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작업반장'의 무게…"내 팀은 내가 지켜야 하니까"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힘' 좀 써야 한다는 노동 현장, 그곳에도 여자가 있습니다. 웬만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노동 현장에서 차별과 배제마저도 이겨낸 이들이죠.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큰 블루칼라 노동 현장에서 살아남은 '기술직 여성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남성중심적 문화가 지배적인 현장에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차별과 배제를 버텼습니다. 여자 화장실이 없는 현장,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해야만 했던 무시와 젠더폭력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해 당당하게 '기술직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이어 나간 이들을 <프레시안>이 만났습니다.
자신이 흘리는 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여성들은 건설 현장에서도 공장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도면을 그리는 먹매김 노동자, 건물 뼈대를 이어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 목수,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부품을 염색하는 도장노동자 등 <프레시안>이 만난 블루칼라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수북이 쌓인 콘크리트 먼지와 못, 건설 자재들이 뒤섞인 건설 현장에서 철근팀, 형틀팀, 타설팀, 전기팀 등 수십 개의 팀이 동시다발적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공기'(공사기간)를 맞출 수 있다. 현장에서 이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재활용 가능한 자재들을 분류하고, 폐자재를 정리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프레시안>은 지난 6일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자재‧세대정리팀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는 45살 권원영 씨를 만났다. 원영 씨는 방진마스크를 쓴 채 먼지 속을 뚫고 다녔다. 자기 몸집보다 더 큰 '폼'(거푸집을 만들 때 사용하는 철재로 만든 합판)을 옮겨 재활용 할 수 있도록 분류했고, 폐자재가 가득했던 아파트 세대를 말끔하게 정리하기도 했다.
본래 자영업자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경기가 어려워지자 가게를 접었다. 친구의 권유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현장에서 유일한 여성 관리직인 원영 씨는 자재‧세대정리팀 작업반장이다. 작업반장은 현장의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현장마다 적절한 팀원을 투입하고 감독한다. 또한 전 후 공정 간 일정을 조율한다. 예를 들어 앞 일정은 거푸집을 해체하는 해체팀, 뒤 일정은 지지대와 같은 동바리를 설치하는 시스템 설치 팀일 경우 그 사이 정리팀이 투입되어 현장을 정리해야 한다. 공정끼리 일정을 협상하기 위해서는 "현장이 머리에 '빠삭하게' 들어와 있어야 한다"고 원영 씨는 강조했다.
여성 관리직 뿐 아니라 여성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게 건설현장이다. 이 상황에서 여성이 작업반장이라고 하니, 현장 곳곳에선 '여자가 작업반장을 한다고?'라는 편견섞인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는 "왜 여성은 안 된다는 소리를 내가 들어야 하느냐.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현장에 조금씩 들어오는 2030 세대들이 스스로 한계를 정하거나 성장할 마음이 없어질 것 같았다"며 "여성 관리직이라는 롤모델이 없기도 했고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내가 (롤모델을) 해야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현장에서 원영 씨는 하루 보통 여덟 세대 내의 폐자재를 정리하고 있다. 평형이 넓은 아파트라 쉬는 시간 없이 일해야 한다는 그는 일을 많이 해서 다른 팀에게 '쿠사리(면박의 일본어 표현. 한국의 전문직종은 일본어로 된 은어를 종종 사용한다.)'를 듣는다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그의 동료는 "권 팀장은 너무 '빡세게' 일 해"라고 말했다. 점심 시간을 쪼개서 한 인터뷰 중에도 그는 눈 앞에 보이는 자재들을 항공 마대에 쓸어담으며 '이것까지만 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원영 씨가 속한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자재‧세대정리팀 노동자가 받는 하루 일당은 17만 원 선. 그는 "일하기 위해 노조를 만든 건데, 그것을 이유로 마치 '빽'인 것처럼 일을 안 하면 안 되지 않나"라고 되물으며 "받는 단가에 책임을 지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뿐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쟤가 그 여자 작업 반장이야?"하는 수근거림과 날선 시선을 받으며 일을 시작한 원영 씨는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그는 "반장들은 진짜 실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 하는 양이나 모습을 보면 '진짜로 일 하러 온 건지 아닌지' 판단이 금방 나온다"며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들 빠르게 '작업반장'으로서 인정해주었다. 인정받은 뒤에는 일하기 편하다. 믿고 맏겨주니까"라고 말했다.
