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건 기소 트럼프 ‘사법 리스크’…대선가도 약 될까 독 될까 [세계는 지금]

유태영 2023. 9. 1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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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美 대선 최대 변수 가능성
첫 기소 전직 대통령 오명 업고 경선 예고
슈퍼화요일 전날인 3월4일 형사재판 시작
민주주의 근간 공격 ‘1·6 사건’ 가장 심각
1월 경선 개막된 이후 법정에 발 묶일 듯
대선 뒤집기 사건은 TV·유튜브 생중계
머그샷 흥행에 자극… 유세장 활용 가능성
유권자 직접 시청 ‘마이너스’ 작용할 수도
재판장·배심원단 성향도 재판 변수 부상
바이든도 차남이 불법 총기 소지로 기소
‘부메랑 될라…’ 트럼프 법적문제에 무대응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기소되지 않는다.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취임 이래 한 번도 깨지지 않은 원칙이다. 행정 최고 책임자가 수사선상에 오르면 “헌법상 부여된 직무 수행에 심각한 방해”가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재임 당시 백악관 인턴과의 성추문에 휩싸였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탄핵 문턱에서 살아남았고 기소도 되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광범위한 민사 소송 면책권을 받는다. 대통령이 결정한 사안에 소송으로 딴죽을 거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형사 사건도 비슷하다. 여기에는 전직 대통령 기소 시 정치 보복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진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조차 기소를 피해 갔다. 사임한 닉슨을 후임자 제럴드 포드가 사면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립대와 아이오와대 간 미식축구 라이벌전을 관람하기 전 아이오와주립대 사교클럽을 찾아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아이오와는 2024년 1월15일 공화당 첫 경선이 열려 초반 판세를 좌우하는 지역이다. 에임스=AP연합뉴스
미국이 230여년 간 이어 온 불문율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되면서 깨졌다. 성추문 입막음을 위해 돈을 건네고 회사 비용으로 처리한 혐의로 지난 3월 뉴욕주 형사재판에 넘겨져 ‘미 역사상 처음 기소된 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쓰더니, 지난 6월에는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혐의로 ‘연방 피고인이 된 첫 전직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에도 2021년 1·6 의회 폭동을 부추긴 혐의, 2020년 조지아주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로 기소가 이어졌다. 대통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머그샷(범인 식별 사진)까지 찍었다.

내년 3월4일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4건의 형사 재판 일정은 백악관에 복귀하려는 그의 야망에 걸림돌이 될 수도, 지금껏 기소될 때마다 지지율이 반등해 공화당 1위 주자 자리를 굳혔던 것처럼 호재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1년2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나란히 가는 대선·재판 일정

기소됐다고 해서, 심지어 유죄 선고를 받더라도 트럼프의 대선 입후보를 막지는 못한다. 미 연방헌법의 대통령 자격 요건은 ‘미국(령) 태생’, ‘14년 이상 미 거주’, ‘35세 이상’ 세 가지뿐이다. 옥중 출마 전례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형사 재판 일정은 3월 워싱턴에서 같은 달 뉴욕주, 5월 플로리다주로 줄줄이 이어진다. 1월15일 아이오와주에서 막을 올리는 공화당 경선부터 대선 때까지 광활한 미 전역을 누비며 유권자를 만나야 할 사람이 법정에 발이 묶이는 셈이다. 공화당 경선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 대사는 “트럼프는 유세 현장이 아닌 법정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막대한 재판 비용도 문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각종 정치활동위원회(PAC)의 올해 상반기 지출이 9000만달러(약 1200억원)로 같은 기간 모금액 6700만달러를 초과했다고 보도했다. 지출액의 30%가량인 2720만달러(363억원)가 변호사비와 재판 준비에 쓰였다. 본인 재판 비용도 치솟은 터라 대선 뒤집기 사건의 공범으로 기소된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소송비 지원 요청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선 뒤집기 사건은 TV, 유튜브 생중계까지 된다. 이 사건을 맡은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고등법원의 스콧 맥아피 판사가 최근 풀기자단의 영상 촬영 및 음성 녹음을 전제로 이를 허용했다. 이 사건으로 머그샷을 찍은 지 이틀 만에 700만달러(93억원) 후원금을 모은 것처럼 생중계되는 재판을 대선 유세장처럼 활용할 수도 있지만, 시청자들이 배심원처럼 법정 공방을 생생하게 지켜보게 된다는 위험성이 도사린다.

◆어떤 사건이 중요한가

트럼프는 4개 사건 91개 혐의를 모두 부인한다. 특히 선거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대통령 직무 수행의 결과로 일어난 일이므로 면책 대상이 된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관측된다.

