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지만 꿈이 있어 행복한 축구 꿈나무들

정윤성 인턴기자 2023. 9. 1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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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축구 인생2막’ 노리는 재기 전문 구단 TNT FC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프로 데뷔’라는 바람은 하나

(시사저널=정윤성 인턴기자)

9월8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서도 훈련 중인 축구 선수들의 얼굴엔 활기가 돌았다. 하나같이 짙게 그을린 선수들은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필드를 누볐다. 한 선수는 작정하고 찬 공이 골대를 빗나가자 아쉬운 듯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이어진 주변의 격려에 그는 다시 공을 향해 내달렸다. 국내 축구 5부리그(K5리그) 소속 TNT FC의 정기 훈련 모습이다.

TNT FC는 2000년 4월 서울 강남구 지역 동호회로 시작했다. 2014년부터 180여 명을 국내외 프로와 세미프로에 데뷔시키며 '재기 전문 구단'으로 국내 아마추어 리그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선수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프로 데뷔'라는 하나의 꿈 아래 매일 이곳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9월8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K5리그 TNT FC 소속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하부리그 활성화로 상부 진출 길 열려

국내 하부리그는 역사가 짧다. 리그가 세분화된 디비전 시스템이 정착하기 전까지 하부리그는 생활체육에 지나지 않았다. TNT FC도 K5·6·7리그가 생기고 하부리그 소속 선수의 상부리그 진출이 가능해지면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김태륭 TNT FC 대표는 2014년부터 5년간은 '돈과의 전쟁'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연간 3000만원 정도의 구단 유지비를 사비로 충당했다"며 "어느 날 집에 갔는데 아내가 통장을 보면서 울고 있었다. 그때부터 후원을 받기 위해 발로 뛰는 등 재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변변한 유니폼조차 갖추지 못했던 팀의 재정 상황은 점차 나아졌다. 일주일에 훈련 두 번이 전부인 동호회였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선수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프로를 꿈꾸며 찾아오는 선수들이 부쩍 늘어났다"며 "훈련의 양과 질, 구단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갖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지금의 체계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패자부활전'을 치르기 위해 선수들이 모인다. '상부리그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경북 지역 초·중·고등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한 최현씨(20)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TNT FC 입단을 선택했다. 하루라도 빨리 성인 무대에서 경쟁하는 게 성장에 도움이 되리란 판단에서였다.

대학축구가 축소되는 지금의 기조에 따라 최씨 같은 선수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TNT FC 선수의 약 80%가 22세 이하로 구성돼 있을 정도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초·중·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후 프로 데뷔를 못 하면 대학에 가는 것이 정도(正道)였다"며 "그러나 유럽처럼 한 단계씩 올라갈 수 있는 하부리그 시스템을 도입하고부터는 오히려 대학에서도 찾아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8부리그에서 국가대표까지 오른 영국의 축구선수 제이미 바디의 사례도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대표는 4~5년 전에 비해 지금은 선수들의 나잇대가 크게 낮아졌다고 했다. 과거에는 프로선수로 활동하다 계약해지나 부상 등으로 하부리그에 내려온 선수가 많았다. 그만큼 연령층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부리그가 활성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TNT FC에서 기존 감각을 유지하거나 실력을 키워 상위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유년기부터 축구를 시작한 이들 중 프로에 데뷔하는 선수는 1%도 되지 않는다. 어렵게 프로에 입성해도 주전을 꿰차기는 더욱 힘들다. 나머지 99%를 위한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다. 최씨도 스스로를 '흔하지만 성실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성실함만으로 넘을 수 없는 벽도 분명히 존재했다.

최씨는 "학연과 지연, 뒷배 같은 것이 피부로 느껴질 때마다 많이 힘들었다"며 "공평한 경쟁 구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을 봤을 때는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TNT FC에 입단한 지금, 최씨는 새로운 도전이 즐겁다고 말한다. 그는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지금 내가 노력하고 있는 것이 축구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부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TNT FC 소속 선수들만의 어려움도 있다. 프로선수들과 달리 소득이 없어 축구만으론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시원에서 생활해 오다 최근 구단 숙소로 거처를 옮긴 최씨는 "지금은 부모님이 숙소 비용 정도는 지원해 주시지만 프로 데뷔가 더 늦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팀의 부주장을 맡고 있는 신호연씨(23)도 "팀의 한 달 회비 30만원이 없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선수도 있다"며 "소득이 없는 상황이라 조급해질 때가 있다"고 했다.

9월8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K5리그 TNT FC 구단주 김태륭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한국 축구계 비주류들에게 힘 될 것"

김 대표는 소속 선수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향후 일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현재 TNT FC는 수당 지급이 가능한 K4리그 승격을 준비 중"이라며 "승격에 성공할 경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수들이 다시 꿈을 향해 달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꼽은 TNT FC의 지향점은 꾸준함이다. 리그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부터 지켜온 꾸준함이 지금의 TNT FC를 만들었다. 그 결과 TNT FC는 현재 하부리그의 롤모델이 됐다. 많은 신생 구단이 TNT FC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자연스레 리그 전반의 수준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그는 "우리는 비주류지만 꿈이 있다"며 "그 꿈을 향한 꾸준한 노력으로 우리와 같은 한국 축구계의 비주류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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