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떠나고만 싶었는데"…500만원 받고 평생 산 시설 나와보니
"늘 '떠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시설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지내다 홀로서야 했을 때 정말 막막했습니다."
보육원에서 자란 김진아씨(22·가명)는 2년여 전 평생 산 시설에서 나올 때 심경을 이같이 떠올렸다. 김씨는 "준비된 게 없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저 학교 다니던 학생이었는데 다음날부터 사회인이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며 "특히 도움받을 어른이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고 말했다.
매년 9월 세번째 토요일은 '청년의 날'이다. 청년 권리를 보장하고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자는 뜻에서 2020년 제정됐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삶에 대한민국 청년들은 자신을 'N포 세대'라 자조한다. 김씨와 같이 일찍이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자립준비청년의 경우 경제·사회·정서적인 어려움이 더 크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은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다 만 18세에 보호가 종료(만 24세까지 연장 가능)되면 시설을 떠나 자립하는 청년을 말한다. 이들을 위한 지원이 과거보다 개선되기는 했지만 어린 나이에 기댈 곳 없이 홀로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씨는 "시설을 나오고 주거 문제는 다행히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전세 임대로 해결됐지만 자립지원금 500만원으로 가구 사고 생활비 좀 쓰니 금세 '돈 없는 백수'가 됐다"며 "이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코로나19(COVID-19) 여파로 퇴사해야 했고 그때부터 재취업할 때까지 두 달 동안 밥에 김치만 먹고 살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회성의 금전적 지원도 도움이 되지만 직업 교육, 취업 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가정이라는 보호막이 없는 자립준비청년은 취업을 통해 안정적인 소득이 마련되지 않으면 빈곤에 시달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자립준비청년 1175명 중 61%가 월급 200만원 미만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르바이트 퇴사 후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김씨는 서울아동복지협회 아동자립지원사업단에 인연이 있던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협회는 CJ나눔재단이 운영하는 '꿈키움 아카데미'를 김씨에게 소개했다. 취약 계층 청년들을 대상으로 직업 교육을 하고 이후 그와 연계된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김씨는 "아르바이트를 못 하게 되고 이제 어디 가서 무엇을 해 돈을 벌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됐다"며 "서비스 직무에 지원해 골프장 업무에 대한 이론, 실습 교육을 받았고 대기업 계열사 취업 연계를 통해 정식 합격해 2년 넘게 골프장 서비스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취업에 성공하면서 김씨는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성장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아르바이트 할 때는 그저 쉽고 편하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일의 무게를 잘 몰랐던 것 같다"며 "직업 교육을 통해 어렵사리 취업했고 그 과정에 알게 된 인연도 잃고 싶지 않아 일이 힘들더라도 참고 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변의 도움 없이는 지금과 같은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자립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고 자립을 위한 현실적인 준비를 하라고 조언했다.
김씨는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가 참여한 아카데미 정보도 시설에 있을 때 선생님이 이미 알려주신 것이었다"며 "혼자 막막해하지 말고 자립 지원 선생님이 귀찮아 할 정도로 도움을 청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립 생활을 체험하는 '자립관 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해 공과금은 어떻게 내는지, 밥은 어떻게 하는지 등 혼자 살게 됐을 때의 삶을 꼭 경험해 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2년여 열심히 일한 끝에 최근 동기 중 가장 먼저 승진했다고 한다. 그는 먼 미래에는 골프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가게'를 창업하는 꿈을 갖고 있다.
김씨는 "부모가 없다는 건 크게 페널티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세상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오히려 도움을 받지 않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다"고 밝혔다.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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