팀장인 원영 씨가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건 팀원들의 안전이다. 그는 팀원들을 지키기 위해 더 거친 모습을 보인다고도 했다.
"팀원들이 다른 팀으로부터 듣는 말이 '너네 팀장 무서워서 말도 못걸겠다'는 얘기다. 현장은 위험하니까 안전에 대한 주의를 많이 주는 편이다. 우리가 토요일까지 주 6일을 일한다. 토요일은 술 마셔도 되지만 평일은 술 마시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술 마시고 일에 투입되어서 순간의 어지럼증에 떨어지거나 찔리는, 어이없는 산재 사고들이 많은 게 바로 현장이다. 그러다보니 소리도 많이 지르고 욕도 하고 거칠게 일하기도 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현장에서 동료들이랑 안 쫓겨나고 같이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어느정도 쇼맨십도 보여줘야 한다. 작업반장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공정 팀장이나 현장 소장이 우리팀을 무시할까봐 더 소리를 지르고 욕했을 수도 있다. 그 대신 우리 팀원들은 나 이외의 다른 간섭은 없이 편하게 일한다. 내가 만약 일도 못하고, 제대로 감독도 안하고 하면 현장 소장이 와서 잔소리 하니까. 내 현장과 내 팀원들은 내가 지켜야 한다."
일이 힘든 건 없다고 웃어보인 원영 씨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이 현장이 끝나고 팀원들과 이어갈 다음 현장이 없을 때"라고 꼽았다. 그는 "건설사들이 현장에서 건설노조를 잘 쓰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이니까. 팀원들이 놀게 되어서 생계에 문제가 생길까봐 하는 걱정이 크다"며 "내가 '쌀 살 돈이 없으면 전화하라'고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다들 걱정인데 얘기를 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말 끝마다 '팀원', '팀'을 언급하며 책임감을 숨기지 못했던 원영 씨는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2030세대 친구들이 들어와서 보람을 느끼는 현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형틀이나 미장 분야에서 정년퇴임 하셔야 할 나이가 된 선배들이 '이런 기술을 물려받을 한국 청년들이 별로 없다'고 아쉬워한다"며 "젊은 친구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을 배울 수 있는 현장을 물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권원영 씨와 나눈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본인과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권원영 : 건설현장 자재‧세대정리팀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는 권원영이라고 한다. 나이는 45살이고 세대‧자재정리팀에서 일한지 3년이 됐다. 자재‧세대정리팀은 세대를 청소하는 세대팀과 자재를 정리하는 정리팀의 일을 같이 한다. 세대를 청소할 때는 각 세대마다 콘크리트 자재와 반생이(굵은 철사)와 철근을 분리해 쓰레기를 수거하고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서 마무리 청소를 담당한다. 자재정리팀은 목수들이 거푸집을 만들어놓은 폼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일을 한다. 외벽이나 슬라브 같은 곳에 올라가서 폼을 비롯한 자재들을 밑으로 내려서 목수들이 재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아파트 공사 현장 세대마다 발생하는 공업 쓰레기들을 처리하고, 재사용 가능한 자재들을 정리하는 일을 담당한다고 이해된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고 어느 정도의 일을 하나.
권원영 : 대체로 아침 6시에 출근해서 7시 전체 팀회의를 하고 일을 분배받아 세대청소를 진행한다. 세대 정리의 경우 공사 현장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하루에 몇 세대를 정리 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다. 지금 제가 있는 현장에서는 하루에 여덟 세대 정리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아파트 세대가 평형이 59제곱미터 이상은 되던데 하루에 여덟 세대 정리를 하면 얼마나 걸리나.
