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당하는 아이 외면하지 않았다"...4년간 14차례 악성민원 홀로 버틴 대전 교사

김소희 2023. 9. 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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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숨진 대전 교사가 겪은 피해 보니
2019년부터 시작된 학부모 '악성민원'
아동학대 고소당해… '혼자만의 싸움'
서이초 사건 이후 "고통 떠올라" 호소 
유족, 학부모 상대로 법적 대응 방침
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 교사의 유족들이 9일 오전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 영정사진을 들고 들어서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대전 유성구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40대 여교사 A씨가 지난 5일 오후 9시 20분쯤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틀 만인 7일 끝내 숨졌다. A씨는 24년간 교직에 있었던 '베테랑 교사'였다. A씨가 끝내 교단을 등지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9년 시작된 민원… "왜 내 아이 망신"

15일 대전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A씨는 4년간 학교 안에서만 공식적으로 총 14차례나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학교에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었고 국민신문고에 "A씨가 아동학대를 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남겼다.

민원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A씨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는데 반 학생 중 4명이 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다른 학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A씨가 지난 7월 초등교사노조에 제보한 내용을 보면, 학기가 시작된 3월부터 B학생은 교실에서 잡기 놀이를 하거나 다른 친구의 목을 팔로 조르는 등 행동을 했다.

문제 행동은 2학기에도 이어져 급기야 B학생은 친구 배를 발로 차거나 뺨을 때리기도 했다. 이에 A씨가 생활지도를 했는데 해당 아이들의 학부모들이 "왜 내 아이를 망신 주느냐"며 교육청과 학교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한 학부모는 학교에 찾아와 "무릎 꿇고 빌어라"라고 요구했다는 동료 교사의 증언도 나왔다. B학생 학부모 등 2명은 같은 해 A씨를 상대로 총 7차례에 걸쳐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학대 고소당해… 기나긴 '혼자만의 싸움'

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 교사의 운구 차량이 9일 오전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를 떠나려 하자, 학부모와 학생들이 운구 차량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가해 학부모들의 A씨를 향한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B학생 학부모는 2019년 12월 A씨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통상 학교폭력대책위원회(학폭위)는 학생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을 다루는데, 이들은 교사를 상대로 개최를 강행하면서 분리 조치 등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학폭위는 B학생에게 심리상담 조치를 내렸고 A씨에 대해서는 '해당 없음'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사건 당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교권보호위는 열리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이어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자격으로 2020년 2월 "A씨가 해당 학생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큰소리를 친 건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냈고, 경찰은 이를 근거로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추가 조사를 거쳐 2020년 10월 A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A씨가 담임을 맡고 있지 않았던 2020년부터 3년간 또다시 7차례의 민원을 추가로 냈다.

A씨는 최근 3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심리적 고통을 겪어 왔다. 특히 지난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접한 뒤에는 "예전 고통이 떠올라 힘들다"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7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교사 집회에도 참석했고, 서이초 교사의 49재였던 이달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도 병가를 내 교권침해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A씨는 "서이초 사건 등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어 교사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다시 안겨주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긴 지 약 한 달 반 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해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평소 고인의 뜻을 존중해 그의 신체조직을 기증했다.


가해 학부모·자녀 신상공개 논란도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대전 초등학교 교사가 숨진 가운데, 12일 오후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가 대전 유성구에서 운영 중인 가게 앞에 학부모를 비판하는 내용의 근조화환이 놓여있다. 대전=연합뉴스(독자 제공)

A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여론은 들끓었다. 가해 학부모에 비난의 화살이 꽂혔다. 가해 학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등장했고, 가해 학부모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음식점과 김밥집에는 '음식물 테러'와 항의 쪽지가 쏟아졌다. B학생 학부모는 11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친구와 놀다가 (아이) 손이 친구 뺨에 맞았다", "인민재판식 처벌 방식" 등 표현을 사용해 오히려 누리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A씨에게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들의 자녀 행실을 폭로하는 글도 온라인상에 올라왔다. 지난 1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는 한 누리꾼이 "(C학생은) 수업 시간에 책상 위에 앉아서 욕설을 하면서 반 애들과 선생님을 불편하게 했다"면서 "점심시간에 손 씻으러 가는 친구 머리를 차례대로 때렸다. 나도 맞았다"고 주장한 내용이 담겼다. B학생 학부모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거주한다고 밝힌 한 누리꾼은 "혹자는 아이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데, B학생은 애들 괴롭히는 망나니로 유명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때 짜증 나서 찾아가려고 했다"고 폭로했다.


유족, '악성민원' 학부모 상대 법적 대응키로

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9일 오후 고인을 추모하는 쪽지가 붙어 있다. 대전=연합뉴스

A씨 유족은 악성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들을 협박과 강요,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고발하는 등 법적 대응하기로 했다. 유족 측은 A씨가 학부모의 악성민원 때문으로 고통을 겪은 것도 모자라, 일부 학부모가 온라인에 사실과 다른 해명을 해 사후 명예를 훼손한 만큼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A씨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교권보호위를 열지 않은 것과 관련해 관리자 2명에 대해서도 경위를 파악한 뒤 법적 대응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학부모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대전 초등 교사 A씨의 추모제가 15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동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열리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15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동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A교사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이 그를 기리는 추도 메시지와 국화를 들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A씨가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묵직하다. 대전교사노조 등은 15일 오후 5시 30분부터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A씨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교사와 학부모, 어린 학생과 일반 시민까지 800여 명이 참여해 A씨를 추모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동료 교사는 "A씨는 괴롭힘당하는 아이를 외면하지 않고 홀로 악성 민원을 받아내며 아이를 지키려고 했고 일부 아이들이 친구 뺨을 때리는 등 폭력을 일삼아도 교육적 지도를 위해 학부모와 상담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라며 “왜 교장과 교감은 선생님을 보호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교권보호위원회는 열어주지 않으면서 학교폭력위원회를 여는 것이 맞는지 묻고 싶다. 앞으로는 A씨에게 미안하지 않게 교육 환경을 바꿀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라고 애통해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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