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라떼는~부터 첫사랑까지 ‘밥 잘 사주는 예쁜 언니’ 이경은과의 솔직담백 토크
[점프볼=최서진 기자] 요즘은 말 한마디 잘 못하면 ‘꼰대’라는 별명이 붙는 세상이지만, 개인적으로 꼰대라는 단어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선배에게 쓴 피드백을 받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선배가 커피 한 잔하고 오라며 카드를 내민다면, 우리는 그 선배를 꼰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론 부를 수는 있지만, 그 선배는 삶의 도움이 되는 ‘좋은 꼰대’가 아닐까.
인천 신한은행에는 좋은 꼰대가 한 명 있다. 바로 프로 18년 차 이경은. 주장으로서 잔소리를 피할 수 없지만, 이경은은 아침에 ‘커피 한 잔씩 하자’며 후배들에게 커피를 사주는 쿨한 언니다. 물론 밥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 언니는 2010~2011시즌부터 2012~2013시즌까지 올스타 투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WKBL을 대표하는 얼짱이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언니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하지 않은가? 심지어 솔직, 화끈한 입담까지 보유한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9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무릎이 안 좋아서 재활 조를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매년 리듬이 있어요. 휴가 끝나고 돌아오면 보강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7월까지 몸을 만들고, 이후부터 뛰기 시작해요. 이번에는 대표팀에 차출돼서 시간이 조금 부족하기는 했죠.
일본 전지훈련은 어땠나요?
비행기를 최근 계속 타니 컨디션이 다운되긴 했어요. 호주에서 돌아오고 2일 만에 출국했거든요. 팀이랑 운동도 거의 못했고, 그 상태에서 경기를 뛴 거라 몸 상태도 안 좋았어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죠. 어릴 때 대표팀에 가서 일본이랑 경기하면 일본이 우리를 어려워했었거든요. 이제는 일본과 경기하면 우리가 배울 게 정말 많아요. 몸이 힘들긴 했어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요. 태국도 다녀오고 일본도 다녀왔어요.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은데, 태국은 처음 가보는 나라이기도 했고 10일 정도 있어서 더 좋았어요. 물가가 워낙 저렴하니 부담 없이, 계획 없이 다녀왔어요. 음식도 생각보다 맛있었고요. 다만, 엄청 더웠어요. 그래서 밖에 거의 못 돌아다니고, 호텔에서 많이 놀았어요. 더우면 물에 들어가고 잠깐 시장 같은데 구경하고 오고요.
물놀이 좋아하시나요?
물은 좋아해요. 씻기가 귀찮을 뿐이죠(웃음). 또 피부가 타는 게 걱정이죠. 지금 되게 까맣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빨갛게 익다가 돌아오던데, 저는 바로 촌사람처럼 까매져요. 나쁜 것도 아니고 신경 안 써도 되긴 하는데, 애들이 엄청 놀려요. ‘언니 왜 이렇게 까매요. 농사짓다 왔어요?’하면서 놀리니까 신경이 좀 쓰이더라고요(웃음).
MBTI가 뭐예요?
음…ESFP가 나오긴 했는데, 어떤 질문에 답을 했어요. 그 대답의 결과가 공감 능력을 학습한 T의 답변이라고 하더라고요. T는 맞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되게 현실적이거든요. 근데 단체 생활하면서 공감하고 그러다 보니 학습된 F가 된 거죠.
취미 부자잖아요. 이번에도 캠핑 다녀오셨나요?
못 갔죠. 휴가 때도 거의 잘 못 갔고, 요즘 가려고 하면 너무 더워서 엄두가 아예 안 나요. 겨울에 난로 들고 가면 추워도 버틸 수 있는데, 여름은 불도 못 쬐고 선풍기로 버틸 수가 없어요.
세차는요?