권원영 : 거의 쉬는 시간 없이 해야 한다. 그래서 욕을 많이 먹고 있기도 하다. 주변 동료들이 '일을 너무 '빡세게' 하는 것 아니냐'고 뭐라 하는 식이다. 내가 일하기 위해 노조를 만든 건데, 그것을 이유로 마치 '빽'인 것처럼 일을 안 하면 안 되지 않나. 선배들이 힘들게 일거리를 찾고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30년 동안 노력한 끝에 지금의 노동환경을 쌓아올렸는데(내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 않나). 내가 받는 단가에 책임을 지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뿐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자재정리를 할 경우에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권원영 : 자재정리의 경우 제가 작업반장이기 때문에 공정회의를 한다. 앞 뒤 공정 팀장님을 찾아가서 일정을 조율한다. 예를 들어 앞 일정은 거푸집을 해체하는 해체팀, 뒤 일정은 지지대와 같은 동바리를 설치하는 시스템 설치 팀일 경우 그 사이에 우리 팀이 투입되어서 현장을 정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 공정과 후 공정 사이의 일정 조율이 필수적이다. 공정끼리 일정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현장이 내 머리에 '빠삭하게' 들어와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하루 일당은 어느 정도인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일당과 지금 일당에 차이가 어느 정도인가.
권원영 : 옛날부터 정리는 건설현장에서 '청소부', '잡부' 취급을 받아와서 다른 공정에 비해서 단가가 세지 않다. 같은 건설노조에서 일을 잡아도 형틀이나 목수는 '기술직'이라며 알아주지만, 우리는 잡부취급한다. 정리팀을 바라보는 그런 시선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정리팀은 하루 일당이 17만5000원이다. 작업반장일 경우 단가가 더 오른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일당은 14만5000원이었다. 건설노조가 임금 협상을 하면서 1만 원, 5000원씩 힘들게 올려 여기까지 왔다.
프레시안 : 자재‧세대정리팀 일은 처음 언제 시작했고,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
권원영 : 2021년 9월, 42살에 처음 일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학원 강사도 했고, 현장에 오기 직전에는 자영업을 했다. 수원에서 오래 살았는데 마을 단체를 꾸려 차 없는 거리를 만들기도 하고, 이런 저런 활동을 많이 했다. 아이 셋이 있는데 내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동네가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활동을 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지고 생계 문제가 생기니까, 마을에서 함께 봉사하던 친구가 현장일을 제안했다. 당시에 자영업을 하고 있어서 1년 동안 거절해왔다. 그러다 경기가 어려워져 장사를 접었는데 그때도 친구가 현장일을 제안해줘서 얼떨결에 하게 됐다.
프레시안 : 자재‧세대정리팀에서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경로로 일을 배우고 시작할 수 있나.
권원영 : 대부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노조에서 설립한 전국건설기능훈련취업지원센터를 통해서 일을 배우고 현장으로 투입되기도 한다.
프레시안 : 정리팀에 여성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는가. 비율이 궁금하다.
권원영 : 보통은 정리팀 한 팀이 12명이라고 생각하면 여성노동자들이 2명 내외다. 많은 편은 아니다.
프레시안 :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분석 결과 건설노동자 열 명 중 한 명은 여성 건설노동자라는 통계가 있다. 여성이 점점 건설현장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권원영 : 이 현장의 전기 반장님이 조카를 데리고 일한다. 그 조카는 27살이고 여성이다. 그 친구한테 어떻게 하다가 현장에 왔느냐고 물어봤더니 그 친구가 '돈 벌려고 왔다' 그랬다. 그 친구는 요식업 매니저로 일했는데 세금 떼고 하면 월 수입이 300도 안 됐단다. 그 친구가 삼촌따라 현장에 전기 설치를 배우겠다고 온 거다. 그렇게 와서 일한지 2년 정도 됐는데 하루 일당 15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요즘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 내가 열심히 하고 기술을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그 친구 보니까 처음에는 돈 때문에 왔겠지만 하다보니 기술도 익혀지고 보람도 있고 하니까 오는 것 같다.
