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빠져 휴학까지 했던 법대생, 광고 600편 찍은 인기 성우 되다[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
하지만 생각해보라. 그 보여주는 것에 ‘사운드’가 없다면 어떨까. 당장 유튜브를 틀어놓고 음 소거를 눌러보자. 자막 등을 통해 내용은 짐작할 순 있다. 허나 그 거세된 침묵은 단순히 결여 이상의 뭔가를 앗아간다. 그래서 소리는, 특히 인간의 목소리는 원초적인 아날로그이면서도 영원히 본질적인 필요조건일 수밖에 없다.
성우(聲優)란 직업은 그렇기에 고전적이자 미래지향적이다. 음성으로 정보와 감정을 전달하는 일은 기나긴 역사를 지녔는데도 여전히 강력한 가치를 지녔다. 물론 인공지능의 위세가 어디까지 갈지 가늠하긴 어려우나, 인간만이 담아낼 목소리의 쓸모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소통하는 한.
최하리 씨(33·본명 최정윤)는 2017년 KBS 공채 입사를 시작으로 올해 8년 차가 된 전문 성우다. 이름만 대도 아는 전설적인 성우들에 비하면야 까마득하지만, 이미 SK텔레콤·카스 등 굵직한 광고 600여 편에 출연해 만만찮은 경력을 쌓았다. 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에도 숱하게 출연해, 막상 들어보면 “아, 이 목소리!”하며 반색할 이들이 적지 않다. 그에게 성우의 길을 걷게 된 사연과 청년 성우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최하리 성우가 내레이션을 맡은 광고 (1)
최하리 성우가 내레이션을 맡은 광고 (2)
“에구, 제가 무슨…. 그냥 직장 다니다 홀로서기 중인 자영업자인걸요. 포털사이트에 프로필 뜨는 것도 솔직히 민망해요. 어쨌든 성우로는 2017년 KBS 공채 합격해 기수로는 42기고요. 2년 전속계약 끝나고 프리랜서로 나선 지는 5년 됐습니다. 다행히 좋게 봐주신 덕에 바쁘게 살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성우가 꿈이었나요.
“아, 많이 받는 질문인데…. (좀 식상한가요?) 아뇨, 그게 아니라 답하기가 참 어려운 거 같아요. 10대 때부터 성우가 되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가진 능력으로 잘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은 게 성우긴 하거든요. 그래서 보통 그때그때 맞춰서 답해드리는 편이에요.”
-맞춤형 답안이 있다는 게 재밌네요.
“게임 업계 분들을 만나면 게임 덕후였으니 ‘덕업일치’를 이뤘다고 말씀드려요. 색다른 걸 원하시면 법대 다니며 변호사를 꿈꾸다가 언변 실력을 키우려고 성우학원에 등록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렇게 얘기하죠. 사실 어떤 일의 결과는 여러 다양한 이유와 과정이 뒤섞여서 나오는 거잖아요. 뭐든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설명하는 게…, 항상 쉽지 않네요.”
-심오한데요. 원래 생각이 깊은 편인가요.
“아뇨, 아뇨. 그저 남들과 엇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30대일 뿐이에요. 어릴 때는 천방지축이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 왔는데, 그전까진 인천에서 살았어요. 학교 끝나면 가방 내팽개치고 나가서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뛰어노는? 애들이랑 장난도 많이 치고 싸움박질도 많이 하고요, 하하. 부모님도 좀 방목하는 스타일이었다고나 할까요. 세 살 터울 남동생한테 물려줘야 한다며 옷도 남자애들 같은 옷만 입히셨어요.”
“그러니까요. 전학 와서 문화적 충격이 엄청났어요. 학원 다니고 공부 빡세게 하는 건 둘째 치고, 말투나 분위기 자체가 다르니까요. ‘밥 먹자’가 아니라 ‘밥 먹을래’라고 말하잖아요. 뭔가 드라마에서 봤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 느낌? 가장 다른 건, 같은 반 친구 사이에서도 ‘서열’이 존재한다는 게 제일 쇼크였어요. 잘 살거나 공부 잘하거나 하는 애들은 끼리끼리 어울리고. 그런 게 좀 힘들었어요.”
-적응이 쉽지 않았나 보네요.
“다행히 크게 개의치 않는 성격이었어요. 제가 좀 자그마하긴 하지만, 운동을 엄청 좋아해요. 달리기는 초중고 내내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수영도 10년 이상 했고요. 인천 때도 항상 맨 앞에 앉다 보니 툭툭 건드리는 애들이 가끔 있었는데, 저희 엄마 모토가 ‘한 대 맞으면 열 대로 되갚아라’였거든요, 하하. 요즘 같으면 큰일 날 소리지만, 그땐 애들도 한번 치고받고 나면 오히려 더 친해졌고요. 그래서 서울에서도 니들이 그러든 말든 하고 제가 하고 싶은 거 했어요. 그래서인지 고깝게 보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혹시 ‘왕따’를 당했나요.
“말씀드리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중학교 때 좀 심했는데, 몇몇이 주도해서 애들한테 저랑 어울리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어요. 물리적 폭력은 안 당했지만, 반 전체가 저한테 등을 돌린 느낌 아시나요. 그때 혼자 제 방 옷장에 들어가서 참 많이 울었는데…. (부모님이 아실까 봐?) 그것도 있고, 뭔가 나만의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 필요했나 봐요. 그리고 장녀다 보니 어릴 때부터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는 게 집안 분위기였거든요. 서울에 처음 전학 올 때 학교도 저 혼자 찾아갔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혼자 견디고 이겨내려고 했던 거 같아요.”
-문제는 잘 해결됐습니까.
