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시속' 전여빈, 나이테처럼 세세한 결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전여빈은 매 작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때론 당당하고, 묘하고, 애절하다. 도전 같은 과제도 배우로서 마주하고 해내기 때문이다. "자기 중심 잡고 걸어가려고 해요"라는 전여빈의 단단함이 내면의 깊이를 가늠케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극본 최효비·연출 김진원, 이하 '너시속')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 연준(안효섭)을 그리워하던 준희(전여빈)가 1998년으로 타임슬립해 연준과 똑같이 생긴 시헌(안효섭)과 친구 인규(강훈)를 만나고 겪게 되는 미스터리 로맨스다.
작품은 대만 인기 드라마 '상견니' 리메이크작이다. 일명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자들)들의 압도적인 기대와 관심 속에 첫 공개됐다. 전여빈은 극 중 30대 준희 역과 18살 민주 역을 동시에 맡아 열연했다.
원작을 좋아했다는 전여빈은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마냥 기뻤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 당시 제게 와준 작품들 중 가장 만나고 싶었던 작품이자 인연, 캐릭터였다"고 밝혔다.
이어 "'너시속'은 이미 원작에서 느꼈던 좋아하는 마음이 꽤나 큰 상태였다. 한국식으로 봤을 때도 그냥 너무 마음에 들었다. 컬러링북이라는 게 있다. 밑그림은 같은데 색깔을 다르게 칠하면 느낌이 달라지는 것처럼 기대와 희망으로 연기해 나갔다"고 출연 이유를 담담히 얘기했다.
'상견니'와 '너시속'은 시간이 달라져도 사랑하는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는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각색 과정을 거쳤더라도 관통하는 사랑의 결은 다르지 않았다. 전여빈 또한 이 점이 좋았다며 "복합적으로 끌렸지만 무엇보다 사랑과 관계다. 지난한 모든 것들을 통달하는 사랑이 당신에게 있을 거라는 말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여빈은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삶을 뛰어넘어서라도 사랑이 운명적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열망은 다수가 희망한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사랑이 존재하고, 존재해 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떠올려보면 너무나 기분 좋고 안아주는 느낌이 들지 않나. '상견니' '너시속'은 그런 사랑이 당신에게도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때 원작의 팬이었던 만큼 부담보다 '좋아하는 마음'에 집중했다는 전여빈이다. 그는 "'상친자'만큼은 아니지만 한 시청자로서, 배우로서 캐주얼하게 좋아했다. 그랬기 때문에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과 의지만을 갖고 기꺼이 합류하며 기회를 거머쥐었다. 촬영하면서 부담은 계속 느꼈지만, 함몰되지 않으려고 했다. 작품을 통해 느꼈던 떨림, 기쁨, 설레임, 만족감을 표현하고 싶어 노력했다"고 전했다.
전여빈이 맡은 준희와 민주는 원작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30대 준희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할 말하는 활기찬 인물이었고, 18살 민주는 소심하고 낯가리는 여고생이었다. 극명한 성격의 두 인물을 연기한 전여빈은 눈빛, 말투, 행동까지 차이를 둬 호평을 안겼다. "원작의 감성을 굳이 비워내려고 하지 않았다"며 "잔상이 남아있어도 반감이 들진 않았다. 멀어져야 해, 180도 다른 걸 만들어야 해라는 등 원작을 부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전여빈이다.
하지만 1인 2역 연기는 쉽지 않았다고. 전여빈은 "전 텍스트와 대본에 충실하는 배우 중에 한 명이다. 준희와 민주는 극명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표현하는 데 있어 쉽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다른 존재라 그냥 준희는 준희에 맞게, 민주는 민주에 맞게 모든 감각을 열어두면서 표현하고자 했다. 그 경계의 디테일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목소리톤에도 변주를 준 전여빈이다. 그는 "민주로서의 목소리를 찾아가려고 했다. 보시는 분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로 느껴질 수 있게끔 포현하고 싶었다. 민주에 대해 상상을 많이 해봤었다. 어설프게 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물음표를 던져주더라도 다르게 가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타임슬립으로 달라지는 인물들의 시간대, 상황도 전여빈에게는 해내고 싶은 도전이었다. 그는 "연준이를 잃은 30대 준희, 준희가 민주 몸으로 들어왔을 때 모습,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 준희이고 싶어 하는 민주의 모습 등 그 결이 나무 나이테처럼 섬세했다"며 "하지만 배우로 원했던 과제였기 때문에 결을 세세하게 찢어 나가면서 표현해 나가고자 했다. 그 기회가 기뻤다. 물론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기꺼이 만나고 싶던 과제였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장 어려웠던 연기를 묻자 극 후반 준희와 민주가 마주 보는 장면을 꼽았다. 전여빈은 "정말 어려웠다. 이미 연기를 한 상태에서 녹음된 것을 보고 대답을 해야 하니까. 녹음은 내 말을 기다려주지 않더라. 절망하는 날도 있었고, 이거야 말로 벽에다 소리치며 연기를 하고 있는 거구나 싶었다"며 "세트 자체도 어둡고 비좁았다. 깊은 감정신이라 하루 만에 찍어야 했다.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혼자서 원맨쇼 하듯 연기해 체력적으로 지치더라. 혼자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도 쉬기도 했는데 모든 스태프들이 많이 도와줬다. 공허하게 먼 곳을 응시하고 있으면 눈빛으로 '혼자가 아니고 함께 만들고 있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고 울컥했다.
배우로서의 열정, 욕심, 애정을 쏟아내며 만들어낸 '너의 시간 속으로'는 전여빈에게 애틋한 작품이 됐다. 전여빈은 "우리 모두가 참 애쓴 시간이 녹아있다. 상대 배우 안효섭, 강훈뿐만 아니라 참여해 준 동료들, 학급을 다 채워줬던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도 많이 느껴졌다. 절대로 이 시간을 가볍게 채우지 않았구나 노력해서 완성된 시간들이 보여지고 있다는 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감독님에게도 감사함을 전한 전여빈은 "감당하셨어야 할 무게가 깊고 무거웠을 텐데 끝까지 책임져줘 감사하다"며 "온화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끊임없이 온기와 용기를 나눠줬다. 온화한 카리스마, 리더십을 배웠다. 저도 배우로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연차가 쌓여 선배 입장이 되는 순간이 있을 텐데 감독님의 이런 면을 본받고 싶다"며 존경을 표했다.
'구해줘' '멜로가 체질' '빈센조' '글리치', 영화 '낙원의 밤' '외계+인 1부' 등 다수 작품을 통해 차분히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전여빈. '너시속' 뿐만 아니라 일찌감치 칸에 공식초청된 영화 '거미집'으로 글로벌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절대 자만하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는 전여빈이다. "전 실체 없이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싫어 발을 땅바닥에 붙여놓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다가오는 모든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누릴 수 있는 감사함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결국엔 발을 땅에 붙이고 있어야 되는 것 같다. 한 사람으로서 자기중심을 갖고 잘 걸어보자는 마음을 자꾸 먹는 요즘이다"라고 밝게 웃었다.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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