이번 주말에도 했어요. 예전에는 왁스도 칠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거든요. 깨끗해지는 거에 만족도가 높아서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까지 안 해요. 물 뿌리고 거품 칠하고 때가 싹 내려가면서 반짝반짝해지는 건 여전히 좋죠. 전에는 휠 브러시 가지고 휠까지 다 닦을 정도였어요(웃음).
KDB생명에 있을 때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최근에 (이)혜미랑 몇 명이 세차도구 샀다고 하더라고요. 한 번 데리고 갈까 생각 중이에요. 같이 세차 싹하고 밥 먹으면 정말 재밌거든요. 힘들어도 뿌듯하죠.
새로 생긴 취미도 있나요?
취미를 즐길 시간이 없어요. 그나마 요새 커피를 자주 내려 먹어요.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매해서 여러 음료를 만들어보면서 홈 카페를 하고 있죠. 집에서 이것저것 하는 걸 좋아해요. 미니 화로에 고기를 구워먹기도 하죠. 이러니까 취미 부자라고 하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로 왜 남자친구 안 만나냐고 하는데, 워낙 할 게 많으니까 안 만나는 것 같아요. 아 근데 핑계고(웃음) 만나려면 만나죠. 누구랑 같이하면 더 좋을테니까요.
첫사랑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사실 남자는 많이 바뀌었어요(웃음). 첫사랑은 한 고등학교 때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도 종종 만나고 연락해요. 며칠 전에는 ‘(결혼) 먼저 간다’ 이렇게 연락이 와서 ‘잘 가라. 넌 좀 가야 해’라고 답했죠.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에 다녔고 워낙 오래된 일이기도 해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채진 선수 결혼식을 보고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셨나요?
(한)채진 언니 결혼식 전에도 수많은 결혼식을 봤어요. 하고 싶었던 시기는 있었죠. 30대 초반까지는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이제는 그 시기가 지나서 그런가 결혼 생각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결혼해서 불행해지는 사람들도 종종 있잖아요. 예전에는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굳이 저렇게 행복하지 않을 결혼을 찾아서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늦게라도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지만, 억지로 ‘결혼해야 해’하며 찾아서 할 생각은 아직 없어요.
취미가 많아서일까요?
애들도 그래요. ‘언니 캠핑장에 가서 혼자 캠핑하는 사람을 만나봐’이러는데 또 그런 성격은 아니에요(웃음).
아 줏대 없는 남자는 또 싫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제가 못 만나는 것 같아요.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리드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또 서로 취미를 공유하는 게 좋지. 한 사람을 무작정 따르는 것도 별로라고 생각해요.
또 해보고 싶은 취미 생활이 있다면요?
계절 스포츠도 좋고, 도마 같은 거 만드는 목공도 좋아요. 아기자기한 소품 만드는 것도 해보고 싶어요. 호기심도 많고, 목공은 캠핑이랑 연관되거든요. 만들면 캠핑 가서 쓸 수 있으니까요. 목공 클래스를 가보고 싶은데 아직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도대체 캠핑의 매력은 뭔가요?
숙소 생활을 하다 보니 단체 생활에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은 마음도 있고 불 냄새가 좋더라고요. 나무 타는 냄새가 좋아서 불멍하며 혼자 생각도 하죠. 가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집중되니까 좋아요. 집에 있으면 가만히 소파에만 있는데, 캠핑 가면 계속 움직이니까 재밌더라고요.
요즘도 너구리 키링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면서요?
팬들이 이 다크서클 때문에 판다, 너구리라고 별명을 붙여주셨죠. 그러다 갑자기 팬들이 ‘조폭 너구리’라 부르셨어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부딪치니 싸우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가끔 코치님이나 외국선수들도 라쿤이라 부르기도 했어요(웃음).
새로워진 신한은행 연수원 어떤가요?
