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산다]-28 여행잡지 편집장이 선택한 '내가 살 곳'

장아름 2023. 9.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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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전환 정동묵 작가…군청 소식지 제작하며 구례 정착
"빌딩숲 속 경쟁 벗어나 만족, 지역민과 소통 노력 중요"

[※ 편집자 주 =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인생의 꿈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서울로 서울로를 외칠 때,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자기가 사는 동네가 좋아 그곳에서 터전을 일구는 이들도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만들어갑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지 않고'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꿈을 설계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삶을 연합뉴스가 연중 기획으로 소개합니다.]

구례에 귀촌한 정동묵 작가 (구례=연합뉴스) 정동묵(55) 작가는 대한항공 기내잡지 '모닝캄' 편집장 등 여행잡지 편집장과 작가로 활동하다가 전남 구례에 귀촌했다. 사진은 지난 13일 오후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반야원에서 인터뷰하는 정동묵 작가. 2023.9.16 [원유헌 사진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reum@yna.co.kr

(구례=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일하면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출근길에 텃밭 분양 공고를 보고 5평 농사를 지으면서 큰 위안을 받았죠."

정동묵(55) 작가는 대한항공 기내잡지 '모닝캄' 편집장 등 여행잡지 편집장과 작가로 활동하다 40대 초반이던 2011년 귀농을 결심하고 전남 구례에 정착했다.

그는 분당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길에 우연히 눈에 띈 광고로 텃밭을 분양받아 취미로 농사를 지으면서 업무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떨쳐냈고 결국 귀농까지 이어졌다.

경기 여주 출신인 정 작가는 초록 밭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푸근함이 떠올랐고 1년간 안산에서 화학비료나 동력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순환농법을 배우며 귀농을 준비했다.

여행작가로 전국을 누빈 정 작가는 남도에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존경하던 조태일 시인의 고향이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귀농귀촌 전담팀을 운영하던 곡성군에 찾아갔다.

가족과 함께 살 빈집을 쉽게 찾지 못한 정 작가는 인접한 구례에 정착했다.

오산 사성암에서 바라본 구례 들녘 [구례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혼자 시작한 농사는 쉽지 않았고, 트랙터 없이 무동력 농기구로만 짓는 순환농법 농사는 더 고됐다.

한 번은 밭에서 거름을 나르다가 쓰러져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다.

만 2년 농사 일을 하는 동안 셋째 아이가 태어났고,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삶이 걱정됐다.

소장하고 있던 헌책들을 5일 시장에 내다 팔고 모닝캄과 여행스케치 등 잡지에 외부 기고도 하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소통하며 소설·시를 쓰고 구례군청과도 인연을 맺어 군 소식지 제작에도 참여해 지역사회에서 많은 일을 했고 그곳과 더 가까워졌다.

귀농인을 꿈꾸고 내려와 한차례 좌절을 맛봤지만, 귀촌인으로 자연스럽게 삶의 방향을 전환한 셈이다.

인터뷰하는 정동묵 작가 [원유헌 사진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 작가는 누구보다 풍성하게 자식 농사를 일궜다고 자부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빌딩 숲에서 경쟁하는 삶이 아닌 자연에서 뛰노는 삶을 선사한 것을 지방살이의 장점 중 하나로 꼽았다.

정 작가는 "마을에 다섯 집 정도 또래 아이들이 살아 강과 산에서 어울려 놀았고 학교에도 프로그램이 많았다"며 "공부하라는 얘기를 하지 않고 키웠는데 당당하고 명랑하게, 누구보다 싱싱한 아이들로 자랐다"고 흐뭇해했다.

서울에 비해 시간 사용이 자유로운 점도 또 다른 장점이라고 전했다.

그는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서울에 비해 이동 시간이 짧아 여유가 있다"며 "가족들과 여행도 자주 다니고 아내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운영하는 빵집 일을 돕는 등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지방에 정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정 작가는 "저는 시골 출신이기도 해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도시민과 다른 정서가 있다"며 "집을 세준 주인이 먹거리를 준다든지, 집을 깨끗하게 쓰는지 살피려고 수시로 찾아오기도 하는데 오해가 없도록 명확하게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겨울이면 보일러도 종종 터지고 생활 편의시설로 인한 불편도 느낄 것"이라며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물욕 자체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처음 3년은 고생한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귀촌자들은 문화에 목말라 있다"며 "서울 같은 문화생활까지는 아니어도 마을 연극단이나 최근 구례에 새로 지은 공공도서관처럼 일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 프로그램을 늘리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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