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실 된 문제 학생 맡을 사람 없어"…'생활지도 고시' 갈등

김정현 기자 2023. 9. 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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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방해 등으로 퇴실 조치 학생 책임소재 혼선
교육부 고시에서는 학칙에 위임…"협의해 정하라"
떠넘기는 관리자, 반발하는 노조…인력도 구인난
교육부 "학칙 개정, 10월 말 기한 유연하게 적용"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지난 4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지역 교사 3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9·4공교육 멈춤의 날-서이초 교사 추모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3.09.16. hgryu77@newsis.com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 경기 지역의 한 초등학교 상담교사 A씨는 앞으로 수업 중 퇴실 조치를 받은 문제 행동 학생을 전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A씨는 자신이 상담 중에 퇴실 학생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물었다. 관리자는 상담 받던 학생을 도중에 돌려보내고 퇴실 학생을 챙기라고 했다. A씨가 교직원 회의를 통해 논의하면 좋겠다고 하자, 관리자는 학칙 개정에 필요한 기간이 너무 많이 걸릴 수 있다면서 거절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측에 최근 도움을 요청해 온 한 초등학교 상담교사의 사연을 정리한 내용이다.

지난 1일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생활지도 고시) 시행 후 일선 학교에서 문제 학생에 대한 책임 소재를 놓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퇴실 당한 학생을 누가 어디서 맡게 될 지를 놓고 혼선이 여전하다.

16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최근 전국 시·도교육청을 통해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다음달 31일까지 생활지도 고시에 따라 학칙을 정비하도록 안내했다.

생활지도 고시에서는 학칙에서 정하도록 위임한 내용이 많다. ▲생활지도의 범위(8조 4호) ▲수업 중 교실 밖 분리·정규수업 시간 이외 분리 시 장소·시간, 학습지원 방법(12조 6항) ▲학생의 소지를 금하며 수업 중 분리 보관이 가능한 물품(12조 9항) 등이다.

고시는 2학기가 시작되는 지난 1일 시행됐다. 교원의 생활지도권을 법적으로 명문화한 개정 초·중등교육법이 6월28일 시행된 후,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등 교권침해 논란이 거세자 서둘러 마련됐다.

따라서 고시에서는 학칙에 위임한 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특례 운영기간을 뒀다. 학교가 학칙을 고칠 때까지 학교장이 정하는 대로 고시에 담긴 생활지도를 할 수 있고, 학칙은 10월말까지 고쳐 달라고 정했던 것이다.

교육부가 생활지도 고시에 따른 학칙 개정시점과 함께 안내한 지침 '학칙에 관한 특례 운영 안내'를 보면, '가용할 수 있는 학교 내 물적·인적 자원과 학교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라'고 돼 있다.

교육부는 지침에서 "학년(교과)회의, 부장회의, 교직원 회의 등의 논의를 통해 공동의 문제해결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시했다. 또 분리장소의 예시로는 '교무실 등 교감이 지정한 장소'를, 절차는 '교사가 교무실에 인계를 요청한 뒤 교직원이 인계해 이동' 등을 제시했다.

[세종=뉴시스] 뉴시스가 입수한 교육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 관련 학칙에 관한 특례 운영 안내' 중 일부 내용. 문제 행동 학생에 대한 교실 밖 분리 등의 경우 적용할 학칙의 예시를 담고 있다. (자료=독자 제공). 2023.09.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교직단체와 일선 학교에서는 2학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학칙 개정을 두 달 안에 마쳐 달라고 요구하면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퇴실 당한 학생이 머무를 장소와 시간, 그리고 학생을 퇴실 시켜서 맡을 사람을 두고 갈등이 크다. 비(非)교원 교육공무직이나 일반(행정)직 노동조합에서는 관련 업무를 자신들에게 떠넘기지 말라며 반발한다.

일부 교직단체에서는 A씨의 사례처럼 교장이나 교감 등 관리자가 특정 교사에게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책임을 맡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전한다.

경기교사노조 관계자는 "학칙을 고치려면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를 소집해야 하는데 지금은 학기 초라 평소에도 워낙 업무가 많은 상황"이라며 "관리자가 상담 등 비교과 교사에게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관리자들도 고민이다. 학생이 많아 가뜩이나 공간이 부족한 과밀학급·과대학교는 공간도 마땅치 않다. 특히 교육 당국에서 별도 예산이나 지원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기간제 교사 등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 광진구 한 초등학교 교감 B씨는 "학칙을 개정하기 위해 교사들의 의견을 모으는 중"이라며 "학교 여건상 퇴실 시간과 장소, 누가 관리를 할 것인지 세세하게 하려 하는데 학교 여건상 쉽지 않다"고 전했다.

B 교감은 "공교육 멈춤의 날(4일) 이후 학교 민원은 관리자들이 맡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견디기 힘들면 쉬자는 분위기에 병가를 내는 교사가 늘었고 기간제 교사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생활지도 고시에 대한 공식적인 지침 역할을 하게 될 '해설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늦어도 추석 연휴 전인 이달 말까지 유의사항과 참고 예시 등을 담아 일선 학교에 안내한다는 목표다.

교육부는 고시에서 다음달 31일까지 학칙을 개정하라고 정했지만 학교 구성원과 협의가 필요하다면 꼭 시한을 맞추려고 무리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한 간부는 "학교에서는 해설서가 나간 뒤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구성원과 협의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유연하게 학칙을 정하면 된다"면서 "다만 지금 바로 시행할 수 있는 생활지도 제도 등은 학교에서 바로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이 간부는 "지원이 필요하다면 적극 검토하고, 예산이 필요하다면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ddobag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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