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재난현장 방문, 가도 욕 먹고 안 가도 욕 먹고[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정미경 기자 2023. 9. 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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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뿔나게 한 ‘브라우니’의 정체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복잡미묘한 대통령 재해 지역 방문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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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하와이 산불 피해 현장을 찾은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Will I ever get by this?”
(내가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까)

얼마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산불이 휩쓸고 간 하와이를 찾았습니다. 불에 탄 나무를 만져보고 주민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 자리에서 수십 년 전 자신의 얘기를 꺼냈습니다. 첫 부인과 세 자녀가 교통사고를 당한 얘기입니다. 그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고, 두 아들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과연 내가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합니다. ‘get by’는 ‘헤쳐나가다’라는 뜻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진정성 있는 위로를 전하자 지각 방문에 대한 비판 여론은 사그라들었습니다. 사실 하와이 방문은 많이 늦었습니다. 산불이 난지 2주 만입니다. 그 사이 바이든 대통령은 전국을 돌며 자기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기자들이 하와이를 찾지 않은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했습니다. “I don’t want to get in the way.”(방해하고 싶지 않다)

재해 지역 방문은 대통령 리더십의 중요한 척도입니다. 대통령이 방문하면 전국민적 관심을 피해 지역으로 돌릴 수 있고, 실질적 지원도 따라옵니다. 그런데 적절한 방문 타이밍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너무 늦게 찾거나 찾지 않으면 “you don’t care”(무관심하다)라는 비난을 듣기 십상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 찾으면 “you disrupt”(방해한다)라는 비난을 듣습니다. 대통령 수행단이 한번 다녀가는데 엄청난 행정력이 동원되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구조 복구 작업은 지장을 받게 됩니다. 재난이 닥친 뒤 대통령에게 오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지자체도 많습니다.

대통령의 재난 재해 대응을 ‘tricky business’(트리키 비즈니스)라고 합니다. ‘tricky’는 쉬운 듯 보이지만 실은 까다로운 상황을 말합니다. 절묘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국가적 재난 사태 때 희비가 엇갈렸던 대통령들을 알아봤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왼쪽)이 마이클 브라운 연방재난관리청장(오른쪽)으로부터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상황을 보고 받는 모습. 조지 W 부시 대통령 센터 홈페이지

Brownie, you’re doing a heck of a job.”
(브라우니, 정말 잘하고 있어)

재해 지역 방문은 원래 대통령의 임무가 아니었습니다. 별로 할 일 없는 부통령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부시’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에 “나의 주된 임무는 재해 지역 방문, 장례식 참석”이라고 한탄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전통을 바꿔놓은 것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였습니다. 카트리나 부실 대응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큰 비난을 받은 뒤부터 대통령들은 부지런히 재해 현장을 찾는 것이 관례가 됐습니다.

카트리나가 루이지애나를 강타했을 때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한 달 가까이 장기 휴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휴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피해 상황 보고가 늦어졌습니다. 지각 보고를 받은 부시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향했습니다. 에어포스원이 루이지애나 상공을 지날 때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비행기 창문을 통해 피해 지역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수행 기자들에게 찍혔습니다. 사진이 보도되자 이런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why didn’t he stop?”(왜 비행기를 세우지 않았느냐)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지 말고 세우게 해서 직접 피해 지역을 찾아야 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습니다. 나중에 자서전 ‘결정의 순간들’에서 에어포스원을 세우지 않은 결정을 “huge mistake”(중대한 실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복구 노력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내린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무관심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만 부각됐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분노 여론에 불을 댕긴 것은 ‘Brownie(브라우니) 사건’입니다. 먹는 브라우니가 아니라 당시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이끈 마이클 브라운 청장의 애칭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카트리나 피해 지역인 앨라배마를 방문한 자리에서 브리핑을 담당한 브라운 청장을 “정말 일을 잘한다”라고 폭풍 칭찬했습니다. ‘do a hell of job’은 ‘지독하게 일을 잘한다’라는 뜻입니다. ‘hell’(지옥)이 비속어이기 때문에 비슷한 발음의 ‘heck’(헥)을 씁니다.