프레시안 : 건설노동자들 화장실 절대 수가 적은데 여성화장실은 충분하게 있나.
권원영 : 예전에는 현장에 여성이 없었기 때문에 화장실 설치를 하나만 해놨다. 여성 노동자가 화장실에 가려면 마음을 먹고 멀리 돌아가거나 했어야 했는데, 요즘 현장에는 여자 화장실이 기본적으로 네 개 정도는 있는 것 같다. 여성 탈의실도 별도로 생겨서 일하기가 좀 더 편해졌다.
프레시안 : 아까보니 다른 남성 노동자를 '형'이라고 부르더라, 남성이 다수인 상황에서 적응하는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적응할 수 있었나.
권원영 : 처음에는 다 '반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어느정도 친한 사람이 생기니까 우리 그냥 편하게 지내자 하면서 내가 여성이긴 하지만 남자 동료들을 '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좀 더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다. 대학 다닐때도 남성 선배들한테 '형'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공적인 상황에서는 그들이 알아서 '팀장님'이라고 불러준다.
아무리 친해져도 선은 지켰던 것 같다. 일하러 왔으면 일만 하면 되지 않느냐, 사생활은 물어보지말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기도 한다. 지나가다 다른 팀에서 '권 여사 밥 한번 사줄게. 시간 좀 내' 이런 식으로 말을 걸면 팀원들이 '권 팀장님한테 그런 식으로라도 농담하지 말라'고 대신 그런 요구를 잘라주기도 한다. 그리고 웃으면서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그렇게 소리지르면 안된다고 했지. 자꾸 그러면 나 욕한다' 하면서 웃고,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바꿔주려고 한다. 할 말은 하면서도 콩트식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프레시안 : 현장에서 원영 씨를 부르는 호칭은 뭔가.
권원영 : 이 현장에서는 다들 '권 팀장'이라고 부른다. 작업반장도 같이 하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한 노동자가 '아줌마' 하면서 이런저런 요구를 하더라. 그래서 그 요구는 요구대로 들어주고, '현장에서 아줌마라고 하지말고 반장님이라고 해야죠'라고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알았어 미안해'라고 하더라. 사람이니까.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웃으면서 이야기 하면 통하는 것 같다. 공사 현장이라고 해서 옛날처럼 일용직을 생각하고 일하러 오는 게 아니라 직업의식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 웃으면서 서로 배려하면서 일하고 있다.
프레시안 : 원영 씨는 자재‧세대 정리팀의 작업반장이라고 했다. 공사 현장에서 여성 관리직은 정말 찾아보기 어려웠다. 작업반장은 보통 어떤 일을 하나.
권원영 : 우리 팀이 있는 현장의 작업 지시를 제가 한다. 현장의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현장마다 적절한 팀원들을 투입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을 같이 한다. 작업팀장은 팀원을 관리하고 회사와 협상을 한다거나 외부적인 일을 하고 작업반장은 실무적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프레시안 : 여성 관리직이 절대적으로 적은 현장에서 어떻게 작업반장이 될 수 있었나.
권원영 : 처음 일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일 했을 때 총무를 맡게 됐다. 당시 팀장은 내가 여성이니까 나를 배려해서 힘든 일을 최대한 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정리팀 작업반장을 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 말라고 했다. 당시에는 나도 반장에 대한 욕심이 없었으니까 그 말을 들었다. 하지만 팀원들이 오히려 능력이 되는데 작업반장을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팀장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다가 다른 정리팀장과 일을 했는데, 그 분께서 내가 일하는 모습을 편견없이 봐주었다. 거푸집으로 쓴 폼들이 좀 무거운데 그것들을 쌓아서 반생이(구운 철사)로 묶어 정리하고, 외벽도 타고 내게 맡겨진 일은 무슨 일이든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른 팀에서도 목수나 해체 기사들이 ‘여성한테 그런 힘든 걸 시킨단 말이야? 그거 하지 말고 우리 팀으로 와’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외벽을 타는 일이든 폼을 쌓는 일이든 여성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현장에서 남성이 하는 일, 여성이 하는 일을 분리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단가도 동등하지 않나.