미 언론들은 1·6 폭동 관련 사건이 가장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이었던 그리고 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미 민주주의의 근간을 공격한 혐의여서다. 잭 스미스 특검은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이듬해 1월6일 조 바이든의 대선 승리 인증을 위한 의회 합동회의를 방해했다며 ‘미국에 대한 사기’ 등 4개 혐의로 기소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공정한 마음으로 이 사건 공소장을 읽으면 한 가지 확실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며 “트럼프는 다시는 오벌오피스(백악관 집무실) 근처에도 들어올 수 없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사건의 연장선상에 트럼프 이름을 투표 용지에서 빼야 한다는 민사소송도 제기됐다.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했던 사람이 내란에 가담하거나 헌법을 위협한 적을 지원하면 향후 공직을 맡을 수 없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14조 3항이 근거다.
문제는 법 적용과 사실관계의 모호함이라고 NYT는 짚었다. 특검이 제기한 혐의가 이런 종류의 사건에 적용된 전례가 없어 트럼프 측에 반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가 ‘선거 사기’ 주장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이를 퍼뜨렸다는 점을 특검이 입증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트럼프가 “우리는 절대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1·6 사태를 부추겼다는 특검 주장에는 수정헌법 1조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는 반론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다른 공모자는 공소장에 언급만 하고 트럼프를 단독으로 기소한 점이나 내란 선동 혐의를 뺀 것은 이런 논란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반대로 기밀 유출 사건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처벌 전례도 많아 4건의 형사 사건 중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다. 연방수사국(FBI)이 트럼프 자택에서 확보한 문건, 트럼프가 손님들에게 기밀을 보여 주며 자랑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 등 관련 증거도 풍부하다.

◆재판 과정 변수는

재판 최대 변수로는 재판장과 배심원단 성향이 꼽힌다. 공교롭게도 유죄 입증이 난해할 것이라는 1·6 폭동 관련 사건은 트럼프에게 적대적이었던 판사에게, 가장 간단하다는 기밀 유출 사건은 호의적인 판사에게 배당됐다.

1·6 사건을 맡은 워싱턴 연방지법의 타니아 처트칸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판사로 임명됐다. 그는 1·6 사건을 조사한 하원 특별위원회가 백악관 문서를 입수하는 것을 막아 달라는 트럼프 측 요청을 “대통령은 왕이 아니며, 원고는 대통령도 아니다”라고 일축한 적이 있다. 1·6 사태 주동자에 대한 중형 선고를 주도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립대와 아이오와대 간 미식축구 라이벌전을 관람하기 전 아이오와주립대 사교클럽을 찾아 오른손에 미식축구공을 들고 왼손 검지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아이오와는 2024년 1월15일 공화당 첫 경선이 열려 초반 판세를 좌우하는 지역이다. 에임스=AP연합뉴스
최근에는 재판을 2026년 4월 이후로 미뤄 달라는 트럼프 측 요청에 퇴짜를 놓으며 “신속한 재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다”고 했다. 그가 공판 개시일로 잡은 내년 3월4일은 15개 주에서 공화당 예비선거 혹은 당원대회가 열리는 ‘슈퍼 화요일’ 하루 전이다. 재판이 3주를 넘기면 성추문 입막음 관련 사건 재판 일정과 겹치게 된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워싱턴에서 배심원이 선정된다는 점도 트럼프에게 불리하다.

반면 기밀 유출 사건을 맡은 플로리다 연방지법의 에일리 캐넌은 트럼프의 지명을 받아 판사가 됐다. FBI가 회수한 기밀을 법무부가 아닌 특별조사관이 검토해야 한다는 트럼프 측 요청을 수용한 바도 있다.

기밀 유출 사건 배심원단은 트럼프가 2020년 대선 때 과반 득표를 한 플로리다 남부 5개 카운티에서 뽑힐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에게 호의적인 배심원이 뽑힐 확률, 다시 말해 12명 만장일치가 필요한 유죄 평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주 법원에서 진행되는 대선 뒤집기 시도(조지아), 성추문 입막음 관련(뉴욕) 사건도 나머지 2개의 연방 사건 못지않게 중요하다. 트럼프는 차기 대통령이 되면 본인을 사면하겠다는 뜻을 측근들에게 공공연히 밝혀 왔다. 그러나 주 법률에 따라 제기되는 형사 사건 결과를 대통령이 사면으로 해결할 권한은 부족하다고 NYT는 지적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차남 헌터 바이든. AP연합뉴스
◆바이든의 대응은?

바이든 대통령 측은 트럼프 형사 사건에 무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바이든 재선 캠프의 세드릭 리치먼드 공동위원장은 ABC방송에 나와 “대통령(바이든)은 처음부터 독립적인 법무부를 원한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트럼프의 법적 문제에 (선거운동의)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포장하는 트럼프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트럼프 사건을 잘못 건드렸다가 자칫 본인 사법 리스크가 주목받을 수도 있다. 바이든은 부통령 시절 취득한 기밀을 제때 반납하지 않아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트럼프처럼 회수를 거부·방해하지는 않았고 현역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기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차남 헌터 바이든 사건은 얘기가 다르다. 데이비드 웨이스 특검은 2018년 마약 중독 사실을 감추고 총기를 불법 구매·소유한 혐의로 헌터를 14일 기소했다.

이날 기소는 헌터가 해외 사업을 할 당시 미 부통령이었던 부친의 영향력을 활용한 의혹을 고리로 공화당이 바이든 탄핵 조사에 착수한 지 이틀 만에 이뤄졌다. WP는 “탄핵 조사와 직계 가족 기소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대통령에게 엄청난 좌절”이라고 평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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