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남한산성 문화제, 굴욕이 아닌 호국의 성지인 이유를 설명한다

남한산성(광주)=손대선 기자 2023. 9. 1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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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펜데믹 이후 5년 만에 재개
조선시대 임금행차 어가행렬 재현
광주시, 역사·문화적 가치 적극 조명
내년이면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
15일 오후 28회째를 맞은 남한산성 문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어가행렬이 남한산성 행궁 한남루에서 시작하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서울경제]

올해로 28회째를 맞은 남한산성 문화제의 출발은 어가행렬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5시30분.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행궁의 정문인 한남루(漢南樓)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원색의 한복을 입은 취타대가 선두에 서 임금의 행차를 알렸다. 어가행렬은 임금을 비롯해 취타대, 문무백관 등 100여 명에 이르렀다. 선두에서 후미까지 70여m에 달한 어가행렬은 2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700m 남짓 떨어진 남한산성 문화제의 본무대 남문주차장을 향해 이동했다. 오전 내내 내린 가을비로 인해 도로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곤룡포 차림의 임금은 가마를 타지 않고 걸었다. 가마 속이 아닌 길 위에서 백성과 소통하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임금이 손을 흔들면 도로 양 옆으로 늘어선 시민 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며 화답했다.

어가행렬은 남문안로터리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무인들이 로터리 잔디밭에서 창과 칼로 대나무와 볏단을 베는 시범을 보였다. 시민들은 조선시대 왕권의 강력함을 냉병기(冷兵器)들의 절삭력을 통해 일부 나마 느낄 듯 싶었다.

로터리 주변으로는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저마다 간판을 통해 짧게는 십 수 년, 길게는 150년 전통을 선전하고 있었지만 어가행렬의 역사에는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역사책을 보면 남한산성 행궁은 1626년 겨울에 완공됐다. 어가행렬은 그 무렵 시작했을 것이다.

남한산성은 돌만 가지고 쌓은 것이 아니다. 약 12km에 이르는 내성과 외성 곳곳에는 다양한 역사가 쌓여있다.

최근 수년 동안 대중에게 각인된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과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만 놓고 보면 이곳은 결코 긍정적인 공간이 아니다.

15일 오후 광주시 남문안로터리를 지나는 남한산성 문화제의 백미 어가행렬. 사진 = 손대선 기자

한민족 역사 중 가장 숨기고 싶은 순간으로 지목되는 삼전도의 굴욕(1637년 2월24일)은 청나라의 침공에 맞선 남한산성 농성전이 실패하면서 빚어졌다. 인조는 성이 함락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걸어 나와 약 8km 떨어진 현재의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청 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군신의 관계를 확인했다. 항복의 길을 가면서 인조는 어가행렬을 준비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남한산성을 굴욕의 기억보다 항전, 호국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백제 초기의 유적이 많다는 이유로 남한산성의 기원을 백제 온조왕 시절의 성으로 해석한다. 실제 축성 기록을 근거로 남한산성의 뿌리를 통일신라시대에 두는 이들도 있다. 어찌 되었든 조선시대 보다 훨씬 이전, 그리고 더 오랜 기간 남한산성이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보루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는 2014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공인될 만큼 높다.

광주시가 남한산성 문화제를 28회째 이끌고 오며 시의 대표행사로 자랑하는 이유는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어가행렬 중심에 배치한 대형 천에 적힌 ‘남한산성과 함께한 우국충절의 천년/아름다운 광주 다시, 찬란한 남한산성’이라는 두 줄 문장은 광주시가 남한산성에 갖는 자부심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15일 오후 남한산성 행궁을 나온 어가행렬의 선두를 이끌고 있는 취타대. 사진 = 손대선 기자

이날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은 역사적 맥락보다는 어가행렬과 뒤이은 개막식의 공연 프로그램, 저자거리 먹거리 물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어가행렬과 행궁, 그리고 성곽에 담긴 다양한 가치가 미래세대에게 계승되길 원했다.

데이트를 위해 남한산성을 찾았다는 조모씨(26·남·성남시)와 강모씨(27·여·하남시) 커플은 “어가행렬의 웅장함에 뭔가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며 “임금이 가마에 타지 않고 걸어가며 시민과 소통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광주 오포읍 능평리에서 왔다는 40대 중반 강모씨(여)은 “혼자서 바람 쐬러 왔는데 어가행렬 취타대가 인상적이었다”며 “(취타대가)중학생부터 어른들까지로 구성돼 있던데 이런 이벤트는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관심 있게 봤다”고 말했다.

광주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거주한다는 초등학교 2학년 김유민 군은 엄마의 도움말을 받아 “빨강 색 옷에 금색 신발 신은 사람(임금)과 (무사들이)칼로 대나무 자르는 것이 재밌었다”고 수줍게 말했다.

김 군의 어머니는 “근처에 살긴 해도 최근에 이사와 남한산성의 역사에 대해 잘 몰랐고 빵이나 먹거리에 관심을 가졌다”며 “아이들이 행사를 즐기고 이해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계속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양에 거주한다는 60대 여성 두 명은 “여러 지역행사를 놀러 다니는데 음식값이 비쌌다. 여기는 순대 5000원, 떡볶이 3000원, 오뎅 1000원 정도로 싸다”며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먹거리를 즐기고 좋아하는 설운도 공연도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제28회 남한산성 문화제의 공식개막을 알리는 방세환 광주시장. 사진 = 손대선 기자

이날 무관 옷을 입고 어가행렬 일원으로 참여한 방세환 광주시장은 "남한산성은 지난 2000여 년 동안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호국의 성지로서 국난을 극복한 역사의 현장"이라며 “민족자존의 터전이자,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으로서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방 시장은 “광주시는 내년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기념해 남한산성문화제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5년 만에 열린 남한산성 문화제는 17일까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남한산성 행궁을 중심으로 산성 곳곳에서 펼쳐진다. 비가 오더라도 즐길 수 있는 콘서트, 라이팅쇼 등이 여럿 준비돼 있다.

남한산성(광주)=손대선 기자 sds11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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