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장판 대신 코인 판다”…가상자산 사기 왜 계속되나 [주말엔]
"아직도 속는 사람이 있나?"
시중에 판매되는 금융상품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고수익을 약속하며 사람들을 끌어 모은 투자 사기 피해 소식이 보도되면 이런 반응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속고 있습니다.
"원금 보장, 월 ○○% 수익 약속한다"
항상 등장하는 문구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범죄 일당들은 사람들을 속이고도 처벌받지 않을 교묘한 방법으로 수법을 진화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법의 사각지대를 노리기도 하는데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느슨한 소위 신상품을 매개체로 사람들을 공략하는 게 특징입니다.
최근에는 은퇴한 중년층이나 노인들을 대상으로 '다단계 가상자산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과거 옥장판이나 건강 식품, 화장품 관련 다단계 사기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면 이제는 코인 같은 가상자산이 새로운 사기의 매개체가 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요즘은 시골에서도 '옥장판' 대신 '코인'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동네 어르신들 모아 잔치 열어주고 노래도 틀어주며 환심을 사서 사기 치던 일당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서 이제는 코인을 사라고 한다는 겁니다.
■ 신기술로 포장… '돈 벌고 싶은 마음'을 훔친다
현재 피해자 약 180만 명, 4조 원대 투자 사기 피해가 발생해 경찰이 수사 중인 KOK 토큰(코인)이 있습니다.
한류 OTT 플랫폼을 기반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한정된 양만 발행해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았습니다.
운영은 철저한 다단계 방식이었습니다. 지역별로 운영자를 두고 그 아래에 계속 사람을 모아가는건데, 새로운 투자자를 데려올 때마다 약속된 수익 외에 보상을 추가로 주는 구조였다고 투자자들은 말합니다. 약 2년 만에 전국적인 영업망을 갖춘 조직으로 커질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그런데 이 코인 개발·운영 업체가 사라졌습니다. 당시 관계자들 가운데는 이제 와서 '코인은 본 적도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고 합니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코인이 해외 거래소에 상장된 건 맞습니다. 하지만 한 때 7달러 선까지 급등하기도 했던 이 코인은 현재는 10원도 되지 않습니다. 투자자들은 코인 가격이 이유 없이 뛰었다 폭락한 시점에 운영진들이 코인을 팔아 차익을 본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유한 코인 지갑 번호가 수시로 바뀌는가 하면 거액의 돈이 알 수 없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오 입금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투자 초기에 홍보하며 약속했던 원금 보장과 매월 일정 수익을 내게 해주겠단 말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투자자 대부분은 소액으로 투자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초기에는 적은 돈을 투자하는데 여기에 대해선 일정 수익이 나게 해주며 믿음을 줬다고 합니다. 더 큰 돈을 받기 위한 미끼였던 셈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큰 돈을 맡기게 됐고 입소문을 타고 투자자들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결국 문제가 터졌습니다.
은퇴 후 자녀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조금이나마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서... 물론 일확천금의 큰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 마음을 누군가가 불법으로 훔쳐 큰 이익을 봤을 겁니다.
■ 하루 2건꼴 가상자산 사기 신고…처벌 왜 어렵나 봤더니
최근 KOK토큰 피해자들은 금융감독원에도 관련자들을 조사해달라는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경찰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진척이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금감원이 지난 6월 가상자산 관련 사기를 전담하는 신고센터를 설치된 뒤 피해 접수는 폭증했습니다. 6월부터 두 달여 동안 신고 건수만 406건에 달합니다. 접수된 피해의 상당수는 가상자산 관련 '고수익 보장 사기'입니다.
지난 5년간 가상자산 관련 불법행위가 증가하면서 피해 금액은 5조 원에 달합니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사기가 이렇게 활개를 치는 건 범죄를 저질러도 잡기가 어렵고 잡아도 처벌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설계 단계부터 철저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시작하기 때문에 사기 피해가 발생한 뒤 범죄를 추적하기도 어렵고 수사에 들어가도 기소까지 이어지는 게 쉽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은 주로 '사기'나 '유사수신'으로 이들을 고소·고발하는데 이런 혐의를 입증해 처벌하는 게 간단하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먼저 사기의 경우 고의성을 입증하는 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만으로는 사기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고의적으로 손실을 내려고 한, 즉 투자자에 대한 '기망' 행위가 있었다는 걸 입증해야 됩니다.
그런데 가상자산의 경우 개발과 운영 과정도 복잡하고 이 과정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증거 인멸도 더 정교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이걸 넘어서는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수사 인력부터 한계가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기보다도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로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허가를 받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경우 유사수신행위로 현행법상 처벌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벌어지는 가상자산 다단계 사기는 정확히 여기에 들어 맞습니다.
