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은 동물의숲, 젤다 같은 게임 못 만드나요?"

최우영 기자 2023. 9. 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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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마켓]
온라인PC게임 개발 위주로 정착된 한국 게임업계
과거 낮은 저작권 인식에 따른 게임사 수익 악화, 온라인+부분유료화 모델 광범위한 도입 강요
MMORPG 등 온라인 게임 강국 됐지만 P2W 기조 등 악영향도 남겨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온라인 게임은 우리나라가 잘 하는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같이 개발된 창의적 제품은 소니와 닌텐도가 앞서간다. 닌텐도를 우리 초등학생들이 많이 쓰는데 (국내에서) 이런 걸 개발할 수는 없나."
2009년 2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던진 말이었다. 그동안 천대 받던 게임산업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표명하고, 한국과 일본 게임사의 장단점에 대해 파악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대통령의 '오더'로 닌텐도를 급히 따라한 '명텐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대로 사라졌다. MB가 간과한 점은, 국내 게임사들이 그동안 명텐도를 '못' 만든 게 아니라 '안' 만들어왔다는 사실이었다.
패키지게임 불모지 한국…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스토니시아스토리. /사진=손노리
과거부터 콘솔게임 시장은 콘솔기기를 직접 제조해 판매하는 일본과 미국 업체들의 무대였다. 이들은 여전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판매하는 전략으로 전 세계 콘솔 시장을 주무르고 있다. 게임 개발 역사가 이들보다 짧은 한국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이들의 플랫폼에 탑재하는 '하청 업체' 수준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PC의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하드웨어 제조 없이도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스토리텔링 요소 등으로 게임 시장에서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한국 게임업체들은 PC패키지게임에 주력했다. 설치파일(CD 또는 디스켓)과 공략집 등을 '패키지'로 묶어 1회성으로 판매하는 이 같은 게임들 중 나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초기작들도 등장했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RPG(역할수행게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창세기전'이 '포가튼 사가'가 있었고, RTS(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게임)로는 '임진록' '킹덤언더파이어(KUF)'가 인기를 끌었다.
국산 패키지 게임 숨통 끊은 '복돌이' 문화
하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사진=손노리
이처럼 태동을 시작한 국내 패키지게임은 얼마 못 가 허망하게 무너졌다. 게임업계에서는 가장 큰 이유로 '낮은 저작권 인식'을 꼽는다. 재미있는 게임이 퍼지면 범죄라는 의식도 없이 자연스럽게 불법복제본으로 게임을 접하는 이들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개인간 복사본을 만들거나, 동네 컴퓨터가게 또는 용산 전자상가 등에서 복제품을 값싸게 뿌려댔다. 인터넷망이 널리 보급되면서는 파일공유사이트, P2P 등의 온라인 와레즈(어둠의경로)가 불법복제물 배포의 온상이 됐다.

대표적인 피해자로 꼽히는 게임이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이다. 국산 호러물 명작으로 꼽히는 이 게임은 공식 패키지 판매량이 6만장인데, 이후 무료로 배포한 패치파일을 다운로드한 수는 100만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90만명 넘는 이들이 불법 복제판으로 게임을 즐겼다는 뜻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 게이머들의 낮은 저작권 인식을 비판하는 국내 게이머들이 많은데, 과거 국내 게이머들의 인식 수준도 처참한 수준이었다"며 "최근 들어서야 게임 커뮤니티 등에서 불법복제를 언급하면 강제퇴장 당하는 등의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온라인+부분 유료화에 눈 뜬 K-게임
20여년째 영업중인 바람의나라 캐시샵. /사진=넥슨
이런 상황에서 게임 창작자들이 패키지게임 개발을 고집할 유인은 전혀 없었다. 여기서 한국 게임의 선구자 넥슨이 나섰다. 어차피 불법 복제를 막지 못하니, 게임 자체는 무료로 풀어버리고 그 안에서 추가적인 재화 등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 유료화' 모델을 도입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그래픽형 MMORPG '바람의나라'가 시작이었다.

부분 유료화 모델은 한국 게임사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리니지 등 이후 도입된 국내 게임들은 너도나도 게임을 무료로 풀고, 그 안에서 끊임 없이 과금을 유도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여기에 더해 '확률형 아이템'이 나타났다. 상대방과의 경쟁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우위를 점하기 위해 끝 없는 '현질'의 늪에 빠졌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국내 메이저 게임업체 '3N'의 성공 배경이다.

이후의 스토리는 많은 게이머들이 아는대로다. 한국 게임은 부분 유료화와 확률형 아이템을 접목하기 가장 용이한 MMORPG 위주로 재편됐고,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돈을 쓸 수밖에 없는 P2W(Pay to Win)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낮은 저작권 인식에 힘겨워하던 게임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부분 유료화가 시작한 작은 날갯짓이, 패키지게임이 살아남기 힘든 한국 게임 풍토를 만드는 데 20년 남짓 걸렸다.
명텐도 만들면 뭐하나…플레이할 게임이 없는데
지식경제부를 찾아 '명텐도'를 지시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뉴시스
이러한 맥락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놓친 부분은 닌텐도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소프트웨어'였다.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 큐브, 엑스박스 등 게임기 자체에 적용되는 기술력이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한국 게임사들이 국내 제조업체와 간단한 기술협력만으로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한국 게임사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못 따라잡는 분야는 그러한 하드웨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다. 이미 패키지게임 제작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하고, 온라인 부분 유료화 모델로 수익 맛을 본 국내 업체들이 굳이 공수를 들여가면서 특정 콘솔용 패키지게임, 그것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급조된 하드웨어에 맞출 게임을 만들 리가 없었다. 명텐도를 내놓았던 제조업체는 이후 4년만에 폐업처리했다.
그래도 놓칠 수 없는 콘솔·패키지 시장 '뚫어야 산다'
2022 대한민국게임백서.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패키지게임에 손 놓고 있던 국내 게임업계가 최근에서야 다시 이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MMORPG 위주의 시장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고, 손만 놓고 있기엔 패키지 게임 위주로 돌아가는 콘솔 시장이 여전히 매력적인 규모이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대한민국게임백서'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게임 시장 규모는 2197억5800만달러(약 292조원)로, 이 중 콘솔은 551억4000만달러(73조원)에 달한다. 모바일(1002억3400만달러)보다는 작지만, PC게임(551억4000만달러)보다는 크다.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은 한국 패키지 게임의 부활을 알릴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스팀 플랫폼에서 이미 게임성과 인기를 입증한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도 다음달 26일 닌텐도스위치 버전을 출시한다.

다만 이 같은 패키지 개발이 하나의 흐름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도 나온다. 지속적인 과금 없이 올리는 매출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패키지게임 개발에 인력과 시간을 투입할 게임사가 많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 게임 이용자는 "과거와 달리 게임 유통플랫폼이나 모바일 기기 인증이라는 관문이 생겼기에 불법복제 이슈는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와 달리 게임에 돈을 쓴다는 게 일상적인 문화가 된 만큼, 퀄리티 높은 국산 패키지 게임이 나오고 이를 수익으로 이어가고, 그 돈으로 다시 새 게임을 만드는 선순환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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