붙었고, 유연한 근무 형태는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에도 화두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주 4일제 도입 기업도 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과 휴넷은 각각 지난해 1월, 7월부터 시작해 도입 1년이 훌쩍 지났다. SK·CJ에 이어 삼성전자는 6월부터 부분적 주 4일제를 시행해 19일이면 100일을 맞는다.

생산성 저하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각 기업은 어떻게 이 문제를 풀고 있을까. 직원들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주 4일제 실험을 진행 중인 기업 현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도 도입에 따른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햇빛을 가리며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챗GPT 등 AI 활용해 근무 시간 단축

기업 교육 전문 기업인 휴넷은 주 4일제 도입과 맞물려 전사적으로 생산성 향상이 가장 큰 과제였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AI) 기술에서 해법을 찾았다.

이수정 휴넷 운영서비스기획팀장은 지난 6월부터 챗GPT를 활용해 업무시간을 줄이고 있다고 했다. 기존에 VOC(고객의 소리)를 분석할 때는 엑셀로 카테고리를 분류하고, 유형별로 통계를 내 최종 보고서를 만들었다. 챗GPT를 활용해 분류하자 업무 시간은 20분의 1로 줄었다. 나머지 시간 은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쓰고 있다.

유튜브 영상 제작 업무를 맡은 장고운 휴넷 브랜드커뮤니케이션실 선임도 AI 음성 솔루션으로 제작 시간을 확 줄였다. 장 선임은 “주 4일제로 업무 시간은 단축됐는데 만들어야 하는 콘텐츠 양은 늘어나 고민하던 참에 AI 음성 솔루션을 쓰게 됐다”며 “성우 섭외에 따른 시간도 줄었고 즉각 수정도 가능해 전체 콘텐츠 제작 속도가 줄었다”고 했다. 이어 “주 4일 근무에 따른 업무 효율성을 계속해서 고민하다 보니, 새로운 업무 방식을 찾고 개선하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아한형제들은 근무 시간(주 32시간) 내에서 협업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협업 툴을 쓰고 있다. 일상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슬랙, 업무에서는 구글웍스를 활용 중이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슬랙은 특정 채널(대화방)에서 논의된 이력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즉각 답이 오지 않을 것을 전제한 상태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는 비동기적 커뮤니케이션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월요병 사라지고 2박3일 여행족 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근로자가 체감하는 가장 큰 장점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이미 2015년에 월요일 오후 1시 출근제를 시행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직장인에게 흔한 월요병이 적어졌다는 의견도 많고,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오전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어 직원들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을 운영하는 당근마켓은 기간과 관계없이 언제든 휴가를 쓸 수 있는 자율휴가제를 2015년 창업 초기부터 도입했다. 휴가 일수에 구애받지 않고 휴식한 뒤 더욱 몰입해서 업무에 임하자는 취지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장기 휴가를 떠나도 상사에게 허락을 받는다거나 결재받지 않는다”며 “팀 내 프로젝트를 마친 뒤 팀 안에서만 일정을 공유하고 장기 휴가를 가는 직원이 많으며, 대부분 법정 연차 휴가보다는 연차를 더 쓴다”고 했다.

부분적 주 4일제를 도입한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6월부터 제도를 시행한 삼성전자는 부서마다 이용률 차이는 있으나 많이 쓰는 부서에서는 70%가 넘는 비중으로 월 1회 주 4일제를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금토일 짧은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 평소 못하던 자녀 등하원 등에 많이 이용하고 있다”며 “요즘은 개인 연차도 자유롭게 쓸 수 있긴 하지만 1년에 최대 12일의 휴무가 추가된 것이어서 기존 연차를 보다 알차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로시간 감소는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청년(19∼34세) 45.4%는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중요시한다고 응답했다. 일이 우선인 청년은 33.7%, 가정생활이 우선인 청년은 20.9%로 나타났다.

‘일이 우선’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던 10년 전과 뒤바뀐 현상이다. 2011년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은 2021년보다 20%포인트 이상 많은 59.7%였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시한 경우는 29.1%에 그쳤다.

13일 HR테크 기업 원티드랩이 공개한 설문조사도 주 4일제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큰지를 뒷받침한다. 원티드랩이 5월31일부터 한 달 동안 17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1.4%가 ‘연봉을 줄이고도 주 4일제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연봉 삭감률 최대 폭은 ‘5% 미만’이 73.4%로 가장 많았고, 5% 이상∼10% 미만(21.5%), 10% 이상∼15% 미만(3.2%), 15% 이상(1.9%) 순으로 나타났다.
◆산업계 생산성 감소 우려 여전… “일부 직군만 적용 가능”

경제계는 주 4일제 도입에 따른 생산성 감소를 가장 큰 한계로 꼽는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경제단체들은 실근로시간 감소에 따른 생산성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근로시간 감소 추세가 너무 빠르다는 게 문제라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1일 한국이 더는 장시간 근로 국가가 아니라는 근거의 통계를 발표했다. 경총이 발표한 ‘근로 시간 현황 및 추이 국제 비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풀타임(전일제) 근로자 실근로시간 감소 폭이 두드러졌다.

2001년에는 한국 풀타임 근로자의 주당 평균 실근로시간이 50.8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40.9시간으로, 10시간 가까이 차이가 났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한국 42시간, OECD 평균 40.7시간으로 나타났다. 격차가 1.3시간으로 급감했다는 것이다. 하상우 경총 경제본부장은 “우리나라는 여러 요인을 고려했을 때 이제 근로 시간이 OECD 평균과 비교해 과도하게 길다고 볼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했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지난 5월 우리나라의 수출이 감소한 요인으로 실근로시간의 급격한 감소를 꼽았다. 무협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주당 실근로시간은 2017년 42.5시간에서 지난해 37.9시간으로 5년 만에 10.8%인 4.6시간 감소했다. 반면 국내 임금 수준은 경쟁국 대비 급격히 상승해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설명이다. 정 부회장은 “실근로시간 단축이 바람직하긴 하나, 급격한 단축이 문제”라고 짚었다.

중소기업계도 주 52시간 제도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중소기업 현장에서 52시간 제도가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며 지난 3월에는 “일본처럼 월 최대 100시간, 연 최대 720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13일 제주 리더스포럼 기자간담회에서도 “주 52시간 때문에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도 못 벌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주 4일제가 일부 직군에만 가능한 제도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 주 4일제를 전면 도입한 기업도 대부분 정보기술(IT)과 서비스업 분야이기에 가능하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월 1회 주 4일제 역시 생산직 직원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주 4일제를 도입했다가 철회한 기업도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7월 ‘격주 놀금제’를 도입했다가 반년 만에 폐지하고, 마지막 주 금요일만 놀금제를 유지하고 있다. 교육 전문기업 에듀윌은 2019년 6월부터 4일제를 전면 도입했다가 지난해 10월 주 5일제로 돌아갔다.

중소기업의 근로문화 개선 문제를 연구해 온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 4일제에 관해 “중소기업 전체에 적용하기에는 시기상조”라며 “근로자와 기업 간 윈윈(win-win)이 아닌, 근로자 임금이 줄고 기업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루즈루즈(lose-lose) 방향으로 접근되는 게 많다”고 했다. 이어 “현장 적용을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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