문제는 이 법에서 규정하는 '자금'의 범위에 가상자산은 포함되지 않아서 실제로는 이 법을 적용하는게 어렵다는 겁니다. 현재는 가상자산을 금전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가상자산 관련 다단계 사기의 배경에는 이 같은 법 공백 문제가 있습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이 범죄의 도구로, 투자자를 유인할 수단으로 계속 이용되는 상황인 만큼 유사수신규제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가상자산이 화폐는 아니지만 경제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에 다단계 수단이나 사기에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최근 코인 리딩방 문제도 심각한데 뚜렷한 단속 근거가 없다 보니 사실상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황 교수는 "유사수신규제법 개정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코인 투자와 다단계 사기 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1년 전 국회 발의됐지만 논의 안 돼…배경은?
이런 취지로 법을 개정하자는 제안이 없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국회에서는 1년 전 테라·루나 사태로 불거진 가상자산 관련 사기 피해의 심각성을 보고 이를 막기 위한 '유사수신행위규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건 발의됐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관련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제정을 논의하면서도 이 법과 관련 해선 한 번도 논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중요한 배경 중에 하나는 바로 해당 법안에 대한 상임위의 부정적인 검토보고서였습니다.
법안 논의 시작에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게 상임위의 검토보고서입니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에서 법을 논의할 때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검토보고서"라며 "여기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면 의원들이 애초에 논의를 안 하려고 한다, 게다가 가상자산 같은 이슈는 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검토보고서만으로 법안 논의 자체가 좌지우지 되는 건 아니지만 가상자산 같은 새로운 이슈, 입법을 하는 국회의원들조차 이해도가 높지 않은 사안일수록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건데요.
보고서도 현실적으로 가상자산을 이용한 유사수신 행위 등으로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법 개정 필요성이 있다고 일부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여러 모순된 논리를 들어 법안을 만드는데 있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는 것으로 결론을 냅니다. 그 주요 근거는 다음과 같은데 가상자산 업계의 우려를 거의 그대로 반영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문제는 이 보고서에서 지적된 일부 서비스, 예를 들어 최초가상자산발행(ICO) 같은 경우는 아직 국내에서 서비스가 허용되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하면 허용되지도 않은 서비스가 금지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유사수신법 개정안에 반대한 셈입니다.
관련 법안은 지난해 6월 발의됐지만 이런 이유들에 밀려 1년 넘게 단 한 번도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법안 발의자 가운데 한 명인 이용우 의원은 "산업의 진흥 관점보다는 당장 벌어지고 있는 소비자, 투자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며 "불법 행위에 대한 규제를 명확히 정해주고, 그 밖의 것들은 산업의 영역에서 자율성을 갖고 나갈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 가상자산 '금전성' 논란…본질 따지는 사이 범죄↑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은 진통 끝에 6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7월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말 그대로 1단계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보완할 점이 많습니다.
통과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핵심은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인데 가상자산 관련 범죄는 주로 시세조종 등 시장교란 행위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유사수신규제 관련 법 개정 내용은 담기지 않아서 여전히 공백 상태입니다.
가상자산 관련 입법이 속도를 내지 못 하는 건 논쟁이 매번 '가상자산을 금전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돌아가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단계적 입법으로 접근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당장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조치들을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금전성 인정 여부를 놓고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를 이유로 관련법 논의 자체를 회피한다면 사각지대를 노린 범죄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 유념해야 할 점은?
코인뿐만 아니라 NFT(대체불가능토큰), 플랫폼 투자 등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앞세워 투자자를 현혹하는 사기 사례는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금융당국은 한마디로 원금보장과 고수익을 내건 문구에 절대 속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높은 수익을 지급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신규 투자금을 재원으로 다른 사람의 투자금을 계속 돌려막는 이른바 '폰지사기(다단계 투자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요.
금감원 관계자는 " 원금을 보장한다는 명시적인 약정이 없더라도 고수익을 보장하고 단기간에 원금을 초과하는 수익을 제시하는 경우 유사수신일 가능성이 높다"며 "투자 전 사업의 실체 등을 충분히 확인하고 '묻지마식 투자'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투자 전 제도권 금융회사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계약을 할 때는 반드시 법적 효력이 있는 형태로 남겨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법적으로 원금이 보장되는 경우는 제도권 금융회사의 예·적금 등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만큼 투자성 상품의 원금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경우는 없다는 걸 유념해야 합니다.
범죄 일당들은 한 코인에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코인을 만들어 투자자를 끌어 모으는 방식으로 사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는 이들이 마음 놓고 누군가를 속이게 둬서도 안 되겠지만, 속지도 말아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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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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