그렇게 차곡차곡 일하다 보니 현장을 제대로 알려면 작업반장을 필수로 해야 할 것 같았다. 다른 공정과 조율하면서 현장이 전체적으로 보이니까. 나중에 팀장이 되더라도 현장을 모르면 안되니까. 그런 팀장은 내가 용납이 안 됐다. 이번 정리 팀장은 내게 작업반장을 해보라는 제의를 해주었고 고민끝에 수락했다. 왜 여성은 안 된다는 소리를 내가 들어야 하는지 용납해서는 안 됐다. 요즘 현장에 2030 세대들이 조금씩 들어오는데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그들이 스스로 한계를 정하거나 성장할 마음이 없어질 것 같았다. 여성 관리직이라는 롤모델이 없기도 했고,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내가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프레시안 : 가뜩이나 여성이 적은 현장에 여성 반장이라고 하면 주목도 많이 받고, 잘한 부분보다는 못한 부분이 더 보였을 것 같다. 남성 하급자가 대다수인 현장에서 어떻게 관리직으로서의 권위라고 할까, 그런 부분을 인정받았나.
권원영 : 여자만 수다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현장직 남성들도 수다가 많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뒷말도 나온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자신이 인정하는 수준의 능력이 증명되면 말을 따라온다. 이전의 현장을 인수인계 하느라 이번 현장에 2주 늦게 투입됐다. 우리 정리‧세대 팀장이 내가 출근하기 전 작업반장이 여성이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뒀다. 그랬더니 형틀목수, 철근, 해체팀 뿐만 아니라 현장 소장도 '여자가 작업반장을 한다고?'라는 질문이 나왔다더라. 그래서 우리 팀장이 재차 작업 반장이 여성이라고 못 박았다.
2주 뒤 내가 현장에 출근을 하니 '쟤가 그 여자 작업반장이야?'하면서 수군수군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장들은 진짜 실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 하는 양이나 모습을 보면 '진짜로 일 하러 온 거구나'라는 판단이 금방 나온다.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들 빠르게 작업반장으로서 인정해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일하기 편하다. 믿고 맡겨주니까, 그래서 나도 믿음을 주기위해서 더 열심히 일한다. 그래야만 내 팀원들도 눈치보지 않고 일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여자 작업반장에게 향하는 편견이 섞인 시선을 뚫고 인정을 받으려 더 많은 노력을 했을 것 같다. 고되진 않나.
권원영 : 힘들어도 재미있다. 여성 작업반장이라서 좋은 점도 있다. 세심하고 꼼꼼한 점이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팀원들 얼굴 표정만 봐도 전날 저녁에 술을 마셨는지, 현장에서 부상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또, 무슨 일을 잘 하는 지 장단점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맞는 작업량을 적절하게 잘 배치할 수 있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해줘야 능률이 올라간다. 이렇게 일 하는 것을 동료들이 보니까. 나를 더 잘 따라준다.
프레시안 : 팀원들에게는 어떤 팀장인가. 나이가 많은 남성 팀원도 있던데 그들을 통솔하는 노하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권원영 : 팀원들이 다른 팀으로부터 듣는 말이 '너네 팀장 무서워서 말도 못걸겠다'는 얘기다. 현장은 위험하니까 안전에 대한 주의를 단호하게 주는 편이다. 우리가 평일과 토요일까지 주 6일을 일한다. 토요일은 술 마셔도 되지만 평일은 술 마시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동료들이 일하다가 다치면 안 되니까. 술 마시고 현장에 투입되어서 순간의 어지럼증에 떨어지거나 찔리는 어이없는 산재사고들이 많은 게 바로 현장이다.