당시 FEMA는 위기관리 시스템이 부실해 국민적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친한 사이인 브라운 청장의 애칭으로 불러가며 격려한 부시 대통령은 ‘out-of-touch president’(상황 파악 못 하는 대통령)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카트리나 총체적 난국을 상징하는 최대 명언으로 기록됐습니다. 브라운 청창은 얼마 후 사임했습니다.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허리케인 벳씨의 피해를 입은 루이지애나에 도착한 모습. 린든 존슨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My name is Lyndon Baines Johnson. I am your president. I am here to make sure you have the help you need.”
(내 이름은 린든 베인스 존슨입니다. 여러분의 대통령입니다. 도울 준비가 됐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루이지애나는 카트리나 40년 전에도 큰 피해를 당했습니다. 1965년 대형 허리케인 벳씨가 덮쳐 8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리더십은 부시 대통령 때와 크게 달랐습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루이지애나 상원의원으로부터 방문 요청을 받았습니다. 3시간 뒤 그는 에어포스원에 올랐습니다. 대책 논의는 비행기 안에서 했습니다. 2시간 뒤 루이지애나에 도착했습니다. 방문 요청을 받은 지 5시간 만에 총알같이 현장에 나타난 것입니다.

한밤중에 도착한 존슨 대통령은 임시 대피소가 마련된 초등학교부터 찾았습니다. 대피소 안은 정전으로 어두웠습니다. 마이크도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한 손에 플래시를 들고 자기 얼굴을 비췄습니다. 다른 한 손으로 확성기를 들었습니다. “내 이름은 린든 존슨입니다. 여러분의 대통령입니다. 여러분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이재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항목별로 나눠서 지원책을 밝혔습니다. “I will order the following”(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지시하겠다)이라면서 의료, 구호물자, 인프라 재건, 주택 융자 등 분야별 조치들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워싱턴으로 돌아가 뉴올리언스 시장 앞으로 16장짜리 장문의 전보를 보냈습니다. 제목은 ‘뉴올리언스 재건 계획.’ 대통령이 직접 재건 작업을 지휘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돼지독감 백신을 맞는 모습. 제럴드 포드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Be quick, but don’t hurry.”
(빨리 행동하라, 그러나 서두르지 말라)

1976년 뉴저지 군부대에서 군인이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혈액 검사 결과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됐습니다. 다른 부대원 11명도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전문가들과 상의 후 전국민 돼지독감 면역 접종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사망자가 1명밖에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민 접종은 너무 서두르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포드 대통령은 밀고나갔습니다. “We cannot afford to take a chance with the health of our nation.”(국민의 건강을 두고 도박을 할 수 없다)

1억 3500만 달러가 투입되는 사상 최대 접종 작전이었습니다, 당시까지 가장 규모가 컸던 1955년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능가했습니다. 포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소매를 걷고 주사를 맞았습니다. 대통령의 접종 사진은 전국 의료기관에 배포됐습니다. 그런데 접종 후 3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어 450여 명이 근육이 마비되는 길랭-바레 증후군을 보였습니다. 돼지독감 피해자보다 오히려 백신 부작용 사고가 더 심각한 상황이 됐습니다.

포드 행정부는 접종 계획을 시행 2개월여 만에 중단했습니다. 인구의 4분의 1인 4500만 명이 백신을 맞은 뒤였습니다. 돼지독감 바이러스는 첫 발생 지역 외에는 퍼지지 않아 전국적 유행 가능성이 배제됐습니다. 이 사건을 ‘swine flu fiasco’(돼지독감 낭패)라고 합니다.

이 사건 후 “be quick, but don’t hurry”라는 격언이 유행했습니다. 원래 미국 농구계의 전설인 존 우든 UCLA 농구 감독이 한 말입니다. 국가적 재난 사태에 지도자는 민첩하게 행동해야 하지만 다각도에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포드 대통령이 돼지독감 접종 계획을 서두른 것은 선거의 정치학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1976년 대선을 앞두고 업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컸다는 것입니다.