정말 좋아요. 대표팀 갔다 일본 갔다가 이제 제대로 처음 써봐요. 처음보고 ‘정말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런 환경이었으면 농구하는 게 더 재밌었겠다 싶어요. 이전까지 오피스텔에서 체육관을 오가는 시스템으로 지냈고, KDB 때는 체육관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죠. 여기는 농구를 잘할 수 있게끔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어서 정말 감사하죠. 어린 선수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거란 걸 알아요.
지하 2층에 있는 시설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어요. 굳이 1순위를 꼽자면 농구 선수니까 코트. 바닥을 정말 많이 신경 써주셨어요. 뛰어보면 알아요. 웨이트트레이닝장에는 천장에 농구코트 모양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요. 새거니까 당연히 좋지만, 그것보다 신경 써준 마음이 느껴지잖아요.
KDB생명 때는 분실물도 많았다고 알고 있어요.
라커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찜질방 라커룸 같은 느낌이었어요. 가끔 나쁜 사람들이 신발도, 테이핑도 가져가더라고요. 이거 말고도 잃어버린 게 많을 거예요. 돈도 잃어버리기도 했죠. 당시 현금을 많이 쓸 때였고, 보너스를 봉투로 받으면 통째로 사라지는 일도 있었죠. 또 체육관은 우리만 쓰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 되면 쫓기듯 나가는 날도 있었고요.
상황이 많이 열악했네요?
근데 사실 그때는 잘 못 느꼈어요. 처음부터 그런 환경에서 시작했기에 원래 그런 줄 알았죠. 숙소에 가면 지원 같은 건 또 빠짐없이 다 해주셨거든요.
FA 계약 후 구나단 감독이 밥 잘 사주고, 커피 잘 사주는 쿨한 선배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어요. 여기서도 이어지고 있나요?
이제는 안 사줘도 돼요. 위에 좋은 커피 머신이 있어서 다 내려 먹죠(웃음). 그때는 커피 머신이 없기도 했고 제가 커피를 좋아해서 많이 사줬던 것 같아요. 아침에 커피 마시면 기분 좋잖아요. 지금은 팀에서 간식비도 잘 나와서 걱정이 없어요.
다시 주장을 맡으셨는데, MZ세대 다루기는 어떤가요?
30대 초반이나, 그 밑이었을 때는 후배들 보고 ‘어떻게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좀 더 지나고 보니 시대가 바뀌었구나 싶어요. 세상이 이미 바뀌었기에 제가 바꿀 수 없죠. 저도 라떼는~하는 것도 싫고, 감독님 코치님도 젊어서 분위기는 잘 맞는 것 같아요. 가끔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건 옛날이야기죠.
스스로 꼰대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죠(웃음). 말을 안 하고 표현을 안 하는 것뿐이지 혼자서 ‘이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어요(웃음). 지금 애들이 경기 뛰는 모습을 보면 좋은 세상에 태어났다 싶기도 하고요. 사실 제 포지션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뛴다는 게 좋은 건 아니에요. 지휘해야 하는데, 언니들이 ‘안돼. 그거 하지 마’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언니들이 좋아하는 것만 해야 하나 눈치를 많이 봤었거든요. 각자의 성격 차이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언니들이 없고 감독님, 코치님 모두 자신 있게 하라며 기회를 주는 상황이죠.
특히 이번 오프시즌에 어린 선수들이 많이 뛰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언니들이 팀을 끌고 갈 수는 없는 거니까 어린 선수들을 키워야 하는 게 감독님, 코치님의 몫이죠. 근데 가끔 화가 나는 부분은 좋은 기회를 받고도 피하고 무서워한다는 거예요. 혼날까 봐 무섭고 실수할까 봐 두려울 수 있지만, 코트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죽기 살기로 하고 어린 나이답게 부딪치는 모습을 보여야 조금이라도 눈에 더 띄는 건데. 요새 애들은 다 비켜줘서 욕심이 없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 꼰대의 마음이 이글이글하죠.
그래도 많이 삼키시죠?