“좀 어이없게 끝났어요. 결국 선생님도 알게 되시고, 사안이 심각하다고 여기셨는지 양쪽 부모님들도 학교에 오셨죠. 그 이후로는 딱히 건드리진 않더라고요. 저도 저 나름대로 다른 친구들이 생겼고. 근데 그거 아세요? 전 그때 따돌림을 주동한 애들보다 못 본 척 하는 나머지 아이들이 더 무서웠어요. 제가 당함으로써 자기들은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안도하는 모습도 봤고요. 뭔가 세상의 이면을 너무 빨리 마주한 기분이었죠.”
-트라우마로 남진 않았나요.
“말씀드렸듯이 악바리 성격이라 씩씩하게 이겨냈죠. 왕따 사건 이후에 보란 듯이 반장선거도 나갔어요. 2표밖에 못 받았지만, 하하. 그리고 실제로 2학기엔 반장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도 생생한 걸 보면 상처는 아물었을지언정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닌가 봐요. 그래서였는지, 고교 때는 철학이나 인문학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람은 왜 사는가, 뭘 위해 사는 걸까 같은 고민이었죠. 교과서보다 그런 분야 책들을 더 많이 읽었어요. 법대에 가게 된 것도 인간사회에서 규율, 법칙이란 게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다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아마 아빠 엄마는 판검사 하려나 보다 싶어서 좋아하셨을 거예요. 근데 전 진짜 ‘학문’으로서 법학이 궁금했어요. 세상을 움직이는 이치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다행히 성적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대학 가서 법학과 생활도 좋았어요.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으셔서 헌법 형법 수업이 재밌었어요. 한번 빠지면 끝까지 파는 성격인지라. 변호사란 직업도 매력 있죠. 기왕이면 사회에 도움 되는 국선변호사나 법률구조공단 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당찬 느낌이 잘 어울리네요.
“웬걸요. 맘먹으면 실행해야 해서, 실제로 공단에서 인턴을 했었어요.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아무나 하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라는 걸. 그때 멘토 역할을 맡은 여성 변호사분이 계셨어요. 당시 만삭의 몸이셨는데 잠깐의 쉴 틈도 없이 일하시더라고요. 정말 온몸이 피곤에 짓눌렸는데도 사명감으로 그걸 버텨내시는 걸 보며, 존경스러웠지만 제 주제 파악도 됐어요. 함부로 겉멋에 취해 도전할 일이 아니었어요.”
-말 그대로 ‘현타’가 왔군요.
“네, 그때 좀 방황했어요. 계속 학자로서 공부하는 길도 있었겠지만, 뭔가 방향을 놓쳤다고나 할까요. 전 집에서 항상 ‘스무 살 넘으면 앞가림은 스스로 해라’는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거든요. 졸업하면 얼른 경제 독립을 이뤄야 하는데, 이렇게는 답이 안 보였어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아니 오히려 하고 싶은 게 많은 게 문제가 아닌지. 그때 마침 ‘롤(리그 오브 레전드)’이랑 ‘디아블로3’ 연달아 출시되는 바람에….”
“하하하, 당황스러우시죠? 처음에 말씀드렸잖아요. 뭐든 하나로 딱 부러지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제가 게임 덕후란 말씀도 드렸잖아요. 부모님이 되게 엄격하시면서도 묘하게 게임엔 관대했어요. 아빠가 살짝 얼리어답터신지라. 원래 중고교 때도 게임을 좋아했는데, 대학에 가서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 하다가 엄청 빠졌어요. 게임 때문에 휴학까지 했던 건 말씀드리기 좀 민망한데…. 1년 넘게 진짜 신나게 게임만 했어요. 블리자드(미국 유명 게임 회사)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인 적도 있었어요, 헤헤.”
-뭔가 MZ세대답기도 합니다.
“그런가요. 어쨌든 경제 독립과 함께 제 목표는 ‘행복하기’였거든요. 그래서 뭘 하면 좋을지 진로상담센터도 찾아가고 그랬어요. 근데 거기에서 직업 만족도 순위를 봤는데, 1위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요. 그런데 두 번째가 성우인 거예요! ‘어라, 성우가 되면 내가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 연기도 할 수 있겠는데’ 하고 눈이 번쩍 뜨였죠. 그리고 성우가 못 되더라도 발성법 같은 걸 배워두면 법 쪽에서 일할 때 도움이 되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당장 성우학원을 찾아갔죠.”
-왜 처음 질문에 답하기 곤란했는지 이해 가네요.
“삶이 원래 그렇잖아요. 무거움과 가벼움이 골고루 뒤섞여있지 않나요. 그렇다고 성우 시험 준비를 허투루 한 건 절대 아니었어요. 남들보다 1, 2시간씩 일찍 나가서 연습하고 스트레칭하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뭐든 하기로 했으면 제가 가진 100%를 던져야 하는 거니까요. 특히 전 체구가 작아서인지 말을 크게 내뱉지를 못했거든요. 남들보다 훨씬 많이 노력해야 했어요.”
-목소리가 좋은 건 장점이었겠네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지만, 실은 처음엔 절대 이런 목소리를 내지 못했어요. 다 훈련과 경험의 결과예요. 오히려 성우 하기엔 약점이 더 많았죠. 근데 그거 아세요? 목소리가 좋으면 성우가 잘 맞겠다 싶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저도 예전엔 그런 줄 알았는데, 오히려 탁월한 음성을 가진 분들이 ‘틀’을 깨지 못하고 중도에 접는 경우가 많아요. 성우에게 주어지는 건 결코 근사한 역할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네 삶이 평범하면서도 다채로운 것처럼, 성우도 온갖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오래 가더라고요.”
(하편에서 계속)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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