그러다보니 소리도 많이 지르고 욕도 하고 거칠게 일하기도 한다. 근데 그게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현장에서 동료들이랑 안 쫓겨나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어느정도 쇼맨십도 보여줘야 한다. 작업반장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공정 팀장이나 현장 소장이 우리팀을 무시할까봐 더 소리를 지르고 욕했을 수도 있다. 그 대신 우리 팀원들은 나 이외의 다른 간섭은 없이 편하게 일한다. 내가 만약 일도 못하고, 제대로 감독도 안하고 하면 현장 소장이 와서 잔소리 하니까. 내 현장과 내 팀원들은 내가 지켜야 한다.
프레시안 : 건설현장 특성상 다른 관리직들이 팀원들에게 간섭할 수 있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더 단호하게 팀원을 챙기는 모습이 인상깊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원영 씨가 일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젠가.
권원영 : 일이 힘든 건 없다. 다만, 이 현장이 끝나면 우리 팀원들하고 다음 현장을 이어서 해야 하는데 이어갈 현장이 없으면 그 사실이 가장 힘들다. 건설사들이 현장에서 건설노조를 잘 쓰지 않으려고 한다. 팀원들이 놀게 되어서 생계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느냐 하는 걱정이 크다. '쌀 살 돈이 없으면 전화하라'고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다들 걱정인데 얘기를 하지 않을 뿐이다.
프레시안 : 정부가 '건폭'이라는 프레임으로 건설노조를 압박하는 상황이 현장에 반영된 것 같은데,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은 어떻게 생각하나.
권원영 : 원래라면 현장에서 일거리가 계속 이어지는데 건설노조 조합원은 그러지 않으니 참 힘들다. 대통령이라면 국민을 먼저 생각해주고, 서민을 먼저 생각해줘야 한다. 그런데 너무 기업 위주의 자본주의로 가니까 안타깝다. 우리는 이제 이렇게 흘러가고 말지만, 미래 세대들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건설노조도 초심을 잃지 않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나도 현장이 바뀌거나 공정이 바뀌면 팀원들한테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아무리 일을 오래 해도 새로 가는 현장은 처음 시작하는 현장이니까 초보자다.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일하자고 이야기 한다. 자만하는 순간 다친다.
프레시안 : 차별의 순간도 있었지만 자신의 일을 설명하는 원영 씨의 표정에 생동감이 넘친다. 원영 씨를 이렇게 일하게 만들었던 동기는 무엇인가.
권원영 : 일을 안 하면 처지는 제 천성도 있다. 아이들 키우고 신랑 뒷바라지를 하느라 딱히 친구도 없다. 집에만 있으면 게을러져서 일을 시작했다. 일이 없으면 집에서 잠만 자는데, 일이 있으니 아침에 눈을 뜨고 갈 곳이 있다. 뿌듯하고 재미있다. 내가 지켜야할 팀원들도 있고, 일하는 게 힘들지만 재미있다.
프레시안 :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권원영 : 동료들이 인정해줄 때. '역시 권 팀장', '저는 권 팀장처럼 일 못해요' 이렇게 동료들이 인정해줄 때 뿌듯하다.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1인분은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현장마다 자리나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각이 다른데, 안 될 것 같은 공간에 자리를 확보하도록 연구해서 해내면 정말 뿌듯하다. 그렇게 본을 보이면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재미도 있다.
프레시안 : 원영 씨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
권원영 : 삶이다. 나를 움직이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일이 있어야 내가 움직이고, 활동을 하니까 새롭고 재밌다.
프레시안 :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
권원영 : 2030세대 친구들이 들어와서 보람을 느끼는 현장을 만들고 싶다. 위험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젊은 친구들이 현장에 와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물려주고 싶다. 형틀이나 미장이나 나이드셔서 정년퇴임 하셔야 할 선배들이 '이런 기술을 물려받을 한국 청년들이 별로 없다'고 아쉬워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현장에 많이 있는데 말이다. 자부심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2030 세대들이 부담 없이 와서 즐겁게 일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권원영 : 나답게, 즐겁게 일하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나답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나. 꾸미지 말고 솔직하게, 당당하게 일하자.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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