명언의 품격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닥친 뉴저지를 방문해 주민을 위로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 동부를 강타했을 때 대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와 접전을 벌이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샌디 상륙 사흘 전 과감하게 유세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FEMA 청장과 공동 기자회견, 백악관 단독 기자회견, 동부 지역 주지사 시장들과 화상회의를 잇달아 열고 대비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샌디 상륙 후에는 피해가 심한 지역들을 찾아 복구 작업을 독려했습니다.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유세를 포기한 것이 불안하지 않으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I am not worried about the impact on the election, I am worried about the impact on families.”(나는 허리케인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지 않는다. 국민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한다)

The election will take care of itself next week.”
(다음 주 선거는 알아서 해결될 것이다)

오바마 승리를 결정지은 발언입니다. ‘take care of self’는 ‘자신을 돌보다’라는 뜻입니다. 미국인들은 헤어질 때 “Take care of yourself”라는 안부 인사를 건넵니다. “건강 조심해”라는 뜻입니다. “선거는 스스로를 돌볼 것”이라는 것은 “선거는 관심 밖”이라는 의미입니다. 샌디는 큰 피해를 남겼지만,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위기관리에 전념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그 어떤 선거운동보다 유권자들에게 각인 효과가 컸기 때문입니다.

실전 보케 360

2022년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오른쪽 2명)에게 허리케인 이언의 피해 상황을 설명하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운데). 플로리다 주지사 홈페이지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하와이 산불 현장을 늦게 방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교훈 삼아 최근 허리케인 이달리아가 휩쓸고 간 플로리다를 신속하게 찾았습니다. 피해 사흘 만이었습니다. 대개 대통령이 재해 현장을 방문하면 주지사가 맞는 것이 관례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내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는 디샌티스 주지사는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봤자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허리케인 이언이 플로리다를 강타했을 때 디샌티스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을 환대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바이든 대통령은 디샌티스 주지사에게 이런 덕담을 건넸습니다.

We’ve worked hand-in-glove.”
(우리는 척척 맞는 사이다)

‘hand’는 손, ‘glove’는 ‘장갑’을 말합니다. 흔히 ‘야구 글러브’ ‘권투 글러브’가 연상되지만 원래는 장갑을 총칭합니다. ’hand-in-glove’는 ‘장갑 안의 손’을 말합니다. 장갑과 손은 사이즈가 딱 맞아야 편합니다. ‘죽이 척척 맞는 사이’ ‘협력관계’라는 뜻입니다. 앞에 ’work’가 자주 옵니다. 주로 불법적인 은밀한 거래 관계를 말할 때 씁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1년 9월 13일 소개된 ‘허리케인 리더십’에 관한 내용입니다. 미국은 늦여름과 가을에 걸쳐 허리케인 피해를 자주 입습니다. 허리케인 시즌이 되면 전국이 바짝 긴장하고,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오릅니다.

▶2021년 9월 13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913/109219367/1

2017년 허리케인 하비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피해 지역인 텍사스를 방문한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최근 미국에서 허리케인 아이다로 6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피해 지역들을 방문해 이재민을 위로하고 구조 복구 작업을 격려했습니다. 재해 지역 방문은 대통령의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대통령이 재해 지역에서 하는 발언은 관심의 초점이 됩니다.

The nation and the world are in peril. That’s not hyperbole, that is a fact.”
(미국과 세계는 지금 위기다. 과장이 아니다. 사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허리케인 피해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행정부가 추진하는 기후변화 정책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둡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지원과 재건이 절실한 피해 지역에서 정책 홍보를 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이다 기자회견에서 시급성을 강조했습니다. ‘hyperbole’(하이퍼벌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과장’이라는 뜻으로 ‘fact’(사실)의 반대 의미입니다.

What a crowd! What a turnout!”
(관중 좀 봐라! 이렇게 많이 오다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허리케인 하비가 닥치자 피해 지역 텍사스로 날아갔습니다. 하비가 상륙하기도 전에 현장에 도착해 점검 회의를 여는 등 부산을 떨었습니다. 자신을 보러온 관중 규모에 감격하는 발언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해 눈총을 받았습니다. 취임식 때도 참석자 수를 부풀려 말할 정도로 관중 규모에 집착하는 대통령다웠습니다. ‘turnout’(턴아웃)은 행사 참가자 수, 선거 투표율 등을 의미합니다.

Your governor is working overtime to make sure that as soon as possible everybody can get back to normal.”
(주지사가 여러분들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초과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직전에 허리케인 샌디가 닥치자 선거 유세를 포기하고 뉴저지 등 피해 지역을 방문해 복구 작업을 진두지휘했습니다. 당시 공화당 소속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빛나는 조연을 담당했습니다. 당적이 다른 대통령과 주지사가 힘을 합쳐 일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국가 화합의 메시지가 전해졌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공적을 알리기보다 크리스티 주지사를 칭찬했습니다. ‘work overtime’은 직장인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야근하다’라는 뜻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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