원래 겉으로 표현을 잘 안 하는 성격이에요. 3번까지 참다가 안 되겠으면 얘기하는 편이죠. 저는 평화주의자예요. 이 부분이 가끔 독이 될 때도 많은 것 같아요. 할 말 있으면 그냥 얘기하면 되는데 ‘지금 굳이 한마디 더 해서 뭐해’라는 생각이 들어 참게 되죠.
(강)계리가 많이 도와줘요. 제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먼저 나서서 도와주니 부담이 줄어요. (김)아름이나 구슬같이 중간에 있는 친구들도 있고요. (김)소니아도 자주 얘기를 하는데, 이 친구만의 다른 문화는 분명 있지만 이제 거의 한국 사람이에요(웃음). ‘뭐야 너네 똑바로 안 해’라고 말하기도 하거든요.
이경은은 지난 6월 아시아컵을 위한 여자농구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무려 8년만. 2015년 FIBA 여자 아시아선수권대회가 마지막이었다. 잦은 부상에 발목을 잡혀 대표팀과 멀어졌지만, 지난 시즌 회춘했고 당당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아시아컵 예선 중국과의 경기 결과는 패였지만, 이경은은 승부처에서 빛나며 17점 2리바운드로 활약했다.
8년 만에 국가대표 발탁은 어땠나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왜?’ 싶었어요. 잘 뛰고 건강한 선수가 많고, 몇 년 전부터 대표팀이 세대교체를 한다고 들었거든요. 저를 뽑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지만, 제가 가서 도움이 될까 싶었어요. 대회 시기도 일렀고 휴가 때 들어가서 몸을 만들다 보니 부담이 컸어요. 중국전의 과정을 많이 이야기해주시는데 중요하지 않아요. 이겼어야 했어요. 목표를 이루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해 8월 14일에 다시 대표팀이 소집되는데, 아시아컵 때와는 몸 상태가 다르지 않을까요?
그렇죠. 그때 우리는 뛰면서 이상하다 싶었어요. 핑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훈련한 지 2주 만에 라트비아에 가서 경기를 뛰었는데, 저는 안 다치고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돌아와서 다시 연습하는데 부족한 게 정말 느껴졌어요. 연습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대회에 나가야 했죠. 그래도 대표팀으로 나가면 모두 사명감이 넘쳐요. 목표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죠.
고참으로 뛰는 국가대표는 어땠나요?
전에는 들어가면 언니들 있으니까 따라 운동만 하면 됐어요. 팀 훈련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팀에서 잘한다는 선수들이 와서 뛰는데 어린 아이들 끌고 가듯이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어 부담스러웠죠. 가보니 이미 체계가 잡혀있더라고요. 따라만 가면 됐고, 주장인 (김)단비를 도와주는 정도의 역할만 하면 되더라고요.
이소희 선수가 덕분에 많이 웃었다는 이야기를 하던데요?
제가 뭐만 하면 (이)소희가 엄청 웃었어요. ‘언니. 진짜 우리 팀 오면 안 돼요?’라고 하더라고요. 웃겨서 자기 팀에 오라고 자꾸 한 거구나. 제가 인상이 차가운가 봐요. 처음 보면 무뚝뚝해 보이는데, 생활해보면 그렇지 않으니 소희도 그렇고 댕댕이(박지현)도 엄청 웃는 것 같아요.
지난 시즌까지 504경기를 출전해 역대 통산 경기 수 7위에 올랐어요. 어디까지 욕심나시나요?
500경기까지 뛸 수 있을지 정말 몰랐어요. 하다 보니까 그냥 된 거죠. 어쨌든 제가 어떻게 건강하게 잘 뛰느냐가 중요해요. 그렇게 하다 운이 좋으면 계속 더 뛰게 되겠죠.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번 시즌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감독님이 추구하시는 농구는 로테이션이 많고 스피드로 승부를 보기에 어린 선수들이 실력 차를 줄이고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어린 선수들이 많이 성장했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당연히 성적은 플레이오프 이상이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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